[실종아동의 날 특집 ①] “평생 죄인으로 살았다” 40여 년 세월 가슴에 묻고 산 실종 아동 어머니들
[실종아동의 날 특집 ①] “평생 죄인으로 살았다” 40여 년 세월 가슴에 묻고 산 실종 아동 어머니들
  • 김혜진 기자
  • 입력 2021-05-21 19:48
  • 승인 2021.05.21 22:05
  • 호수 1412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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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우리 아이를 찾아 주세요” 가족들 울분 터뜨려

“살아있는지 생사라도 알려다오”… ‘죄인’ 아닌 ‘피해자’라는 말에 눈물 쏟아내
실종자 이정훈 씨 [사진=김혜진 기자]
실종자 이정훈 씨 [사진=김혜진 기자]
실종자 김선영 씨 [사진=김혜진 기자]
실종자 김선영 씨 [사진=김혜진 기자]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매년 5월25일은 ‘실종 아동의 날’이다. 2005년 ‘실종 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실종아동법)’이 제정되면서 장기 실종 아동 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는 마련됐지만 17년 만인 지난해에서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실종 아동의 날이 법정 기념일로 지정됐다. 실종 아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지만 가족과 20년 넘게 만나지 못한 장기 실종 아동은 580명이다. 이는 전체 실종 아동의 약 60%다. 일요서울은 ‘실종 아동 주간’을 맞아 지난 20일 자녀를 잃고 40여년의 세월을 가슴 속에 묻어 온 어머니들 전길자(75), 백명자(71)씨를 만나 그동안의 소회를 들어 봤다. 

[사진=이정훈 씨 어머니 전길자 씨 제공]
실종자 이정훈 씨와 그의 어머니 전길자 씨 [사진=전길자 씨 제공]

 

이정훈 씨(남/1973년 3월18일 실종/당시 만 3세)의 어머니 전길자 씨는 첫째 아들 정훈 씨를 잃어버린 지 49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당시의 상황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전 씨는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앞에서 잃어버렸다. 정훈이가 만 3살이 되던 해에 밖에 나가고 싶다고 떼를 써 집 앞에 있는 동네 슈퍼 주인에게 100원을 쥐여주고 아이를 잠깐 맡아 달라고 부탁했었다”며 “친구 2명과 함께 맛있는 걸 먹으며 웃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고 말했다.

둘째를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20대 초반의 전 씨는 정훈 씨 동생에게 젖을 물린 후 살짝 눕혀 놓고 밖을 나와 살폈는데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20분 사이에 정훈이가 사라졌다”며 “같이 있던 아이들에게 물어도 모른다고 하고 슈퍼 주인도 잠깐 슈퍼로 들어갔던 사이에 안 보인다고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전 씨는 아들을 무조건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바로 경찰에 신고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그는 직접 발 벗고 나서 2년이 넘도록 동네를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바구니에 미역, 미숫가루, 멸치 등을 담아 물건 파는 척 하며 집집마다 방문해 정훈이 또래의 아이들을 살폈다. 혹시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꼼꼼하게 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전 씨는 “둘째 아들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아들을 찾아다니니 밥이나 반찬을 나누던 이웃의 또래 아기 엄마들이 젖동냥을 해 줘서 둘째 아이를 키워 줬는데 아이에게도 미안하고 감사하기도 하다”고 했다. 그는 빨간색 티셔츠에 보라색 털 조끼를 입고 곤색 털 바지에 흰색 고무신을 신고 있던 정훈 씨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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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김선영 씨와 그의 어머니 백명자 씨 [사진=김혜진 기자]

 

