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밥상 문간 간판 [사진=김혜진 기자]](/news/photo/202105/450914_368137_5536.jpg)
![청년밥상 문간 내부 [사진=김혜진 기자]](/news/photo/202105/450914_368139_055.jpg)
[일요서울ㅣ김혜진 기자] 서울에는 다양하고 독특한 명소, 그리고 장인(匠人)들이 있다. 일요서울은 드넓은 도심 이면에 숨겨진 곳곳의 공간들과 오랜 세월 역사를 간직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에 다녀온 곳은 청년들에게 따뜻한 끼니를 저렴하게 제공하는 성북구 정릉동의 ‘청년밥상 문간’이다.
정겨운 정릉시장 안으로 몇 발자국 걸어 들어가면 통닭집과 만둣집 사이 ‘청년밥상 문간’이라는 작은 간판이 보인다. 청년밥상 문간으로 들어가기 전 계단 옆에 걸려 있는 설립취지문에는 “천주교 글라렛선교수도회는 청년들에게 든든한 한 끼 식사와 마음 편히 쉬어갈 수 있는 공유 공간을 제공하고자 2017년 12월에 청년밥상 ‘문간’을 열었다”고 이곳을 소개하고 있다.
문간을 3년 반째 지키는 이문수(48) 신부는 2015년 중순 서울의 한 고시원에 살던 청년이 굶주림 끝에 세상을 떠났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청년들을 대상으로 저렴하면서도 든든한 한 끼 식사를 대접하고 있다. 문간의 메인 메뉴이자 단일 메뉴인 ‘3000원 김치찌개’와 공깃밥은 무한 리필, 1000원씩만 추가하면 나오는 라면, 햄, 어묵 사리 등은 청년들이 눈치 보거나 부담 갖지 않고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도록 제공된다.
이 신부는 “가난한 청년들을 위한 식당이라고 하면 식당에 가는 순간 자기의 처지가 어떻다는 걸 드러내게 되지 않나”라며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올 수 있는 식당이면 좋겠다 싶어 무료가 아닌 가격을 저렴하게 받게 됐다”고 했다.
최근 tvn 예능 프로그램인 ‘유 퀴즈 온 더 블록’에는 이 신부가 출연하며 문간이 소개됐다. 방송 이후 남녀노소가 멀리서도 찾는 ‘김치찌개 맛집’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곳의 취지에 공감해 후원금을 기부하는 유명인들도 점점 늘고 있다. 이 신부는 “방송 이후 후원 신청자가 600분 이상 됐다. 일부러 방송을 보시고 멀리서도 찾아오시는 분들이 생겼다”며 “코로나 이전에는 평균 90분이던 손님이 코로나 이후 3분의 1로 줄었다가 방송이 나가고 평균 170분 정도 오시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사진=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 캡처]](/news/photo/202105/450914_368138_5957.jpg)
![청년밥상 문간 메인메뉴 김치찌개 [사진=김혜진 기자]](/news/photo/202105/450914_368140_158.jpg)
평일 낮 1시쯤 방문했을 때도 손님이 북적였다. 젊은 층은 김치찌개에 라면, 햄 사리 조합을 많이 시켰고 남성들은 고기, 중년 어르신들은 대개 두부 사리를 추가하는 듯 했다. 메뉴판에 있는 ‘3000원 김치찌개’와 햄, 라면 사리를 직접 주문해 봤다. 주문한 지 5분도 안 돼 보글보글 끓는 냄비에 김치찌개와 추가된 사리가 가득 담겨 나왔다. 맛은 여느 김치찌개와 다름없이 구수하고 맛있었다. 고슬고슬한 밥은 김치찌개의 풍미를 더욱 살려줬다.
