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몰 원인 밝히는 9시간여 분량 다큐 ‘세월X’
김관묵 교수 “외력에 의한 침몰…잠수함 유력”
해군 등 반발 “법적 대응, 공개토론 제안”
김 교수‧‘자로’ 재반박, 진화 나서기도
세월호 이슈 불 지펴…2차 특조위 구성 서둘러야
유가족, “1000일? 우리 시간은 그때 멈춰”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내년 1월 9일 세월호 참사 1000일을 맞는 가운데 최근 세월호 이슈가 급부상하고 있다. 네티즌 수사대 ‘자로’가 세월호 침몰 원인을 2년여간 분석해 만든 다큐 ‘세월X’의 내용을 놓고 논쟁이 뜨겁기 때문이다. 자로는 세월호가 침몰하게 된 원인을 ‘외력(外力)’에 의한 것이라고 보고, 그 중에 잠수함과의 충돌이 유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해군은 강경한 어조로 반박하며 법적 대응도 시사했다. 자로의 ‘멘토’로 알려진 김관묵 이화여대 나노과학부 교수는 “우리가 우격다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기회를 통해 합리적 토론으로 진실로 나아가자는 것”이라며 본인들의 주장에 대해 색안경을 벗고, 여러 가능성 중 하나로 봐줄 것을 주문했다. 세월X로 촉발된 이번 논쟁은 보다 강력한 2차 세월호 특조위의 필요성에 불을 지피고 있다.
세월X에 제시된 과학적 분석을 전담한 김 교수는 지난 28일 일요서울과 만나 조심스러우면서도 담담한 심경을 밝혔다. 그는 영상 공개 이후 쏟아진 관심과 함께 각종 항의 전화, 논쟁, 해군의 강력 반발에 대해 당혹스러운 반응을 내비쳤다. 김 교수는 “지금은 갑자기 상황이 너무 달라져서 적응이 안 된다. 얼떨떨하다”며 “복잡하면서도 담담한 심정”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우선 해군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전제하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해군은 세월X가 공개된 이튿날인 지난 27일 입장 발표를 내 이들의 ‘잠수함 침몰’ 주장을 강하게 반박한 바 있다. 그는 “불쾌한 얘기일 수 있다. 사회적 책임이 뒤따르는 문제고, 군으로서 명예도 있는 것”이라며 “다만 내부 요인 등으로는 도저히 침몰 원인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외부 요인 중에 잠수함이 가장 유력하므로 이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부 요인 제거하니
결론은 잠수함 유력 주장
김 교수와 자로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세월X는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한 정부 발표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지난 2014년 10월 검찰은 세월호가 과적, 고박 불량, 선체 복원력 부실, 조타 실수 등으로 침몰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들은 각종 사진 및 영상, 언론 보도, 재판 결과, 외국 논문 등 수많은 데이터를 근거로 과학적 분석을 통해 이를 하나하나 반박한다.
자로는 세월호가 취항 뒤 총 241회 운항 중 139차례나 과적했는데, 침몰 당일보다 3배 가량 적재한 날도 많았으며 오히려 당일은 평소보다 과적량이 적었다고 밝힌다. 그날만 과적한 것이 아니라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조타 실수 혐의는 대법 판결에서 증거 부족으로 무죄가 나왔고, 사고 당일 각종 사진 등을 분석한 결과 선체 내 차량과 화물 결박이 잘 돼 있다고 판단했다.
또 세월호가 불법 증축으로 복원력이 나빠진 것은 맞지만 침몰의 결정적 원인은 아니며, 평형수가 실제 부족하다고 볼 수 없고, 과적의 원인으로 꼽힌 철근 400톤은 오히려 조타 실수를 어렵게 한다 등의 논리를 펼친다.
내부 원인을 하나씩 소거한 자로는 시선을 외부로 돌렸다. 세월호 침몰에 ‘외력’의 흔적을 제시했다. 생존 승객과 선원들이 공통적으로 ‘날아갈 정도의 큰 외부 충격을 느꼈다’고 증언한 점에 주목했다. 또 결정적으로 2014년 6월 심상정 의원을 통해 보도한 JTBC의 진도 VTS(해상교통관제센터) 레이더 영상에 세월호 침몰 당시 괴물체로 의심되는 주황색 점을 발견했다.

이 주황색 물체는 기존에 ‘컨테이너’라고 알려졌지만 자로는 이를 반박했다. 자로는 이를 RCS(레이더 반사면적)으로 계산하면 세월호의 6분의 1크기로 매우 큰 데다 주변 수심이 50m로 깊고, 당시 조류 흐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점 등을 근거로 자체 동력을 가진 물체로 봤다. 괴물체의 정체는 잠수함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며, 이를 정확히 밝히기 위해서는 실제 그 괴물체가 찍혀 있을 해군3함대 레이더 영상을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로는 세월X를 지난 26일 유투브에 공개한 이후 CBS라디오에 출연해 해군이 잠수함 충돌에 대해 밝히지 않는 이유를 조심스럽게 언급하기도 했다. 자로는 해군이 세계 최초 200만 미터 무사고 신기록과 잠수함 해외 수출에 따른 경제적 효과 등의 근거로 추정했다.
하지만 해군은 이튿날 강경한 어조로 이를 반박했다. 해군은 우선 “세월호 침몰 당시 맹골 수로를 항해하거나 주변에서 훈련을 한 잠수함이 없었고, 이 일대 평균 수심이 약 37미터로 조류가 빨라 잠수함이 잠항할 수 없는 해역”이라고 밝혔다. 또 만약 잠수함과 세월호가 충돌했다면 상식적으로 잠수함에 큰 손상이 발생할 것인데 잠수함 수리나 부상자가 발생한 사례도 없었다고 했다.
