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호국보훈의 달 특집, 고통 받는 군 전역자 ②] 생존으로 얻은 건 PTSD···이마저도 국가유공자 인정 어려운 까닭
[커버-호국보훈의 달 특집, 고통 받는 군 전역자 ②] 생존으로 얻은 건 PTSD···이마저도 국가유공자 인정 어려운 까닭
  • 조택영 기자
  • 입력 2021-06-04 18:31
  • 승인 2021.06.06 12:45
  • 호수 1414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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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장병들, PTSD 겪으면 반드시 기억 깨진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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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역사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기념일이 많은 달이다. 날이 갈수록 보훈 제도의 현실화가 이뤄지고 있지만, 장병들은 전쟁 때의 기억을 쉽사리 지우지 못하고 있다. 전쟁이라는 큰 사건 때문에 생존 장병 대부분은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고, 심지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유공자 인정 문턱은 한없이 높기만 하다. 일요서울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생존 장병들이 겪고 있는 PTSD 및 보훈 제도의 실태를 살펴봤다.

정부 노력에도 지원예우 한참 부족하다”···한계 체감하는 국가보훈처장

“처음에는 내 성격인 줄 알았다. 공황장애, 우울증, 발작 등이 오더라. 가장 큰 게 공황장애였는데, 좁은 공간 등에 있다 보면 탈출구부터 찾게 된다. 그러나 다른 전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게 인정되는 줄도 몰랐다. 아프간이나 이라크 전쟁에 나섰던 미군이 인정되는 건 알고 있었는데, 한국에서도 가능 것은 몰랐던 것이다. 어느 누구도 안내해 주지 않았다.” - 천안함 생존 장병 강대훈 씨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국가유공자로 인정된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사건 발생 8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사건 발생 후 초기 때는 산 것만 해도 감사해, 보상과 예우에 대해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생각할 틈이 없었던 것이다.” - 천안함 생존 장병이자 천안함 생존자 예비역전우회 회장 전준영 씨

“먹고살기 바빠서 증상이 있어도 무시하며 지냈는데, 함께 일했던 대원들이 병원을 가 보라고 하더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인 줄도 몰랐다. 수면장애가 심하게 나타나고, 악몽도 많이 꾼다. 당시 사건이 기억나기도 한다. 회사 생활하는 데도 힘든 점이 많다. 국가유공자 신청은 대원들 통해서 나중에 알게 됐다.” - 제2연평해전 생존 장병 김상영 씨

이처럼 참전용사들의 상흔은 여전하다. 신체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는 장병도 많지만, 전투 상황에서 겪었던 참혹함 때문에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장병이 더 많은 실정이다.

정부 차원의 지원과 예우는 아직까지도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물론 정부의 노력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최근 국방부와 국가보훈처(이하 보훈처)가 일요서울에 답변한 자료에 따르면, 국방부는 군인에 대한 재해보상정책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국방부 본부 조직개편을 감행, 지난 3월30일부로 ‘군인재해보상과’를 신설했다. 군 복무 중 부상‧질병‧사망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는 취지에서다.

보훈처는 국가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신청인의 부상과 관련한 기록을 각 군‧병원 등을 통해 제공받아 보훈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객관적 입증 자료가 부족한 경우에는 ‘신청인과 인우보증인 진술 청문’, ‘현지조사’, ‘신체감정제도’ 등을 통해 국가의 입증 책임을 강화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보훈처는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생존 장병들은 정부의 지원과 예우가 한참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대다수의 생존 장병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는데,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기 쉽지 않고 제도적 한계가 크다는 것이다.

단적인 사례로 보면, 천안함 사건의 한 생존 장병은 최근 보훈처에게 국가유공자 관련 통보 서류를 받았다. 신체 손상은 인정받았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인정받지 못했다. “전투 또는 이에 준하는 직무수행 상이, 또는 국가의 수호‧안전보장 등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급성으로 발생했다고 인정할 만한 입증 자료가 확인되지 않고, 국가의 수호‧안전보장 등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과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어 발생했거나 악화된 것으로도 인정하지 아니하므로 전상군경, 공상군경 및 재해부상군경 요건에 각각 해당하지 아니하는 것으로 의결함”이라는 게 보훈처가 밝힌 사유다.

보훈처장도 이에 대한 한계를 체감하고 있다.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은 최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생존 장병 대부분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호소한다. 그런데 PTSD가 의학적으로 규명이 잘 안 된다고 한다. 장병들은 너무나 괴로운데, 현 의료체계상 그 고통에 상응할 만한 등급 판정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PTSD 진단 이력과 치료 내역 등을 충분히 확보해, 자료가 없어 보훈 심사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보훈제도 문제점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 온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법제이사)는 일요서울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기준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정받으면 장애를 100% 인정한다. 그러나 한국은 인정률이 매우 낮다. 장애가 심각하더라도 급수가 낮아서 별다른 보상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요서울은 지난 2일 백 교수에게 한국 보훈제도의 문제점, 대다수의 생존 장병이 겪고 있는 PTSD의 주요 증상,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물었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법제이사). [사진=백 교수 제공]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법제이사). [사진=백 교수 제공]

다음은 백종우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 PTSD를 정의한다면.

▲ PTSD라는 진단명은 1980년 정도에 나왔다. 그 전에는 ‘전쟁 신경증’ 등의 이름으로 존재했다. 베트남전에 나선 미군들에게서 다수 관찰되고, 퇴역 군인들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떠오르면서 공식적인 진단 체계로 인정받게 됐다. 다른 질환이랑 정말 다른 것은 진단 기준의 1번에 ‘사건’이 있다는 점이다. 생명을 위협하거나 부상을 초래하는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사람 또는 가족, 그런 일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 이런 분들이 대상이다. 직업적으로는 전쟁을 경험한 군인, 구조 현장에 뛰어든 소방관 등이 대표적으로 겪고 있다.

- 보훈제도 안에서 소홀히 다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 심리적인 외상은 신체적인 것보다 입증이 매우 어렵다. 신체적으로 다쳐 흉터가 남아 있다면 입증 받기 쉽지만,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었다는 것은 가장 인정받기 힘들다. 더 중요한 점은 PTSD를 겪으면 반드시 기억이 깨진다. 해리(解離) 현상 때문인데, 중요한 외상 사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본인이 겪은 중요한 사건인데 기억을 못해?’라는 오해를 많이 받는다. 압도적인 충격 때문에 기억이 깨져서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못하는 것이다. PTSD 입증이 잘 안 되는 이유다.

미국은 오바마 정부 때 입증 책임을 국가가 가져갔다. 이 때문에 미국 군인들은 간단한 서류 한두 장만 제출하면 국가에서 조사관을 파견, 그 당시 정황을 조사하고 입증해준다. 이렇듯 피해자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 게 (세계적인) 추세다.

그러나 한국은 PTSD 인정률이 매우 낮다. 피해가 굉장히 큰데도 유공자 등급은 낮아 등급 조정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려고 있는 직업이 대표적으로 군인‧소방관‧경찰관 등인데 일을 하면서 얻은 트라우마 때문에 PTSD를 겪게 되고, 가장 불행한 삶을 살게 되면 누가 이 일을 하겠는가. 이들이 자살과 중독 등에 시달리는 것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국민이 안전할 수 없다.

조택영 기자 cty@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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