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저는 딸 예은이입니다. 아버님 부고를 받고 전화 주신 건가요?”
“뭐? 그렇다면 규석이가 갔다는 거냐?”
“예. 오늘 새벽에 돌아가셨어요.”
이규석의 딸 예은이는 담담하게 말했다. 아버지가 자기 방을 갖고 싶어 하자 옥상에 텐트 치고 방으로 하라고 했다던 바로 그 딸이었다.
“뭐라고? 할머니가 아니라 너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규석이가 죽었단 말이야?”
“예. 실례지만, 아저씨는 누구신지요?”
김명우는 예은의 물음에 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뭐 이런 일이 다 있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를 학수고대하던 아들이 어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뜨다니, 뭐 이런 일이 다 있단 말인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고 앞이 막히고 뒤가 막힌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경우에 쓰는 것 같았다.
“발인은 미정이라니? 그건 왜 그래?”
김명우는 불길한 생각에 목소리가 떨렸다.
“그, 그건⋯”
“나, 김명우야. 너의 아버지하고 제일 친한 친구. 그러니 말해도 돼.”
“아, 김 교수님이시군요. 실은...”
예은은 한참 망설이다 답했다.
“실은 아버지께서 자살하셨어요.”
“뭐라고 자살?”
“예. 뒷산 바위에서 뛰어내리셨어요.”
김명우는 머리를 한 대 더 맞는 기분이 들었다.
이규석의 빈소가 차려진 대학병원으로 가는 동안 김명우는 내내 고개를 가로로 흔들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손님?”
얼마나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는지 택시 운전기사가 계속 뒤를 힐끔거리더니 급기야 질문을 했다.
“그게 말입니다. 친구가 자살을 했다고 하는데,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아서요.”
속이 답답해진 김명우는 택시 운전기사를 붙들고 친구 이야기를 했다. 토요일 저녁의 서울시내 교통은 러시아워 못지않게 복잡했다. 네 거리 하나를 지나려면 신호 두세 번은 받아야 했다.
“자기 방 한 번 가져 보지 못하고 살아온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가 최근에 방을 마련할 꿈에 부풀어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데 자살이라니요? 이게 말이 됩니까?”
김명우는 TV 토론회에 나온 출연자처럼 열을 냈다.
며칠 전 아침 일찍 김명우의 오피스텔에 출근한 이규석은 표정이 영 침울했다.
“무슨 일 있어?”
김명우의 질문에 이규석은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딸애가 결혼할 줄 알았는데, 그 녀석이랑 헤어졌다네. 마음에 안 드는 녀석과 헤어진 건 다행이지만, 걔가 시집을 안 가게 되니 내 방 갖는 꿈이 또 물거품이 되고 말았지 뭔가.”
낙심하는 친구의 말을 듣고 김명우가 아이디어를 냈다.
“그럼 옥상에 방 하나 들이지 그래?”
“예은이 말처럼 텐트 치라는 말이야?”
“그게 아니라, 진짜 방을 들이라고. 조립식 주택 짓는 패널로 지으면 큰돈 안 들 거야.”
김명우는 시골 사촌형 집에서 사랑방 처마 밑에 조립식 패널로 창고 하나를 뚝딱 지은 것이 기억나서 얘기해 주었다.
김명우의 말을 들은 이규석은 당장 조립식 패널 공사를 알아보았다. 화장실은 집의 것을 쓰면 되니 그저 사방의 벽과 지붕을 만들고 전기만 끌어들이면 되는 공사라 그다지 비싸지 않았다. 마침 이규석은 다른 출판사의 교정 아르바이트가 연결돼 수입도 생기게 되었다.
“말씀 듣고 보니 자살이라는 게 믿기지 않네요.”
택시 기사는 고맙게도 김명우의 의견에 동조해 주었다.
이규석의 빈소가 차려진 대학 병원 영안실은 딸 예은이와 어머니가 지키고 있었다. 아버지가 이북에서 내려와 친척들이 별로 없는지라 조문객도 별로 없이 황량해 보였다. 김명우가 부고를 받는 즉시 달려와 아직 조문객이 오지 못해서 그런 것도 같았다.
영안실 앞에 도착하자 30대로 보이는 청년 두 명이 절을 하고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한 사람은 남방 셔츠에 청바지 차림이고, 다른 사람은 티셔츠에 평범한 바지 차림이었다. 장례식장에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라 관심이 갔다. 게다가 두 사람의 눈이 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많이 운 모양이었다.
“저 청년들은 누구냐?”
그때까지 입구에 비치된 방명록에는 아무 이름도 기입되어 있지 않았다. 방명록에 첫 번째로 이름을 적고 난 김명우가 예은이에게 물었다.
“누군지 저도 잘 몰라요. 동네에서 아버지랑 알던 사람들이라는데요.”
그런데 저렇게 눈이 뻘게지도록 눈물을 흘린다? 김명우는 고개를 갸웃하고 빈소에 들어섰다.
“어머님, 불효막심한 친구 놈을 용서해 주십시오.”
영정에 절을 하고 난 김명우가 어머니보다 먼저 간 친구를 대신해 김명우가 이규석의 어머니에게 용서를 구했다.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
권경희 작가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