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재산은 29만1,000원이 전부다.”
전두환 전대통령이 2003년 초 서울 서부지법에서 재산명시 신청 당시 밝힌 재산 규모다. 하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 이후에도 전씨의 숨겨둔 재산이 속속 드러나면서 그의 ‘발언’은 세간의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최근 전씨 가족 계좌에서 괴자금이 포착됨에 따라 그는 또 한차례 자신의 재산과 관련된 해명을 해야하는 처지에 놓였다.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FIU)은 지난 8월 현금화된 ‘증권금융채권’ 일부가 전씨의 차남 재용씨와 재용씨의 두 아들 관련 계좌에 입금된 것을 확인했다면서 검찰에 이 사실을 통보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괴자금 41억원의 출처를 확인하기 위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전씨 추징금 징수율이 24%에 그쳐, 그동안 체면을 구겨온 검찰이 또 한차례 대대적인 채권시장 조사에 나설지도 관심이 모아지는 대목이다.
검찰이 가장 중시하는 부분은 만기가 지난 채권을 최근에야 현금으로 바꾼 점이다. 재용씨와 재용씨 아들의 계좌로 들어간 현금은 1998년 발행된 5년 만기 채권을 바꾼 것이다. 채권 만기가 지난 이후에는 이자가 보태지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2003년 10월부터 최근까지 3년여 동안 41억원에 대한 이자를 포기한 셈이다.
2003년 당시는 검찰이 전씨의 비자금 추징을 위해 전씨 자택을 압류하고 재용씨 등이 연루된 100억원대 뭉칫돈이 발견돼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던 시기였다. 전씨가 비자금이 들통날 것을 우려해 이자를 포기하면서까지 장기간 은닉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번 수사로, 재용씨 주변에 대한 비자금 수사가 다시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상당하다. 특히, 전씨와 재용씨 등이 검찰에 소환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증권금융채권의 성격 상, 철저하게 ‘익명’으로 유통된다는 점에서 당사자들의 진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자 포기하고 장기간 은닉(?)
서울중앙지검 한 관계자는 “2004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밝혀낸 재용씨의 돈 167억원과 관련해 재용씨는 외할아버지에게 받았다고 주장하며 출처를 끝까지 밝히지 않은 전례가 있다”며 “출처확인이 어렵겠지만, 당사자들은 이 부분에 대해 알고 있지 않겠느냐”고 말해 검찰 소환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자금이 전씨의 숨겨진 재산으로 밝혀질 경우, 채권시장에 숨겨진 또 다른 비자금을 찾는 중요한 단서가 될 전망이다. 일각에선 “전씨와 관련된 수백억원의 비자금 실체가 현실로 드러나는 것 아니냐”는 기대심리도 감지되고 있다.
지난 1996년 전씨 비자금 공판에서 검찰은 전씨가 재임 기간에 무려 9,500억원의 자금을 조성해 무기명 채권 등으로 은닉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이 언급한 추정치가 과대 평가됐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2,000억원 정도는 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전씨는 1997년 4월 대법원 확정판결에서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받았지만, 현재 1,672억원을 내지 않고 버티고 있다. 검찰이 추징한 액수는 5차례에 걸쳐 모두 513억원으로 징수율이 24% 수준이다. 반면, 사채시장에선 전씨 주변 인물들이 줄곧 무기명 채권 등을 현금화해 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재용씨가 현금으로 전환한 증권금융채권은 외환위기로 유동성 위기가 심했던 1998년 9~10월 두 달간 발행됐는데 금융거래실명제 적용을 받지 않아 이른바 ‘묻지마 채권’으로 불린다. 당시 시중 금리가 30%를 오르내리던 상황이었지만 자금 출처를 묻지 않고 거래 시 실명 확인을 생략하는 것은 물론 상속세·증여세가 면제되고 이자소득에 대해 분리과세 적용도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줬기 때문에 낮은 표면금리에도 인기를 끌었다.
외환위기 직후 지하자금을 끌어내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진행된 것. 이런 이유로 묻지마 채권은 비자금이나 불법 정치자금 용도로 애용돼 왔다. 지난 2003년 현대 비자금 사건에서도 김영환씨가 비자금의 일부를 증권금융채권으로 관리했었다.
전씨 일가는 특히 비자금 축적을 위해 채권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지난 1995년 검찰의 전씨 비자금 수사결과에 따르면 전씨는 퇴임 직후인 1987년부터 1992년까지 장기신용채권과 산업은행채권을 무려 1,404억원어치나 사들였다. 2000년 재용씨가 전씨로부터 증여받은 것은 액면가 73억원인 국민주택채권 1,013장이었다. 재용씨가 구속되자, 2004년 전씨의 부인 이순자씨가 추징금을 대납하는 형식으로 납부한 130억원 대부분이 채권이었다.
