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여정부 금강-부산팀 갈등, 노무현 ‘文 친구 盧’ 신뢰에 잠잠
- 2017년 조기대선 친노 적자경쟁후 ‘이상기류’ 발생
[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지난 19대 대통령 선거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친노(친노무현)’다. 촛불정국 전후로 대세론을 탄 문재인 대통령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불출마 직후 대안론으로 떠오른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공통분모도 ‘친노’다. 이로인해 대선 과정에서 친노 적자 논쟁이 불가피했다.
특히 대연정을 둘러싼 양측의 갈등은 친노 분화의 서막을 열었다. 안 전 지사의 대연정 주장에 문 대통령은 “찬성하기 어렵다”고 비판하자, 안 전 지사는 “협치를 안 할 수 없다”고 재차 반박했다. 문 대통령은 “국정의 원만한 운영을 위해 야당과 협치는 필요하다는 것, 그 점에서는 생각이 다르지 않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양측의 철학 차는 분명히 드러났다.
원조 친노 안희정 문재인 두 인사는 2002년 이후 15년 만에 피할 수 없는 진검승부에 나서게 됐다. 이들 분화의 뿌리는 2002년 대선 과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 대통령은 당시 ‘부산팀’ 좌장이었다. ‘부산팀’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권변호사 시절 부산에서 같이 활동한 변호사들이 주축이며, 이호철 전 민정수석비서관 등이 핵심 멤버였다. 최인호 민주당 의원과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 송인배 전 청와대 사회조정2비서관 등도 ‘부산팀’에 속했다. 이들은 노 전 대통령과 ‘정치적 동지’라기보다는 개인적 친분에 가까웠다.
‘금강팀’은 노 전 대표통과 동고동락한 ‘정치적 동지’ 관계다. 안 전 지사는 당시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와 함께 ‘금강팀’ 실세였다. 참여정부 당시 ‘좌희정(안희정)-우광재(이광재)’로 불렸다. ‘금강팀의’ 원래 이름은 노 전 대통령의 베이스캠프인 ‘지방자치실무연구원 및 자치경영연구원’이다. 여의도 금강빌딩에 입주한 뒤 ‘금강팀’으로 통용됐다. ‘원조 친노’인 염동연 전 의원과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이해찬 현 대표가 ‘금강팀’ 멤버였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부산팀’의 문 대통령 등이 대통령 비서실장 등으로 발탁되는 등 승승장구한 반면, ‘금강팀’의 안 전 지사와 염 전 의원이 나라종금 사태로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정치적 고난을 겪었다. 당시 금강팀 멤버는 부산팀에 불만이 많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닌 문재인 친구 노무현’이라고 무한한 신뢰를 보여 참아야 했다.
결국 대선에서 최대 관전 포인트는 이른바 ‘문재인 대세론’과 ‘안희정 대안론’의 승부였다. 애초 촛불정국 때까지만 하더라도 안 전 지사의 지지율은 3∼4%에 그쳤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10%대 후반을 기록하며 문 대통령을 위협했다. 하지만 반 전 총장 불출마 이후 안 전 지사가 지지율 20%에 육박하면서 다크호스로 급부상했다. 문 대통령의 ‘보완재’와 ‘불펜투수’에 그쳤던 안 전 지사가 ‘대체재’와 ‘선발투수’로 진화한 셈이다.
그 사이 안 전 지사는 보수와 진보를 넘나드는 ‘중도의 길’을 보였다. 문 대통령의 약점인 불안정성을 부각하기 위한 ‘중도보수 끌어안기’에 나섰다. 당연히 강경 친노 성향이 다수 지지한 문 대통령과의 갈등은 불가피했다. 승리는 문 대통령이 가져갔다. 친노 적자경쟁에서 친노 분화의 시작이 됐고 1차전은 금강팀의 패배였다. 하지만 또 다른 금강팀의 멤버인 이해찬 대표가 친문 주류에 대항마로 나서고 있다. 과연 친노 적자 경쟁 2차전 승리자는 누가될지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