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이상우의 정치 추리 소설-악녀시대] 11
[연재-이상우의 정치 추리 소설-악녀시대] 11
  • 온라인뉴스팀
  • 입력 2021-05-07 15:54
  • 승인 2021.05.07 15:57
  • 호수 1410
  • 2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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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새삼스럽게 와 이러는 거야?”
이번에는 큼직한 방태산의 왼손이 그녀의 유방을 덥석 잡았다.
“정말 이러시면⋯”

오명자는 방태산의 손목을 잡고 모기 울음 같은 약하디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 여사, 내가 뭐 남이가? 내 오 여사 냄편 책임진다 이거야. 우리가 살을 섞은 사이에⋯”

방태산의 손목을 꽉 쥐었던 오명자의 팔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설움 같은 것을 참느라 이를 악물었다.
젖가슴을 주무르던 방태산의 손이 이번엔 오명자의 허벅지로 옮아갔다.
방태산의 손은 오명자의 치마 속에서 송충이처럼 위로 기어올라가기 시작했다. 그의 입에서는 가쁜 숨결이 터져나왔다.

뜨거운 숨결을 내뿜던 방태산은 오명자를 안고 벌떡 일어섰다. 그녀를 안아다가 자기 책상 위에 반듯이 눕혔다.
“아이 위원장님 여기는⋯”
오명자가 책상 위에서 일어나 앉으려고 했다. 그녀의 얼굴도 어느새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가만⋯”
방태산이 한 손으로 목을 껴안고 책상 위에서 덮쳐왔다. 그의 다른 한 손이 오명자의 치마를 걷고 올라와 팬티를 우악스럽게  잡아당겼다.
“아니 위원장님⋯”
오명자는 책상 위에서 남자 밑에 깔린다는 것이 조금은 이상한 기분을 만들어 주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들끓는 분노와는 달리, 그녀의 육체는 차츰 방태산의 손 끝에서 덥혀지고 있었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오명자는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두 다리는 팬티가 쉽게 벗겨지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책상이라카는 건 사무만 보는 건 아인기라.”

방태산은 하얗게 드러난 오명자의 하체를 바라보면서 황급히 자기 옷을 벗어 던지기 시작했다. 오명자의 윗옷은 입은 그대로였다.
“책상 위의 여자라⋯ 그거 영화 제목 감 아닌가. 어떤 멋쟁이도 사무실 책상 위에서 이렇게 놀아보지는 못했을 꺼라.”

그는 자기의 아이디어가 기가 막힌다는 듯 그 말을 계속 되풀이하면서 오명자 위에 엎어졌다. 그의 뜨거운 남성이 오명자의 아래로 밀고 들어왔다. 숨이 콱 막히는 것 같은 순간이었다.

명자는 방태산의 서두는 율동을 몸으로 받으면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랫배에서 서서히 퍼지는 쾌감이 여자 육신의 배신을  말해 주고 있었다.
창밖으로 앙상한 가로수들이 하늘거렸다. 오명자는 묘지에서 만난 신지혜라는 여자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녀의 이미지는 마치 저 앙상한 가로수와 같았다. 속이 텅빈 듯한 느낌을 그녀는 어쩔 수가 없었다.

“당신은 참 재미있는 사람이군요.”
그녀는 묵묵히 오명자를 바라보다가 먼저 말을 꺼냈다.
“왜 벌써 4년이나 지난 일에 관심이 있죠?”
“그건 4년 전의 일이 아니에요. 지금도 계속되는 일이랍니다.”
오명자는 지혜의 말에 대답한 뒤 말을 이었다.

“나는 오명자라고 해요.”
“나는 신지혜라고 합니다.”
“미국에 계신 줄 알았는데⋯”

“얼마 전에 돌아왔지요. 이럴게 아니라 우리 어디로 나갈까요?”
지혜는 오명자를 이끌고 시내로 들어왔다. 그녀는 차를 갖고 있었고 운전 솜씨도 보통이 아니었다.

“미국에서는 차 없이는 살 수가 없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차를 몰게 되었는데 그게 버릇이 되어⋯ 한국에서도 이제 차를 몰아야만 움직이게 되었더군요.”
그녀는 혼자 말처럼 지껄이며 담배를 꺼냈다.
“피우시나요?”
“아니오.”

오명자가 깜짝 놀라 사양했다.
“한국 여자들은 담배를 거의 안 피우더군요. 대학생들을 빼면 말이에요.  하지만 결혼을 하면 모두 담배를 끊는다니 그것도 참 신기한 일이에요.”
“얼마 만에 귀국하신 거죠?”

