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잃고 소송 지고 억울해서 살 수가 없다”
“가족 잃고 소송 지고 억울해서 살 수가 없다”
  • 이지혜 기자
  • 입력 2013-09-09 09:52
  • 승인 2013.09.09 09:52
  • 호수 1010
  • 22면
  • 댓글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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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서이천 물류창고화재’ 유가족이 우는 까닭

▲ <뉴시스>
[일요서울|이지혜 기자] 2008년 12월 5일 경기도 이천의 물류창고에서 발생한 화재로 7명이 사망하고 1명이 실종, 4명이 부상했다. 당시 사고는 출입문 용접작업 중 불티가 샌드위치 패널에 튀며 발생했으며 조사결과 직원 안전교육 부족, 건축법 위반 등이 드러났다. 그 결과 방화관리책임자와 용접공 등 6명이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사고 발생 후 5년이 흘렀다. 그러나 당시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은 아직도 힘든 소송을 이어나가고 있다. 경기도 등 23곳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소송은 1심에서 일부 승소를 제외하고는 패소했다. 경기도, 이천소방서 등은 유가족에게 소송비를 청구했다. 이러한 상황에 닥친 유가족들은 너무 억울하다며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7명 사망 1명 실종… 창고주 건축법 위반에도 불구하고 소송 ‘패소’
경기도·이천소방서 등 1600여만 원 소송비용 청구 “정말 너무한다”

“세상에 이런 법은 없습니다. 어느 나라 법이 유가족에게 돈을 물어내라고 한답니까. 저는 너무 억울해서 이 돈을 낼 수가 없어요. 우리가, 우리 아들이 무엇을 잘못했다는 말입니까.”

‘서이천물류창고 화재’로 세상을 떠난 김웅원(당시 24세)씨의 어머니 이재준(58)씨는 5년이 지난 지금도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시 웅원씨는 100일이 갓 넘은 딸을 위해 일을 나갔다가 변을 당했다. 이 씨는 사고 전날 만난 아들의 푸념에 힘들어도 참아야 한다고 야단 친 것이 후회된다고 말했다.

5년이 지나도 생생한 기억
사고 하루 전인 12월 4일 이 씨는 이천에서 아들을 만났다. 밤 11시가 넘어 퇴근한 웅원씨는 이 씨에게 “엄마, 나 너무 추워서 일을 못할 지경이다”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이에 이 씨는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아들을 위해 “힘들어도 참아야 한다”며 야단을 쳤다. 그리고 다음날 사고가 발생했다.

이천에 살고 있던 시동생이 뉴스를 보고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회사 측에서 웅원씨가 출근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간 시동생 김 씨는 웅원씨의 아내 최 씨의 전화를 받고 다시 장례식장으로 달려가 웅원씨의 시신을 확인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던 이 씨는 “불이 나니까 직원들이 차를 가지고 도망갔다. 그 많던 차가 다 빠졌는데 아무도 사람을 구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며 “젊은 나이에 애들이 얼마나 밖으로 나오고 싶었겠는가. 그러나 화재로 인해 문이 자동으로 닫혔는데 그 문을 열고 나오지 못하고 질식사했다”며 가슴 아파 했다.

사고 발생 후 사고책임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아 보상협의가 지연되면서 장례도 20여일 미뤄졌다. 법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던 이 씨는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어느 국회의원의 소개로 변호사를 선임했다. 2009년 4월 이들은 물류센터 최대 지분을 가진 아센다스 코리아, 소유자로 등기된 국민은행, 관리회사 샘스, 창고임차업체 로지스올 등 사고책임이 있는 업체들과 관리 주체인 경기도, 이천소방서 등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이 씨는 “우리는 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변호사가 이길 수 있다고 해서 그 말만 믿고 23곳에 소송을 걸었다”며 “그러나 하청업체와 그 직원들에게만 일부 승소했고 다른 큰 곳은 다 졌다”고 말했다.

1심에서 재판부는 물류창고 관리, 운영업체 3곳과 용접시공업체 등 11곳에 대해 유족에게 모두 13억9000여만 원을 배상하라며 일부 유가족의 편을 들어줬다. 그러나 이 업체들은 부도, 회생절차 등을 밟으며 실질적인 보상금을 줄  능력이 전혀 없었고, 이 씨 등은 결국 보상금을 전혀 받지 못하게 됐다.

그리고 이어서 진행된 항소심에서는 경기도와 이천소방서, 국민은행 등을 제외됐다.

“너무 억울해 돈 못낸다”

1심 재판이 끝난 후 승소한 경기도와 이천소방서, 국민은행 등에서 소송비용이 청구됐다. 이 씨는 이 돈을 낼 수 없다고 말했다. 너무 억울하고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에 죽을지언정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씨는 “다른 가족들은 돈을 다 내고 그만하자고 하지만 난 절대 이 돈을 낼 수 없다”며 “경기도와 국민은행은 모두 화재 사건에 책임이 있는 곳인데 이곳들은 잘못이 없다고 하고 우리한테 변론비를 내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변론비가 군데당 1600여만 원이라고 하는데 그 돈을 다 합치면 얼마겠느냐”고 한탄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일부 승소를 했지만 돈을 받지 못했다. 며느리는 빚을 내서 돈을 냈다고 하더라. 유가족에게 돈을 내라는 법은 세상천지에 없다. 아들이 세상을 떠난 후 재판에 이기기 위해 내가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 우리 아들의 한을 풀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사는데 돌아오는 건 돈을 내놓으라는 독촉장뿐이니 너무 억울하고 답답해서 살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유가족의 고통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담당 변호사 역시 변론비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재판 전에는 소송이 다 끝난 후 성공보수를 가장 저렴하게 해준다고 했다. 그런데 담당 변호사는 말을 바꿔 1심이 끝나기 무섭게 돈을 요구했다. 아직 소송이 진행 중이고 돈을 받은 게 없기 때문에 줄 수 없다고 하니 화를 냈다고 했다.