김선영 씨(여/1978년 11월26일 실종/당시 만 3세)의 어머니 백명자 씨도 마찬가지였다. 둘째 딸을 임신해 출산을 앞둔 만삭의 그가 잠깐 한눈판 사이 집 앞마당에서 혼자 놀던 첫째 딸 선영 씨가 사라졌다. 눈앞이 캄캄해진 그는 아이를 찾기 위해 동네를 마구 헤매고 다녔다. 양수가 터지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언젠가 ‘내가 선영이를 데려다 키우면 안 될까?’라고 물었던 이웃 여자네 집에 찾아가 따져 묻기도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백 씨가 경찰에 신고하고 아이를 찾으러 다닌다는 소문이 동네에 돌자 그는 살해 협박을 당하기도 했다. 백 씨는 “동네에서 의심 가는 사람들 집에도 가보고 아이를 마구 찾아다니니 나를 찔러 죽인다는 이야기까지 듣게 됐었다”며 “나라가 뒤숭숭하던 시기이고 공포증에 한창 시달리다가 딸을 찾는 것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20대 중반이었던 그에게는 무척이나 가혹한 상황이었다. 백 씨는 “내가 잃어버렸으니 남편에게 하소연하지도 못하고 선영이 동생들에게도 이야기할 수가 없어 40여 년의 세월 동안 혼자 가슴에만 묻고 살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두 어머니들은 잃어버린 자식을 찾기 위해 안 해 본 것 없이 갖가지 노력을 이어 왔다. 전 씨는 “그동안 만들어 왔던 전단지와 플래카드 종류만 30여 가지였다. 지금은 이사를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많이 줄어든 것”이라며 “지금까지 아들을 찾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장애인 시설이나 아동 보호 시설 등 안 가 본 곳이 없을 정도다. 신문과 방송 인터뷰도 수없이 했다”며 “제보 연락도 많이 오고 유전자(DNA) 검사도 50여 차례 가까이 해 왔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백 씨는 선영 씨를 찾는 것을 중단하고 나서도 경기도 부천 인근을 떠나지 않았다. 선영 씨를 찾기 위해 더 많은 동네 사람들을 만나 보고자 부동산을 개업해 지내 왔다. 그는 “선영이를 찾아보려고 몇십 년을 바라보고 운영해 온 것”이라며 “부동산을 핑계로 집집마다 들어가서 사람들을 살펴볼 수 있으니까 하게 됐는데 결국 찾을 수는 없었다”고 했다. 

어머니 전 씨의 편지
어머니 전길자 씨가 아들 정훈 씨에게 쓴 편지 [사진=김혜진 기자]

“모든 게 엄마 탓이다”… 자책감 속에서 괴로워해

자식을 잃어버린 날부터 어머니들은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살아온 듯했다. 특히 자신 때문에 평생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을 잃어버린 것 같아 죄책감에 시달려 왔다고 했다. 오랜 세월 동안 마음의 병을 쌓아 와서인지 두 어머니들은 크고 작은 수술을 견뎌 내며 자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백 씨는 췌장, 갑상선 수술 등 큰 수술을 거치며 5년 전 선영 씨를 다시 적극적으로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살해 협박 공포증과 남은 딸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찾지 못했었는데 아프고 나니 선영이를 반드시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실종아동협회를 찾아가게 됐다”고 했다. 

그는 “처음 실종 아동 부모들을 위해 진행하는 심리 치료를 받았는데 그때 ‘어머니는 죄인이 아닙니다. 피해자입니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며 “그동안 죄인으로 속죄하며 남편과 남은 자녀들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살았는데 ‘이제는 우리 애를 잃어버렸다’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 씨도 마찬가지였다. 자궁 근종, 갑상선, 폐암 수술 등을 하면서도 아들을 찾기 위한 일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자궁을 떼어내고 큰 수술을 몇 차례 받으면서도 살아났다는 게 기적인 것 같다”며 “정훈이가 어디선가 지켜 주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40여년이 훌쩍 지나 실종된 아들, 딸도 어느덧 40대 후반을 바라보게 됐는데, 알아볼 수 있겠냐는 질문에 백 씨는 “이제 선영이가 잘 살고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예쁘고 건강하게 사는 것 말고는 더 이상 무엇을 더 원할 수 있겠느냐”며 “그래도 죽기 전에 한 번 만이라도 보고 싶다. 이제 나는 찾을 힘이 부족해져 가는데 네가 좀 나를 찾아주면 안 되겠느냐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전 씨는 “핏줄은 알아본다는 옛 속담이 있듯이 세월이 흘러도 정훈이의 얼굴은 어디가지 않을 것 같다. 정훈이를 만날 날을 가끔 혼자서 생각해 볼 때가 있는데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 오른다”며 “만약 만나게 된다면 엄마 역할을 제대로 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만 하게 될 것 같다”고 말한 뒤 눈물을 훔쳤다. 

 

*이정훈, 김선영 씨를 알고 계신 분은 경찰청 182 혹은 실종아동전문기관 02-777-0182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이정훈 씨를 찾는 전단지 [사진=김혜진 기자]
이정훈 씨를 찾는 전단지 [사진=김혜진 기자]
이정훈 씨를 찾는 전단지 [사진=김혜진 기자]
김선영 씨를 찾는 전단지 [사진=김혜진 기자]

 

김혜진 기자 trust@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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