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 대통령이 대한통운 매각 지시했다”
94년 성수대교 붕괴와 97년 외환위기로 몰락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김대중 정부의 업적 중 하나는 외환위기 극복이다. 하지만 반대로 많은 기업과 기업인들이 김대중 정부 시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대표적인 기업이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이다. 이들 기업과 기업인들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최고의 경영인’부터 ‘먹튀 경영인’까지 극과극의 평가를 받으며 회자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의 이름이 언론에 다시 거론됐다. 올해 학교법인이 증여세를 부과받자 “김대중 정부 때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그로 인해 지금까지 고통 받고 있다. 더 이상 나로 인해 학교법인까지 어렵게 할 수는 없다”며 월간조선과 인터뷰를 자청하면서부터다. [일요서울]은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의 과거와 오늘을 살펴보고자 한다.
언론에서 사라졌던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의 이름은 지난해 7월부터 언론에 오르내렸다. 차남인 최모씨가 물놀이를 하다가 변을 당했다는 기사가 주였다. 최씨는 경기 가평군 설악면 미사리 홍천강에서 가족과 함께 물놀이를 하다가 물에 빠져 119에 구조됐으나 사망했다. 당시만 해도 최 전 회장은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최 전 회장이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최 전 회장은 월간조선과 9월호에서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인터뷰를 통해 앞서 밝힌 것처럼 “김대중 정부 때 모든 것을 잃었다”고 성토했다. 또 “동아그룹 해체는 부도·파산의 책임을 오너에게 뒤집어씌운 기업 파괴 사건”이라고 말했고 “김대중 대통령이 대한통운 매각을 지시했다”고 밝히는 등 그룹해체의 부당함을 밝히기도 했다.
현재 최 전 회장은 공산학원을 설립해 동아마이스터고등학교와 동아방송예술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공산학원은 1977년 동아그룹이 세운 학교법인이다. 외환위기 당시 그룹은 해체됐지만 이 학교법인만큼은 지금까지 지켜왔다.
국내 최고의 그룹이 산산조각나기까지
동아그룹의 핵심은 동아건설이다. 동아건설은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계기로 현대건설과 함께 국내 최고 건설회사 반열에 올랐고 ‘인류 역사상 최대 토목공사’라는 찬사와 함께 세계 최대 백과사전인 브리태니커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최 전 회장은 1983년 39억달러 규모의 리비아 대수로 1단계 공사를 따내며 카다피와 인연을 맺은 뒤 공사 수행능력을 인정받아 1990년 62억달러 규모의 2단계 공사, 1998년 51억달러 규모의 3단계공사까지 따냈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는 추정 매장량 35조톤에 달하는 리비아 동남부와 서남부 사막지대 지하의 풍부한 수자원을 취수, 지중해 연안까지 끌어와 지중해 연안 농지 관개용수를 비롯한 산업용수와 생활용수로 쓰기 위해 대형 수로관을 연결하는 사업이다. 당시 트럭에 수로관을 싣고 가는 행렬이 인공위성에서 보인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세기의 건설역사였다.
리비아대수로 공사를 통해 글로벌 건설기업으로 승승장구하던 동아건설은 1994년 성수대교 붕괴와 1997년 외환위기 여파로 어려움이 가중됐고 1조원에 달하는 경기 김포 매립지 개발 투자로 자금난이 계속되며 유동성 위기에 몰렸다.
결국 1998년 8월 구조조정 협약에 따라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기업으로 선정됐다. 당시 최 회장은 5월 16일 동아건설 등 4개 계열사의 모든 보유 주식에 대한 처분권을 채권은행단에 위임한 상태에서 회장직을 내놓았다.
