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마사회가 그동안 유명인사와 사회지도층을 중심으로 구성된 말 주인(마주)들에게 각종 특혜를 제공해왔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이는,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에서 매년 되풀이되고 있는 한국마사회의 단골 지적사항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시정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 농해수위 소속 한나라당 홍문표 의원은 이와 관련 “마주들에 대한 특혜 논란은 매년 국감에서 지적해온 사항이기 때문에 실천여부를 점검하고 있는 입장”이라며 “하지만, 마사회의 대응이 국감을 피해가기 위한 면피용 조치에 그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마필의 개량 증식과 마사의 진흥을 위해 설립된 한국마사회는 지난 1988년 완공된 경기도 과천 서울 경마공원을 비롯 부산, 제주 등지에서 공원을 운영하고 있다. <일요서울>은 최근 3년간 신규로 등록한 마주를 포함, 900여명에 이르는 전체 마주명단을 확보하고 특혜의혹이 불거진 내막을 취재했다.
논란의 당사자인 ‘마주(馬主)’가 되기 위해서는 단계별로 엄격한 절차를 통과해야만 한다.
마주 등록 땐 경제력도
우선, 한국마사회법과 관련 규정에 따라 ‘마주 제한 대상이 아닌자’여야만 한다. 또, 경주마 구입과 경주마 위탁관리를 부담할 수 있는 경제력이 요구된다.
이러한 절차를 거쳐, 한국마사회에 최종 등록된 마주가 마필을 구입하는 수순을 밟게 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마주가 경주마를 보유하고 있지는 않다.
까다로운 절차가 말해주듯, 마주들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부’와 ‘명예’를 모두 겸비한 ‘톱클래스(Top Class)’로 비춰지고 있다. 그룹 회장과 연예인 등이 마주 명단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 준다.
일단 마주가 되고 나면 이들에게는 다양한 혜택이 주어지게 된다. 서울, 부산, 제주 등에 위치한 경마공원에는 이들 마주에게 경마장 전용관람실, 전용주차장, 전용 엘리베이터, 친목 도모를 위한 공간(경마회관)까지 이용 자격을 부여한다. 또한, 마주들이 서로 친목을 도모할 수 있도록, 마주협회는 해외 선진 경마 견학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으며, 마사회 주최로 열리는 각종 문화행사에 초대를 받는다.
마사회에 따르면 현재 등록된 마주의 규모는 서울 경마공원에 526명, 부산에 230명, 제주에 147명 등 모두 900여명 안팎이다. 이중 90% 정도는 개인마주들이다.
마사회는 “마주들에 대한 각종 혜택은 기본적인 ‘예우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문제로 지적된 사항은 단순한 예우를 넘어섰다는 데 있다. 실례로, 마사회는 지난 98년부터 강남센터빌딩 2개 층을 임대한 뒤 마주들에게 무상으로 사용토록하고 건물 관리비 13억원과 인건비 1억6,000만원, 기타 경비 2,400만원 등 15억2,251만원을 대신 납부해 논란을 빚고 있다. 마주들의 이용률 또한 저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과천 경마장 등에 마주 관련 전용실 등이 구비돼 있기 때문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 별도의 마주관련 장소를 마련하는 것은 일종의 ‘특혜’라는 지적이다.
홍 의원은 “2004년부터 지적한 사항인데, 지난 4월에서야 강남센터빌딩 사무실을 정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조속히 폐쇄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마사회측은 홍 의원의 지적과 달리 강남센터빌딩 사무실을 지난해 이미 정리했다고 주장했다.
마사회 경마협력팀 김동순 과장은 지난 26일 “강남센터빌딩에 마련했던 사무실은 지난해 6월 말 폐쇄조치했다”면서 “늦어도 지난해 12월에는 최종 정리가 된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마사회의 경주마 위탁관리 부분도 국감장에서 도마위에 올랐다. 일부 마주들이 위탁관리비를 제대로 납부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관리 측면에서도 허점이 노출됐다는 것이다. 관리비를 미납한 마주들은 별다른 제재조치를 받지 않았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99명의 마주들이 경주마를 마사회에 위탁하면서 1인당 평균 관리비 400만원을 연체해 총 3억9,000만원을 체납했다.