전문가 뺨치는 돈세탁 기술
검찰측 인사는 “국가가 자금 출처를 묻지 않겠다는 조건을 승인한 채권이라 그 돈이 누구 것인지 출처를 확인할 방법은 있는지, 출처조사가 가능하더라도 그게 법적으로 허용되는지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 채권의 만기일은 앞서도 밝혔듯이 2003년 10월 31일이다. 재용씨가 뒤늦게 채권을 회수하기 위해 치밀한 돈세탁 과정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명동 사채시장 등에 따르면 전씨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무기명 채권은 이미 지난 2002년께 대부분 현금화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명동 사채시장 한 소식통은 “2002년 초에 이미 전씨 채권이 거의 현금화됐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2002년 이전에만 해도 전씨 관련 채권을 현금화하려는 사람들이 명동 일대에 꽤 많았지만 2002년 말에는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고 말했다.
반면, 일부 사채업자들은 “아직까지 현금화되지 않은 채권이 2조원대에 이른다”고 말해 정치권과 재계의 검은 돈이 기회를 엿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채시장 관계자 A씨는 “전자 발행이 되기 전에 이미 유통되던 종이채권 중 돌아오지 않은 채권 규모가 아직도 2조원 이상인 것으로 안다”면서 “그 중에는 검찰이 추적하는 자금도 포함돼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이제 와서야 전씨 관련 자금이 현금화 됐다고 한다면, 본류가 아닌 지류에 저장된 것들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채시장은 대선자금 수사 당시 검찰의 수사로 거의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당시 명동 일대 120여명에 이르는 채권업자들이 연일 검찰에 불려 다니며 모든 내용을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로 곤욕을 치르고 비밀 장부까지 압수당한 채권업자 중 상당수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A씨는 “대선자금 수사 당시 명동 일대 120여명에 이르는 채권업자들이 철저하게 조사를 받았다”며 “전두환씨와 연계된 본류 인사들이 개입된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2003년 초부터 채권 관련 루머가 시장에서 사라졌다”며 “그만큼 종이채권이 줄었다는 얘기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씨 비자금 수사와 관련된 뒷얘기도 무성하다.
전씨 일가의 ‘연출’은 무죄
전씨가 추징금을 내지 않고 골프에 해외여행 등 호화생활을 하자 비난여론이 비등했다. 그러자 검찰은 2003년 전씨를 법정으로 불러내 실제 재산이 얼마인지 밝히도록 했다. 그러나 전씨는 “전 재산은 예금 29만1,000원뿐”이라고 말했다. 부인 이순자씨도 200억원을 대납하면서 “친정살이를 하며 어렵게 모은 알토란 같은 내 돈”이라고 주장했다. 재용씨는 2004년 조사를 받기 위해 대검찰청에 나오면서 단종된 지 10년된 구형 승용차를 타고 나오는 초라한 행색을 연출하기도 했다.
한편, 현재 전씨의 추징 시효는 2009년 6월까지이며 그 사이 전씨 재산을 추가로 찾아내 추징하면 시효는 다시 3년 연장된다.
# 전두환씨 비자금 추징 전례
▲1997년
대법원 2,205억원 추징금 선고
(선고 직후 312억원 자진 납부)
▲2000년
전씨 소유 벤츠승용차, 아들 명의 용평 콘도 회원권 경매
(경매가 합계 1억1,200만원 환수)
▲2003년 4월
전씨 “전 재산 29만원뿐 발언”
▲2003년 10월
대검 중수부, 차남 재용씨가 관리 중이던 176억원 포착
(법원에서 73억5,000만원만 전씨 비자금으로 인정됨. 현재 미추징)
▲2003년 10월, 11월
연희동 자택 30평 별채·자택 가재도구 경매
각각 16억4,800만원, 1억7,950만원 환수
▲2004년 5월
전씨 부인 이순자씨 130억 추징금 대납
(채권 102억원, 현금 및 수표 28억원)
추가로 이씨 친척 명의 70억원 추징금 대납
▲2004년 11월
서초동 1628의 67 일대 땅 51.2평 압류
1억1,900만원 환수
▲2006년 11월
재용씨와 재용씨 아들 계좌에 비자금 의심 41억원 포착
FIU 검찰에 통보
# ‘무기명 채권’이란?
무기명채권이란 돈 가뭄이 극심했던 외환위기 당시인 지난 1998년 발행돼 금융거래실명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 채권으로 일명 ‘묻지마 채권’으로 불린다.
무기명채권은 총 3차례에 걸쳐 발행됐다. 1998년 6월의 근로복지공단 발행 7,730억원의 고용안정채권, 같은 해 증권금융 발행의 2조원 증권금융채권, 중소기업진흥공단 발행의 1조원 중소기업구조조정채권 등 3가지다.
이들 채권은 당시 돈 가뭄이 극심했던 상황에서 자금을 끌어 모으기 위해 연 5.8%∼7.5%의 낮은 표면금리를 제시하는 대신 실명제 적용을 면제해줬다. 당시 높은 시중 금리에도 불구하고 자금 출처를 묻지 않고 거래 시 실명확인을 생략하는 것은 물론 상속세 및 증여세가 면제되고 이자 소득에 대해 분리과세 적용도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줬기 때문에 수요가 적지 않았다. 특히, 비자금의 용처로 채권시장에서 널리 유통된 바 있다.
김대현 suv15@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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