“8년이지요. 미혜가 대학에 진학하기 얼마 전에 떠났었으니까요.”
“그럼 실례지만 나이가?”
“우리 나이로 치면 서른둘이지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서른둘이면 오명자보다 두 살이나 많은 폭인데 오히려 서너 살은 어려 보였다. 담배를 입에 문 모습이 고혹적으로 아름답게 비쳤다.
“아 참,  비가 와서 창문도 못 열 텐데 담배 연기를 싫어하는 건 아닌지요?”
그녀가 오명자를 돌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아니, 괜찮습니다.”
그것은 오명자의 진심이었다. 긴 머리칼에 하얀 피부, 오똑한 콧날, 고대 희랍인들이 그녀를 보았다 하더라도 그들의 어떤 여신에도 뒤지지 않을 미모라고  생각했으리라.
“한데 이건 너무 이상한 우연의 일치군요. 이렇게 신미혜 씨의 언니를 만나다니⋯”

오명자가 아까부터 이상하게 생각하던 것을 물어 보았다.
“그 말 한마디로 당신은  거짓말을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드러냈군요.”
지혜는 오히려 이상한 말로 오명자의 말을 받았다.
“예?”

“오명자 씨는 아까 미혜의 친구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자기 친구의 이름을 부르면서 씨자를 붙이다니요?”

“아아, 네⋯”
오명자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방금 ‘신미혜 씨’라고 한 것이 실수였다.
“나는 벌써 오명자 씨가 미혜의 친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답니다.”
지혜가 멋진 폼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나는 누군가가 미혜의 옛 일을 조사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래서 나는 반대로 그 ‘누군가’를 조사하기 시작했지요. 미혜의 묘지는 이상한 우리 두 사람이 만나기가 아주 적당한 장소 같았어요. 말하자면 내가 당신을 미행하다가 붙잡은 것이지요.”

오명자는 잠시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이 여자는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어디 좋은 곳을 알고 계신가요?”
지혜가 물었다. 차는 이미 시내로 들어와 있었다.
“아니오. 특별한 곳은⋯ 아무 데로나 가시죠.”
“난 아직 별로 아는 곳이 없어서⋯”

지혜는 주저하면서 차를 멈추었다. 창밖으로 ‘르네상스’라는 간판이 흐릿하게 보였다.
“르네상스라, 이름이 마음에 드는데요. 저리로 갈까요?”
지혜가 차를 꺾었다.
르네상스는 레스토랑이었다. 빗줄기가 이제 뜸해졌다.

내부로 들어가자 초호화판의 장식들이 펼쳐졌다. 로코코 시대의 독특한 풍취를 내는 실내 장식이 그녀들의 눈을 끌었다.
“제멋대로군.”
지혜가 자리에 앉으며 비웃는 투로 말했다.
“예?”

“여기 장식 말이에요. 정문은 바로크 양식으로 꾸며져 있는 데 들어와 보니 후기 로코코 양식에다가 저걸 한번 보세요.”
지혜가 가리키는 곳에는 큼지막하게 피카소의 그림 ‘아비뇽의 처녀들’ 복사판이 걸려 있었다.
“누구의 머리인지 참 대단한 방법으로 장식을 했군요. 식사 전이신가요?”
오후 5시 30분이었다.

“예.”
“그럼 일단 뭐든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지요.”
그 뒤에 그녀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후식까지 다 먹어치운 뒤 그녀가 입을 떼었다.
“동생에 대해서 뭘 조사하고 다니셨죠?”

“예?”
“내가 알아낸 것은 당신이 미혜를 조사한다는 것뿐이었어요. 미혜에 대해 어느 정도나 알고 계신가요?”
오명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자세하게 그녀에게 설명하였다.
“대단하시군요. 그걸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누구에게서 미혜의 억울한 죽음을 듣게 되었는지요?”

“송희라는 내 친구에게서 듣게 되었어요.”
“송희?”
지혜의 미간이 살짝 찌프러졌다.
“예, 정필대라는 남자의 아내인데⋯ 정필대씨는  얼마 전에 살해 당했어요.”
“뭐라고요? 정필대가 죽었다고요?”
지혜가 놀라 포크를 떨어뜨렸다.

“예, 아시는 분인가요?”
이번에는 오명자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알다뿐이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던 신지혜는 곧 목소리를 낮추었다.
“신문에 가끔 나는 정치인 아녜요?”
“⋯⋯”
“그 얘긴 이따가 해드리죠. 먼저 하시던 말씀이나 계속해 보세요.”
지혜는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그 정필대의 사인이 수상하다고 송희가 나한테 달려왔어요. 그러면서 방태산이 수상하니 조사해 달라고⋯”
“방태산이라는 사람과는 어떤 관계지요?”
여자의 눈이 가늘어졌다.

“아무런 관계도 없어요. 그 자 밑에서 선거운동원으로 있을 뿐이지요. 나는 방태산 씨가 어느 정도로 타락한 인간인지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조사를 시작했지요. 그 첫 대상이 신미혜 씨였던 거지요.”
“왜 하필이면 미혜지요?”

“나와 같은 여자이기 때문이지요. 송희가 건네준 자료에는 사기에 대한 것은 많았지만 여자 문제에 관한 것은 그것 하나뿐이었습니다. 여자들은 그런 문제를 숨기기 때문인 모양이에요. 사실 나도 정필대가 이 사건을 어떻게 알아냈을까 여간 궁금한 게 아니랍니다.”

