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모 교수의 ‘문화재 산책’] “3백만 원이면 가짜도 국보급으로…거짓 감정서 써주는 학자들”
[정양모 교수의 ‘문화재 산책’] “3백만 원이면 가짜도 국보급으로…거짓 감정서 써주는 학자들”
  • 정양모 교수
  • 입력 2014-09-01 15:03
  • 승인 2014.09.01 15:03
  • 호수 1061
  • 6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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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우리 문화재 진수 세상에 알려야

어떤 상인이 물건을 수장가에 얼마에 갖다 주고 거래가 시작되면 자기와 사이가 나쁜 가게라면 거기 가서는 “이 물건 요새 싼값으로 돌아다녔고 물건도 신통치 아니하다”고 여러 사람에게 얘기해 성사를 방해한다. 반대로 가짜나 이상한 물건을 자신과 친한 가게나 자신과 밀약이 됐다면 자신과 여러 사람이 차례로 가서 “그 물건 결국 선생께 왔군요. 잘 됐습니다” 하고 차례로 여러 사람이 가서 성사를 시킨다.

또 어느 대학자나 위대한 감정가가 평가를 했어도 자기가 가짜를 파는데 혹 방해가 될 인물이라고 생각되면 갖은 모함을 다 하고 다닌다. 자본이 없는 소상인이 꽤 괜찮은 유물을 확보했으나 자신은 얼른 팔 자신이 없어 2억쯤 가는 물건을 실력이 있고 재력이 넉넉하다는 거상에게 가지고 가서 부탁하니까 “걱정 말라”고 하면서 반년이나 지나서 소상인이 바라던 값의 1/10도 못되는 값을 주면서 내치는 일이 너무 많아도 하소연 할 길도 없다고 한다.

결국 거상은 2억 원짜리를 5000에서 6000만 원쯤에 쉽게 넘기고 소상인에게는 2000만 원만 줬다는 얘기이다. 나는 수 십 년 전부터 이러한 변태적 행위가 그들 자신들의 무덤을 파는 행위인데 왜들 정신을 못 차리고 계속 그런 잘못된 행위를 하느냐고 수없이 고언을 그분들에게 이야기한 바 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상인들이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참으로 할 수 없이 그런 유혹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학교수나 전문연구가라고 자칭하는 사람들도 악덕상인과 한 그룹이 돼 거기에 동조하고 악덕상인을 비호하고 나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이다.

벌써 십여 년 전부터 소문이 돌았고 본인도 실제로 본 일이 있다. 어떤 고미술분야 대학교수가 대단한 국보급 도자기라고 써준 감정서를 가지고 여러 사람이 어떻게 소개해서 본인에게 찾아 온 일이 여러 차례 있다. 본인이 보기에는 국보급은 물론 아니고 잘 모를 물건이다. 나는 평생을 전국의 가마를 조사 발굴하고 수많은 파편을 보고 박물관 미술관에서 실물은 직접 만져보고 조사하고 관찰하고 그려 보고 사진을 찍어 보관 검토하고 있다. 그래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 것은 모른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면 금방 사방에게 비난이 쏟아진다. 나는 모르니까 모른다고 한 죄 밖에 없다.

그래서 본인에게는 감정문의가 잘 오지 아니하지만 또 누가 와서 모른다고 하면 문의하러 온 사람이 “선생님 전에는 200만 원 주면 도자기 회화 감정서 써주었지만 요새는 300만 원 주면 국보급이라고 감정서 써줍니다” 그러면 나는 모르니까 가보십시오 한다. 그리고 양심을 지키려는 학자를 비방하고 매도하고 갖은 소문을 다 퍼트려서 매장하려고 한다.

세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마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누굴 믿고 우리 고미술품을 수집가가 사려고 하고 고미술품에 애정을 기울일 수 있겠는가. 국민, 청와대와 정부, 국회, 입법사법부, 검찰, 경찰 등이 모두 이러한 현실을 직접 조사하고 직시해 대오각성해 이 창피하고 슬픈 사실을 타개해 광명하고 맑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하지 않겠는가. 우리 고미술 시장을 파괴하는 이러한 행위가 어느 세월에 바로 잡혀질지 생각할수록 한숨만 나온다. 우리 고미술은 세상에 둘도 없는 독창적이고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빨리 그 진수를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할 것 아닌가.
 
 

▲ <한국미술발전연구소>

백자준(白磁樽)
18세기 전반 호림박물관 소장

18세기 전반 백자 달항아리는 벌써 1960년대부터 고미술을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크게 좋아했다. 그러다가 2004년경부터 백자달항아리가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아 지금 고미술시장이 파탄일로에 있는데도 백자달항아리의 인기는 식을줄 모르고 외국 박물관에서도 큼직한 백자 달항아리를 구하고 있다는 소문이 자주 들린다.
그런데 달덩이 같이 둥근 달항아리에 못지 않게 잘생긴 키 큰 준이 왜 아직까지 이해할 줄 아는 도자 전문가도 거의 없고 일반인은 물론이고 수장가 조차 그 아름다움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백자 달항아리와 백자준은 17세기라는 정치사회의 혼란한 가치 개념의 혼돈 속에서 자성하고 자아를 발견하면서 17세기 후반부터 한국의 새로운 항아리의 이상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시대에 청화문양이 있는 것은 거의 키 큰 준이고 값도 크게 비싸지만 사실은 문양이 없는 준이 훨씬 아름답다.

이 항아리는 약간 벌어진 입이 비스듬히 서있고 어깨를 포함한 상동(上胴)이 확 퍼져서 아주 넓고 시원한데 상동 밑위 허리에서부터 훌쭉하게 훨씬 줄어들어 구연부 보다 폭이 아주 좁은 굽에 이른다. 달항아리와 같은 비례와 형식이다.

지금도 달항아리를 만드는 사람은 수십명이지만 키가 큰 준을 만드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2004년인가 문화재청에서 18세기 한국 항아리의 이상인 둥근 항아리만 조사해서 전시도하고 도록도 만들면서 같은 한국 항아리의 잘생긴 이상형인 키 큰 준은 아무 관심도 없고 조사는 물론 전시할 꿈도 못꾸었다. 국가시책의 조그마한 착오가 이런 큰 착오와 과오를 남기는 법이다.  

정양모 교수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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