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호국보훈의 달 특집, 고통 받는 군 전역자 ①] “당연히 ‘국가유공자’ 된 것 아니냐고요?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커버-호국보훈의 달 특집, 고통 받는 군 전역자 ①] “당연히 ‘국가유공자’ 된 것 아니냐고요?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 김혜진 기자
  • 입력 2021-06-04 18:02
  • 승인 2021.06.06 12:45
  • 호수 1414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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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공자 ‘거절’ 당하는 제2연평해전·천안함 피격 사건 생존 장병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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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국가를 위해 공헌하거나 희생한 사람은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적절한 예우와 보상을 받게 된다. 하지만 국가의 부름을 받아 입대해 상흔을 입거나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는 등 헌신했음에도 10년 넘도록 국가유공자는커녕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다. 일요서울은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군(軍) 사고 전역 후 국가유공자로 인정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천안함, 제2연평해전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 천안함·제2연평해전 생존자 정신적 고통 호소… “경제적 문제로 치료 못 받기도”
- 참전 여부 알 수 없다는 ‘비해당’ 판정 나오기도… “보훈처 심의 기준 의문”

2002년 6월29일 월드컵 결정전이 한창이던 당시 서해 연평도 인근의 북방한계선(NLL)을 남하한 북한 경비정이 우리 해군 참수리급 고속정 357호에 85mm 함포 사격을 기습적으로 가하면서 ‘제2연평해전’이 발발했다. 이 과정에서 승조원 30명 중 6명이 전사, 19명이 부상을 입었고 참수리호는 침몰했다. 

참수리 357호의 병기병이었던 생존자 김상영(41) 예비역 병장은 19년 전 당시 상황이 여전히 생생하게 떠오른다고 했다. 그는 “눈앞에서 동료 병사들이 부상당하거나 전사하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며 “심지어 경미한 부상을 입은 일부 병사들은 명령에 따라 배 안에 있던 전사자들의 시신을 직접 옮기고 내부 청소까지 해야 했기에 너무나 끔찍했었다”고 회상했다. 

젊은 나이에 충격적인 사고를 겪으며 정신적인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김 병장은 “사고로 배 파편에 맞아 몇 바늘 꿰맨 것 말고 큰 외상을 입진 않았지만 정신적으로는 많이 힘들었다. 악몽을 꾸거나 잠에 쉽게 들지 못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데도 영향이 있었다”며 “정신과 병원을 다니면서 조금 나아졌지만 계속 약을 먹고 상담 받으며 꾸준히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2연평해전 생존자 19명 중 2명 국가유공자 ‘미인정’

김 병장은 생존 장병들과 1년에 한 번씩 만나는 모임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는 “대원들하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비슷한 증상이 있다는 걸 알고 병원 치료를 권유 받았다”며 “권기형 상병 경우는 외상이 커 바로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고 대부분의 장병들도 병원 치료를 하며 10여 년 전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김 병장은 사건 7년 후인 2009년 10월 처음 순천보훈청에 국가유공자 신청서를 제출했다. 제2연평해전 참전에 따른 우하퇴부 파편창, PTSD 증상을 신청서에 적어 냈다. 하지만 신체검사 판정에서 기준 미달을 받았다. 그는 “정신과 병원 치료를 받긴 했지만 생계가 어려워 꾸준히 받지 못한 게 이유가 된 게 아닐까 짐작한다”면서도 “PTSD는 증상이 눈에 보이지 않아 경중을 판단하기 어려워 10년 동안 이 같은 판단이 나왔나 싶다”고 토로했다. 김 병장은 10년 넘게 4차례의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고 지난 3월, 5번째 신청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는 “현재 연평해전 생존자 19명 중 2명만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오래도록 노력해도 안 되니까 ‘또 떨어질 건데 왜 하나’라는 생각만 든다”며 “나라를 위해 피땀 흘려 싸워도 인정받지 못하니 허망할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주변에서도 당연히 국가유공자가 됐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고 당한 모두가 국가유공자 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씁쓸해 했다. 

천안함 생존자 58명 중 13명만 국가유공자
일부는 참전 여부 모른다는 ‘비해당’ 판정 받기도

2010년 3월26일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한 해군 초계함 ‘천안함’에선 46명의 장병이 전사하고 58명만이 가까스로 살아 돌아왔다. 전준영(34) 천안함 생존자 예비역전우회장은 천안함 피격 사건이 발생한 지 9년 만인 2019년에 간신히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그는 첫 신청 때 1단계인 요건 심의 단계에서 ‘비해당’ 판정을 받았다.

전 회장은 “천안함 피격 사건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그것마저도 인정을 안 해 준 것”이라며 “사건 직후에는 목숨을 건진 게 보상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지만, 천안함 재조사 논란과 패잔병 취급 등을 받으며 국가의 인정을 못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어렵사리 두 번의 신청 끝에 인정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국가보훈처 보훈심사위원회에 따르면 국가유공자 등록 심의는 총 3단계로 1단계 요건 심의, 2단계 신체검사, 3단계 종합 판정이 내려진다. 안종민 천안함 생존자 예비역전우회 사무총장은 “생존자가 공무상병인증서(국방부 발급)를 갖고 심의를 받는데 1단계인 요건 심의 단계에서부터 인정되지 않는 건 국가가 사건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냐”며 “전상(戰傷) 판정을 받은 천안함 생존 장병들도 최근 2명 이상 인원이 4차례나 ‘요건 비 해당자’로 나와 신청 자격조차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대부분 PTSD 겪지만 증명 어려워

사고를 겪은 참전 생존자들의 대부분이 PTSD 증상을 겪고 있었지만 국가유공자 신청을 위해 이를 증명하는 일은 어렵다고 토로했다. 안 사무총장은 “국가유공자를 신청할 때 민간 병원에서 ‘정신 장애’로 최소 1년 이상 치료 받은 게 인정돼야 하는데 정신과는 비급여이기 때문에 보험이 안 돼 경제적인 문제로 치료 받지 못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도 있다”며 “또 노동력을 일반인 평균의 4분의 1이상 취업상 경도의 제한을 받는 사람이라는 기준이 있지만 보훈심사위원회가 일할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어떻게 판단하는지는 명확하게 나와 있지 않아 답답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또 다른 문제는 우리나라 국가유공자 법령상 상이 등급 중에서도 PTSD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는 것도 문제”라며 “미국의 경우 베트남전 장병들이 PTSD가 심해 오래전부터 연구해 왔지만 우리는 이 증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현재 천안함 생존자 중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은 13명은 2명을 제외하고 PTSD 증상을 인정받아 국가유공자 자격을 받게 됐다. 하지만 지난 4월 김윤일(34) 예비역 하사는 1단계 요건 심의 단계에서 ‘일부 해당’ 결정 통보를 받았다. 보훈지청은 허리 외상은 인정하지만 PTSD는 인정하기 어려워 일부 증상만 인정한다는 결과를 통보했다. 

김혜진 기자 trust@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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