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 부산에 거주하는 한 중견기업 사장 내외가 1년 전 황당한 일을 겪어야 했다. 18년간 때론 친구처럼 가까이 지내왔던 운전기사가 아내를 강간했던 것. 그를 고용한 사장은 그의 전과 사실도 묵인하면서까지 그를 한 식구처럼 대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을 지켜본 경찰들은 삭막해진 세태를 반영한 것이 아니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 비극의 주인공은 전과 2범 운전기사 손모(50)씨와 18년간 동고동락(?)했던 부산 모 중견기업 사장 내외. 손씨는 18년 동안 모셔온 사장 김모(55)씨의 부인 이모(50)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1년여간 도피생활을 하다 최근 경찰에 검거됐다.
사건을 담당했던 부산 남부경찰서 관계자에 따르면, 손씨는 부산 근교의 농장 등지를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일자리를 구해 그간 경찰의 감시망을 피할 수 있었다. 이 관계자는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부산 인근 농장을 수색하던 중 돼지농장서 한가하게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손씨를 발견할 수 있었다”며 “체포 당시 그는 별다른 저항이 없었다”고 전했다.
평소 지리에 능한 탓에 수사망을 피해 1년간 부산근교의 농장을 옮겨 다니며 살아왔다는 손씨. 18년간 모신 사모님을 성폭행한 손씨는 도대체 무슨 생각에서 이같은 파렴치한 짓을 저지른 것일까. 그 사건의 전모를 들여다봤다.
베푼 은혜를 원수로 되갚은 파렴치한
경찰에 따르면 손씨와 부산의 중견기업의 사장 김씨와의 인연은 지난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손씨는 폭력전과 2범이었지만, 사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운전기사로 채용했다.
손씨는 김씨의 눈 밖에 나는 일 없이 성실히 일했고, 김씨의 도움으로 결혼도 하게 됐다. 결혼 후 두 딸을 낳은 손씨는 전과자에서 평범한 사회인의 길을 걷게 됐다. 전과자라는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감싸준 김씨 부부의 배려 때문이었다.
그리고 18년이 흘렀다. 손씨는 김씨가 누구보다 믿고 의지하는 ‘사장의 오른팔’이 됐다. 손씨는 비록 운전기사였지만 사장의 이런 믿음이 있었던 탓인지 회사에서도 부장급 대우를 받고 있었다.
전과자에서 사회인으로 나름대로의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손씨가 엇나가게 된 것은 지금부터 1년 전. 3년 전부터 지병을 앓고 있던 김씨는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신세를 지고 만다.
속병이 깊은 탓인지 김씨는 거동조차 하지 못한 채 병실에 누워 있어야만 하는 처지가 된 것. 장성한 김씨 부부의 20대 중반인 자녀들은 미국과 중국 등지로 해외유학을 나간 상황이라 부인인 이씨가 김씨의 곁을 홀로 지켜야 했다.
이 때부터 손씨는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히고 만다. 물론 처음부터 손씨가 이씨를 어떻게 해볼 생각은 없었다.
손씨는 이씨가 남편 김씨의 병수발을 1년 동안 해온 것을 안쓰럽게 생각하게 된 것. 1년 동안 김씨의 병수발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이씨를 보면서 손씨의 가슴에는 어느덧 연정이 피어나게 된 것.
어느 날 이씨에 대한 애틋한 연정은 순간적인 욕정으로 바뀌면서 사단이 나고 만다. 손씨는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혀 집안을 혼자 지키고 있는 이씨를 찾아가 몹쓸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손씨가 이씨를 찾아간 시각은 지난해 11월경 어느날 오후 2시. 이날 손씨는 이씨에게 “사장님이 옷가지를 좀 가져오라고 했다”며 거짓말을 하고 부산 남구에 있는 이씨의 아파트를 찾아갔다. 그날따라 이틀에 한 번 꼴로 오던 가정부도 나오지 않는 날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혼자 집에 있었지만 18년이나 얼굴을 봐왔던 사람이기에 아무런 의심 없이 문을 열어주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손씨는 이씨를 덮쳤다. 당황한 이씨가 손씨의 손길을 뿌리치려 애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이씨는 손씨가 성폭행을 하려 한다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손씨로부터 상처까지 입게 됐다. 손씨에게 폭행을 당하면서도 이씨는 그를 저지시키려 했지만 결국 어쩔 도리 없이 당하고 말았다.
“성관계에 목마른 것 같아서” 변명
손씨는 왜 전과자인 자신을 18년간 보살펴준 사장의 부인에게 몹쓸 짓을 벌인 것일까. 경찰에 따르면, 손씨는 1년 동안 김씨의 병수발로 힘들어하는 이씨를 보면서 애틋한 연정을 품었고, 이씨의 외로움을 달래주려는 마음에서 강간을 시도했다는 엉뚱한 답변을 내놨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이씨와 김씨는 5년 전부터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지병을 앓아왔던 김씨는 부부관계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1년 전부터 사장은 집을 떠나 병원에서 생활을 해왔던 터라 이씨가 외로움을 탈 것이라고 손씨는 느꼈던 것이다.
손씨의 진술에 타당성은 있는 걸까. 경찰은 이에 대해 “그럴 확률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것은 손씨의 변명이자 착각이다. 만약 이씨의 유혹으로 관계가 이루어졌다면 폭력이 이루어질 필요가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또 경찰은 “손씨가 만약 떳떳했으면 도망 갈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사건 발생후 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씨는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상태인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김씨를 비롯한 김씨의 두 아들은 단순 폭력사건으로 알 뿐, 성폭행 사실은 모르고 있는 상태라고. 경찰은 “이는 남편 김씨가 받을 심한 배신감을 걱정한 이씨의 간곡한 부탁 때문”이라며 씁쓸해 했다.
18년 동안 변함없이 손씨를 믿어온 김씨 부부. 이런 김씨와 이씨에 대해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던 손씨. 그러나 결국 한 순간의 실수로 손씨와 김씨 부부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 됐다.
배수호 4477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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