“그건 궁금할 것도 없지요. 내가 그에게 가르쳐 준 것이니까요.”
“예? 어디서 말입니까?”
“그가 총각 행세를 하던 미국에서였지요.”
인생이란 얼마나 얽히고설키는 것일까? 오명자의 생각은 거기서 끊기고 말았다.

“정필대가 자살한 것이 아니고 살해 당했다고 하는 것은 확실한 이야기인가요?”
신지혜가 오명자를 가늘게 뜬 눈으로 쳐다 보았다. 그녀가 눈을 가늘게 뜰 때는 대단히 지성적으로 보였다.

“글쎄요. 저도 들은 얘기지요.”
아직 해가 떨어지지도 않은 저녁 무렵.
선거 사무실 책상 위에서 벌어진 오명자와 방태산의 불륜의 정사는 싱겁게 끝났다.

급히 서둘던 육중한 방태산의 육체는 크게 힘도 쓰지 못하고 마지막 몸부림을 치면서 뜨거운 신음을 토해 냈다. 오명자의 육체는 아직 산등성이에도 오르지 못한 채였다. 그는 잠시 헐떡이던 숨결을 가다듬은 뒤 오명자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아랫도리를 벗은 채 소파에 널부러진 방태산은 담배를 부리나케 피워 물었다. 담배 연기를 천장을 향해 길게 뿜어댔다.
오명자는 방태산의 그 모습을 책상 위에 누운 채 내려다보면서 슬퍼졌다. 슬프다기보다는 분노와 비애가 범벅된 심정이 그의 누선을 자극했다. 자신이 싫어졌다.

그녀는 갑자기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않고 그대로 있었다. 어엿한 남편을 두고 대낮 남의 사무실 책상 위에서 짐승 같은 인간에게 몸을 내맡긴 자기의 행동이 너무나 후회스러웠다.

조금 전 순간적이나마 쾌락을 향해 달리려고 하던 자기의 육체가 치사하게 보였다. 남편으로부터는 느끼지 못하던 전율 같은 것을 자기의 육체는 즐겼다. 마음과 육체가 서로 배신의 길을 가는 자신이 저주스러웠다.
“오 여사, 뭐하는기요? 또 올라갈까?”

방태산이 넋을 잃고 있는 오명자를 보고 말을 걸었다. 그녀는 허옇게 드러난 채 딴 사나이의 욕정을 받아들이던 자신의 하체를 가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검은 숲과 깊은 계곡은 책상 위에 팽개쳐져 있는 상태 그대로였다.
오명자는 이를 꼭 물고 생각했다.

‘내가 네놈의 정체를 세상에 밝히고 말 것이다.’
여자는 한참 동안 옷 입을 생각도 않고 소파에 누워 있는 방태산을 내려다보았다.
게걸스럽고 비굴해 보이는 표정으로 그녀의 아랫도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또 딴 생각을 하기 전에 일어 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자기 옷을 챙겨 입었다.
“난 어떻게 하죠?”

16. 뜻밖의 방문객

추 경감이 오랜만에 집에 있었다. 항상 사건에 쫓겨 가정을 잊다시피 한 그에게 한가한 시간도 있었다. 그가 방안에 비스듬히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동안 아내는 분주하게 안방과 부엌을 들락거렸다. 방 안에 들어와 옷을 갈아입고 나가려는 아내의 하얀 발목을 갑자기 잡았다.
“아이 깜짝이야. 이이가 왜 이래?”

아내가 추 경감을 내려다보았다. 추 경감은 오랫동안 잊고 있던 아내의 아름다움을 생각했다. 그의 심장이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도톰한 여자의 히프가 눈을 꽉 채웠다.

“여기 좀 앉아 보아.”
추 경감이 그녀를 주저앉히려고 스커트 자락을 잡아당겼다. 스커트가 훌렁 벗어지고 허벅지가 들어났다.
“이이가 정말⋯”
아내는 할 수 없이 추 경감 곁에 앉고 말았다.

추 경감은 갑자기 여자를 껴안았다. 그리고 황급히 그녀의 옷을 벗겼다.
“정말 미쳤어. 지금 대낮이에요. 나미 온단 말이에요.”
아내는 그러면서도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금세 완전한 나신이 된 여자가 추 경감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나 당신은 이제 이 짓하는 것 잊어버린 줄 알았어.”

“이 짓이라니⋯ 말좀 고상하게 하라구.”
“호호호 남녀가 남몰래 하는 짓인데⋯ ”

아내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추 경감의 남성이 미처 준비도 못한 그녀의 몸속으로 힘차게 밀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숨이 막힌 듯 신음을 토하며 입술을 깨물고 추 경감의 갈증 ㄴ어린 몸을 받아들였다. 대낮에 이런 경험을 갖기는 결혼 20여 년 만에 처음 같았다. 그것은 밤중에 치르는 행사와는 또 다른 짜릿함이 있었다.

[작가소개]

이상우;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학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

 

온라인뉴스팀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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