해군은 또 “‘잠수함 충돌 사고 은폐는 잠수함 무사고 200만 마일 달성이라는 기록과 잠수함의 해외 수출과 연관이 있다’고 추정하는 것은 잠수함 승조원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으로써 묵과할 수 없다”면서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서 법적 대응 등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김혁수 예비역 해군제독(현 대한민국 잠수함연맹 회장) 등 해군 유관 단체들은 공개토론에 나설 것을 제안했다.
김 교수, 토론 의사 밝혀
논쟁에 대한 심경 토로
김 교수는 공개 토론에 대한 의사를 밝히면서 해군 입장을 재반박했다. 그는 해군이 이야기하는 수심에 대해 “맹골수도 일대와 북쪽 주변은 37m가 맞지만, 침몰 지점이 아닌 사고가 일어난 ‘회전’ 지점과 남쪽 일대는 수심이 최소 50m 이상이므로 잠수함 잠항이 가능하다”며 “해군이 엉뚱한 곳의 수심을 말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침몰 지점) 여기는 비공개 상시적으로 잠수함이 다니는 곳은 맞다”라는 해경 관계자의 증언도 나온 바 있다.
진도 VTS 레이더의 주황색 물체에 대해 김 교수는 “선박 전문가에 따르면 간혹 레이더에 허상이 잡히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주황색 물체는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10여 분간 지속적으로 일정한 움직임이 있고, 분석 결과 컨테이너보다 훨씬 큰 물체로 나타났기 때문에 잠수함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 추론”이라고 밝혔다.
해군은 만약 잠수함과 세월호가 충돌했더라도 잠수함이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앞서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해상 충돌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육상 충돌과 다르고 변수가 있기 때문에 속단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자로는 자신의 SNS에 한 네티즌의 글을 인용해 이를 뒷받침하기도 했다.
잠수함 관련 업무를 오랫동안 해왔다는 이 네티즌은 “잠수함은 압력선체와 비압력선체로 구분할 수 있는데, 압력선체는 승조원이 머무는 잠수함 본체로 굉장히 단단한 구조와 높은 강도의 재질(HY강)로 만들어져 깊은 수심의 높은 수압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다”며 “압력선체는 웬만한 미사일을 맞아도 찢어지지 않고 그저 찌그러질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인터넷에 떠도는 잠수함이 찢긴 사진들을 보면 압력선체 바깥(비압력선체)의 구조물들이 부서진 것들”이라며 “잠수함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수압 40~60Bar까지 버티며 찌그러질지언정 찢어져 뚫리지는 않는 아주 강력한 구조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월호와 정면 충돌했더라도 잠수함의 침수 가능성은 매우 낮다. 단지 곳곳이 찌그러질 수는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이 문제를 2년여 간 틈틈이 분석해오면서 후회한 적도 많았다고 밝혔다. 그는 “그간 조사 내용을 블로그에 올렸는데 각종 욕설, 항의, 비난을 받았다”며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 등 회의감이 든 적도 많았다”고 털어났다. “하지만 ‘진짜’ 사고 원인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고, 풀리지 않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어 찜찜했다”며 “스스로 납득할 만한 수준의 결론은 내고 싶었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우리는 사실 비전문가 아닌가. 우리가 얘기하는 부분에 대해 전문가들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해군 단체 측이 제안한 공개 토론에 나설 의향이 있음을 밝혔다. 김 교수는 또 “이 부분이 국제학회에 보고돼 사고 원인에 대해 선박 관련 전문가·교수 등이 여러 가지 각도로 분석하고 객관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도 2차 세월호 특조위가 만들어져 이 부분을 충분한 가능성이 있는 원인 중 하나로 고려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월호 특조위 2기 시급
관련 법안 ‘신속처리안건’ 지정
세월호 침몰 원인을 놓고 양측이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세월호 특조위가 다시 부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금의 세월호 특조위는 논란 끝에 지난해 9월 활동을 공식 마감했고, 소수의 조사관들이 자체 조사 활동을 벌이고 있다. ‘세월호 변호사’로 알려진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진상을 규명할 독립기구가 시급하다”며 “2기 특조위를 위해 관련 법안을 발의했고 이 법안이 최근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됐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살균제 피해사건을 함께 묶은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진상규명 특별법)을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했다. 이로써 최대 약 1년 이내에는 해당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자동 상정’될 예정이다. 물론 이후 절차에서 여야 합의가 원만하게 이뤄진다면 짧은 시간 내에 본회의에서 의결될 수도 있다. 이번 진상규명 특별법은 조사기간 보장과 특검후보 단독 추천권 등 이전보다 권한이 강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세월호 참사 원인 규명을 위한 또다른 축인 선체 인양도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초 올해 7월 목표였던 인양 작업은 현재 75%까지 진행됐다. 인양할 때 선체를 받치는 ‘받침대’ 역할을 하는 리프팅빔 설치가 완료돼 사실상 들어 올리는 작업만 남았다. 다만 그동안 업체 선정 논란, 선체 파손 의혹 등이 불거져 인양이 돼도 얼마만큼 진실에 다가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음달 9일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0일째 되는 날이다. 하지만 유가족에겐 별다른 의미가 없어 보인다. 정성욱 4.16 가족협의회 선체인양분과장은 “말이 천일이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다”며 “날짜가 지나고 시간만 흘렀을 뿐 우리의 시간은 여전히 2014년 4월 16일에 멈춰있다”고 말했다. 그는 세월X 다큐에 대해서도 짧게 언급했다. 그는 “그 영상이 세월호 사건을 다시 부각시킨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영상 공개를 앞두고 자로는 “세월X가 별이 된 아이들에게 보내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후 “저는 이 다큐에서 정답을 말한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진 것’”이라며 “세월X는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권녕찬 기자 kwoness7738@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