배부르게 한 끼를 먹었음에도 영수증에는 요즘 커피 한 잔 값인 5000원이라는 가격이 적혀 있었다.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바로 옆 청년카페 문간으로 들어서는데 서재에 책이 가득 꽂힌 카페가 있었다. 이곳에서 무료 커피를 마실 수 있다. 날이 좋은 날에는 정릉천과 정릉시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2층 옥상에서 커피와 함께 한껏 여유를 즐길 수도 있다. 이곳 카페는 식당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다음은 이문수 신부와의 일문일답 인터뷰]
-‘문간’이라고 이름 지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
▲처음 이름을 고민할 때 문수 신부 식당이니까 문간이라고 장난처럼 이야기가 나왔는데 괜찮게 느껴졌다. 여기에 의미를 좀 더하면 문간방 할 때 문간은 사람들이 모이는 사랑방 같은 곳이고, 집 밖과 안 중간 정도에 위치해 있는 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세상과 청년의 중간에 있으면서 이들이 세상에 나가더라도 피곤하고 지칠 때 여기 와서 쉬면 좋겠다고 생각해 이렇게 짓게 됐다.
-날이 더운 7, 8월에는 김치찌개 대신 고기덮밥을 준비한다고. 올해도 마찬가지인가.
▲고민 중이다. 작년에는 비빔밥·면을 했었다. 식당이 단층 건물이고 열에 약해서 여름에는 매우 덥다. 게다가 테이블마다 찌개를 끓이니 더위를 감당하지 못한다. 여름에 손님들이 많으면 에어컨에서 훈훈한 바람이 나온다. 그래서 여름에는 메뉴를 따로 준비해 왔는데 메뉴를 바꾼다고 해서 많이 오시진 않는다. 아쉬운 건 비빔밥이나 냉라면 등을 할 때 한 그릇에 나가니까 1인당 정해진 만큼만 먹을 수밖에 없는데 청년이나 청소년들은 김치찌개를 먹으면 2인분을 시켜 사리 등을 추가해 많이 먹을 수 있다. 그런 부분이 아쉬워 올해 역시 고민이다.
![한 쪽 벽면에 붙은 쪽지들 [사진=김혜진 기자]](/news/photo/202105/450914_368141_250.jpg)
- 지금 3년 반 정도 문간을 운영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였나.
▲청년, 청소년들이 잘 먹었다고 할 때 보람을 많이 느낀다. 중학생 남자 청소년들이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 또 식당 한쪽 벽면에 보면 포스트잇이 많이 붙어 있는데 ‘고맙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등을 표현해 줄 때 뭉클함을 느낀다.
-젊은 청년들과 소통하는 건 어렵지 않나.
▲나는 주로 듣는 편이다. 많이 들으려고 하고 뭔가를 물어보거나 조언을 구할 때만 내가 알고 있거나 생각하는 것에 대해 대답해준다. 청년들을 만날 때 잔소리를 안 하려고 하고 잘 들어주니까 이야기를 잘 해 준다. 그냥 일방적으로 이야기하진 않으려 한다.
-문간이 최종적으로 도달하고 싶은 목표가 있나.
▲수도권에 150개의 문간을 여는 것이다. 방송 이후 ‘빨리 이런 식당이 없어지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다’는 댓글이 인상적으로 기억된다. 사실은 이런 식당이 없는 사회가 더 좋은 사회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필요한데 그렇다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여건이 되면 늘려 나가겠다는 생각이고 최근 이대 앞 장학재단 건물 3층을 무상 임대해 주신다고 해서 그곳에 2호점 오픈을 준비 중이다. 빠르면 이달 말에서 다음 달 초에 열 예정이다.
내가 생각하는 문간의 경영 모델은 맥도날드와 스타벅스다. 맥도날드의 레시피 시스템화처럼 매뉴얼대로 김치찌개를 누구나 조리할 수 있도록 하고, 스타벅스처럼 직영점으로 청년 직원들을 직접 고용하고 싶은 거다. 문간에서 일하는 청년들이 몇 개월이든 몇 년이든 양질의 안정적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신의 꿈을 향해 나갈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하는 데 도움주고 싶다. 사실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돈이다. 돈이 있으면 밥을 굶을 일도 없지 않나. 청년들을 위한 식당을 하면서 알바 쪼개기로 운영하는 건 정신에 맞지 않다고 생각해 힘들지만 그렇게 운영 중이다.
-문간은 언제까지 운영하고 싶나.
▲할 수 있는 한 계속 하고 싶다. 하지만 수도회 신부라 이동이 있는데 2017년부터 연임되고 있는 상황이다. 수도회에서 허락하시면 계속 운영할 생각이 있다. 내가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아직 없다. 청년들과 만나며 식당을 운영하는 게 재밌으니까.
김혜진 기자 trust@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