이 씨는 “이 일로 대상포진이 생겨 한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그러다 아픈 몸을 이끌고 변호사를 찾아갔는데 아는 척도 안하더라. 변론을 한 사람이 우리에게 현재 진행상황에 대해 이야기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화를 내면서 돈도 안주고 그런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현재 다른 변호사를 선임한 이 씨는 재판이 연기되고 있는 상태에 대해 답답함을 호소했다. 최근 재산 피해를 본 업체가 국민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로 답답함이 더욱 커졌다고 했다.

이 씨는 “똑같은 사건으로 제기된 소송인데 우리는 패소하고 다른 업체는 승소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남은 소송도 다 패소해서 변론비 청구가 들어오지 않을까 걱정된다. 왜 유가족이 이런 걱정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며 눈물을 보였다.

재판 보류 중 인명피해 강조할 것

이에 대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이원필 변호사는 “지난해 5~6월부터 현재까지 1년이 넘게 선고기일이 잡히지 않고 있다. 변론제기 신청을 했지만 변론기일도 열리지 않았다. 종종 이런 사건이 있다”며 “이 사건은 인명피해 말고도 40여 개의 업체에서 재산피해 관련 소송을 진행하고 있고 엇갈린 판결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재판부가 다른 소송 결과를 참고하려고 기다리고 있지 않나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판사들도 다른 재판부와 달리 판결 내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기 때문에 계속해서 다른 판결 제시를 요구했다는 것.

이 변호사는 “변론기일을 잡는 것은 재판부의 고유 권한이지만 재판은 100% 재개될 것”이라며 “현재 화재사고 관련 재판이 반 정도밖에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재판부가) 대세를 지켜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유가족들의 어려운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리 승소를 했다고 해도 이 사건의 내막을 알면 소송비용을 청구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며 “소송에서 이겼다고 해도 상대방의 재력 상황이나 소송 이유 등을 고려해서 청구를 해야 한다. 비도덕적이라고 여겨진다”고 의견을 냈다.

그러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재산 피해 업체 중 일부 확정된 판결들도 있는데 계속해서 물류창고 자산관리회사인 아센다스에는 책임이 없다고 나온다”며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인명 피해이고, 다른 곳에서 전혀 보상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기에 다르게 봐야 한다고 변론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서이천 물류창고 화재사건은?

2008년 12월 5일 낮 12시 18분께 경기도 이천시 서이천물류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해 김모(24)씨 등 7명이 사망했다.
불은 지하 1층 냉장실에서 인부들이 용적잡업을 하던 중 불꽃이 창고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샌드위치 패널에 튀면서 발생했다.
당시 사고를 조사하던 경찰은 물류센터 내 스프링클러 펌프의 밸브가 인위적으로 잠겨 있었으며 방화셔터와 비상벨이 작동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또한 출입문 용접작업 직전에 위험하다는 경고가 있었으나 공사를 강행했다고 밝혔다.
사고가 발생한 물류센터는 소유, 임대, 관리 회사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배상, 책임이 명확하지 못해 사망자들의 장례가 20여 일간 미뤄지기도 했다. 
경찰은 사고 발생 3일 뒤인 8일 용접공 강모(49)씨 등 2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했다.
그로부터 6개월 뒤 법원은 방화관리책임자 김모(46)씨에게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고, 방화관리자 장모(36)씨 등 2명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용접공에게도 금고 1년을 선고했다.
현재 유가족과 재산 피해를 본 업체 40여 곳의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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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태 2016-11-11 23:57:56 223.62.3.222
내 소중한친구 웅원아 난 아마도 눈감는날까지 널 잊지못할꺼다.. 장난기많고 사람좋아하던 내친구, 그렇게 외롭고 쓸쓸하게 한창 꽃피울나이에 넌 허망하게 가버렸고 너희어머니는 아직까지도 홀로 쓸쓸한싸움을 하신다..
하늘에서 지켜봐줘라 반드시 어머니가 이기는모습 꼭 지켜봐줘라

길가에서 길가에서 2013-10-02 18:25:06 211.42.82.1
간다.. 간다.. 나는 간다..끝까지 간다.. 돌아서라도 간다..진실이 있는 곳이라면 지옥이라도 가서 기쁨을 같이 하고싶다..같은길 동행하는자 많으면 즐거움이 배가 될텐데..오늘도 가고 내일도 계속 간다..뛰어서 간다..모두 같이 손잡고 가자..

lseoy lseoy 2013-10-02 08:54:11 211.173.11.130
24살 한참 꽃다운 나이에, 생계를 위해 생활전선에 뛰어들다가 불의의 변을 당하다니..
정말 안타까운 맘을 금 할수 없습니다.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겠지요...
유가족 분들은 건강 챙기시고 힘내십시오.

맑은하늘 monika 2013-10-01 21:56:34 211.208.226.70
가슴이 아프네요. 아들 잃은 엄마심정,남편잃은 아내마음. 돈에 비할바인가요. 이 원통한 현실에 주변이들뿐 아니라 권력있는 분들 모두 관심갖고 도와주세요,,,제발~~~

자전거타기 자전거타기 2013-10-01 19:49:06 211.42.82.129
두 바퀴가 잘 돌아간다. 앞 뒤 바란스가 너무 잘 맟는다.어디까지 질주 할는지 자전거 주인만 알 따름이다.지구 끝까지 안전운행 아니 드넓은 우주 끝까지 달려보자..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