마주가 되기 위한 선결 조건으로 위탁관리비 등을 지불할 수 있는 기본적인 경제력이 포함돼 있지만 이를 준수하지 않은 것이다. 특히, 지난해 마주들이 벌어들인 수익은 1인당 평균 8,8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몇 백만원의 관리비 지급에는 인색했다고 볼 수 있다.
마주 1인 평균 연수익 9천만원
마사회 김동순 과장은 “위탁관리 부분은 마사회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도 볼 수 있다”며 “하지만, 우리가 관리의 책임을 지고 있다는 점에서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방침”이라고 했다.
<일요서울>이 단독 입수한 ‘최근 3년간 마주등록자 명단 및 이력’에 따르면 위탁관리비 체납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신규 등록된 마주들은 대기업 회장 등 재력가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 변호사, 의사, 교수, 연기자 등 이른바 ‘잘나가는’ 유명 인사들이 마주로 등록돼 있다.
재계에선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박용오 두산그룹 회장, 김진구 신창건설 회장, 방형린 제일기획 상무, 윤종웅 하이트맥주 대표, 권택종 GS칼텍스 고문, 김태진 SK(주) 상무, 염시종 대한항공 고문, 김지영 대한항공 과장, 김우택 메가박스 대표, 배태곤 에스-오일 부장, 홍준기 삼성 SDS 부장 등이 마주로 등록돼 있다. 재계 출신 마주들은 대기업 오너부터 과장급 직원까지 두루 포진해 있어 눈길을 끈다.
언론 및 연예계 인사에는 한국방송광고공사 이사를 역임한 이두표 SBS 상무와 이재욱 연합뉴스 본부장이 2004년 4월 3일자로 마주등록이 완료됐다. 유명 중견 탤런트인 강부자씨와 길용우씨는 지난해 12월 마주 대열에 합류했다.
최근 등록된 마주 중 단연 압도적 우위를 보이고 있는 분야는 의료계다. 김영진 한독약품 부회장, 최동천 진원제약 대표 등 제약사 고위 간부들과 함께 소규모 의원의 원장들이 ‘재테크’ 수단으로 경마를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광주 현대병원, 목포 중앙병원, 방배 제일병원 등 지역과 상관없이 의사들이 마주로 변신한 사례가 많다. 병원의 전문 치료과목은 경마의 특성상, 정형외과와 재활의학과가 많이 분포해 있다.
교육계에선 우동희 경기대 교수, 신순우 경원대 교수, 허남양 용인대 교수, 홍상기 안양대 교수, 김성규 제주관광대학 학장 등이 등록을 마쳤다.
법조계 인사로는 국무총리실과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을 거친 정규상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를 비롯, 조남대 변호사(법무법인 대륙), 이석연 변호사(서울합동법률사무소), 임두인 변호사(법무법인 동산), 하광호 변호사(법무법인 충정) 등이 있다.
특히, 최근 윤재순 회계사(삼덕회계법인), 이재만 세무사(서원에이엔텍스), 변환석 노무사(삼일노무법인)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대거 마주로 변신해 이들의 경제적 지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잣대로 여겨질 정도다.
전문직 종사자 마주 등록 ‘급증’
한편, 2003년까지 등록된 마주 명단에는 16대 국회 사무총장을 지낸 강용식 전의원을 비롯 권정달, 김봉조, 변웅전, 이영일씨 등 전직 의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엄삼탁 민주당 고문, 윤세영 SBS 회장, 오자복 전국방부장관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대거 마주로 활동하고 있다.
마사회는 오는 12월 중에 2006년도 신규 마주 등록을 심사할 예정이다. 마사회측은 10월 말 현재, 40여명의 신규 신청자들이 대기하고 있다고 했다.
김대현 dhkim@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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