이후 2000년 11월 법정관리 대상기업으로 결정돼 퇴출됐다가 2001년 5월 파산선고를 받았다. 동아건설은 2008년 국내 굴지의 시행사인 프라임산업에 인수되며 정상기업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동산시장이 침체되면서 프라임그룹은 동아건설 성장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러던 중 2009년 7월 동아건설 자금부장 출신인 박모씨가 동아건설 법정관리자금 900억원을 횡령해 도주한 대형 금융사고까지 발생했다. 당시 박 부장은 신한은행 신탁계좌에 있던 동아건설의 신탁자금 1540억원 중 900여억 원을 7~8차례에 걸쳐 하나은행 계좌로 이체하고 돈을 인출해 달아났다. 이 때문에 법정소송으로 번졌으나 패소, 수백억 원의 채무가 발생했다.
이후 프라임그룹은 그룹 계열사 중 규모가 가장 큰 동아건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고 동아건설의 유동성도 고갈됨에 따라 법정관리를 신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학교법인 운영하며 버텨온 인고의 세월
그룹은 몰락했지만 최 전 회장은 교육법인 공산학원을 버팀목 삼아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이를 바탕으로 동아마이스터고등학교와 동아방송예술대학교를 운영해 왔다. 그런데 올해 초 공산학원이 세무당국으로부터 100억 원의 증여세를 납부하라는 세금폭탄을 맞았다.
동아마이스터고등학교는 공산학원 설립 이듬해인 1978년에 문을 열었다. 설립 때부터 동아건설과 대한통운 주식 각각 20만 주씩 총 40만 주를 보유한 부자 법인이었다. 여기서 생기는 이익금으로 학교재정을 뒷받침해 왔다.
덕분에 동아마이스터고는 개교 때부터 1996년까지 19년간 정부의 보조금을 전혀 받지 않고 학교를 운영해 왔다. 개교 초기 전교생이 1500여 명에 달했는데 수업료가 무료였다.
2010년 마이스터고로 전환된 후에는 우수한 학생들이 몰렸다. 그 결과 마이스터고 1기 졸업생의 취업률은 100%를 달성했다. 올해 졸업한 2기 졸업생들의 취업률도 96.4%에 이른다. 이중에서 대기업 및 공기업·중견기업 취업자 비율이 60.3%(1기), 63.2%(2기)에 달한다. 현재 재학생의 60%는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동아방송예술대는 1997년에 설립한 전문대학이다. 방송, 예술 분야의 전문인력을 키우기 위해 만들어졌다. 시설과 교육 내용이 좋다 보니 매년 경쟁률도 높다. 2014년도 수시입학 경쟁률이 200대 1이다.
공산학원 100억대 세금 낼 처지
공산학원이 세금폭탄을 맞게 된 사연의 시작은 김대중 정부 마지막 해였던 2002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 전 회장은 대전MBC 주식 9만8000주(비상장·지분율 49%·추정가액 약 165억원)를 공산학원에 출연했다. 그러자 예금보험공사는 최 회장의 대전MBC 주식 출연을 ‘사해행위’로 판단, 법적조치를 취했다. 동아건설이 대한종금에 진 빚 180억 원을 최 회장이 갚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재산을 엉뚱한 곳(학교법인)으로 빼돌렸다는 것이다. 법원은 대한종금이 낸 주식 처분 금지 가처분 신청을 즉각 받아들였고 재판이 진행되는 4년 동안 압류하고 있다가 2008년 5월 경매처분했다.
관할 세무서인 평택세무서는 2002년 최 회장으로부터 대전MBC 주식(지분 49%)을 출연 받은 공산학원에 올해 초 증여세 97억6640만원을 내라고 처분했다. 증여세는 세금을 내지 않을 경우 가산금이 붙어 170억 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 평택세무서는 지난 4월 학교법인 소유의 부동산을 압류조치했다. 최 전 회장은 억울하다는 입장이지만 현재로서는 법적 다툼을 벌이는 수 밖에 없다.
과거 찬란했던 그룹의 해체를 눈물로 지켜 봤던 최 전 회장이 이번에는 어떤 카드로 공산학원을 지켜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freeore@ilyoseoul.co.kr
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