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지켜봐야
압축 성장으로 대변되는 우리의 현대사는 경주와 다름없었다. 그 살벌한 경쟁에서의 미덕은 오직 승리였고 그 승리를 위해 인간으로서의 품위는 저만치 보류됐다. 그 압축 성장은 우리의 생활수준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지만 반면 미처 추스리지도 못하고 쌓인 적폐가 있었는데 그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 바로 세월호 침몰 참사인 것이다.
마땅히 그 적폐를 해소하고 국민을 위안해야 할 정치권은 저마다의 진영논리 혹은 과거의 타성에 젖어 정치라는 것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불러일으키던 참에 교황의 언행은 가뭄 끝 단비처럼 우리 국민을 위로하는 것이었다.
교황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언행은 길지 않았고 그의 행보는 특별하거나 요란하지 않았다.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말이나 행동이 아니라 듣기였다. 예정된 장소에 나아가 예정된 말을 하기보다 그저 묵묵히 듣기에 열중했다. 세월호 참사를 당한 유가족의 이야기를 그들과 눈빛을 맞추며 묵묵히 들었다.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가 참혹한 고통을 받은 할머니들의 손을 잡고 그들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듣는다는 것, 그것은 관계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도구다. 경청함으로써 우리는 공감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납득할 수도 있고 행동을 촉발할 근거를 찾을 수도 있다. 결국 듣는다는 것, 바르게 듣는다는 것은 행동의 시발점인 셈이다.
하루를 마감하는 주식시장을 보면 온갖 종류의 보고서와 기사가 답지한다. 시장상황을 설명하기도 하고 등락의 원인을 분석하기도 한다. 그 설명이나 분석은 지극히 합리적이지만 시니컬하게 말하자면 이미 지나간 이야기이고 벌어진 상황에 대한 넋두리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종류의 기사나 보고가 필요한 것은 그것들로부터 배울 것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사례에서 미래 행동의 단초를 발견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종목이나 시장에 대한 보고서와 리포트를 읽는 것은 일종의 듣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상대방이 무생물이라 경청이라고 단정하기는 무리지만 어쨌든 해당 종목이나 시장의 상황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 종목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했으며 응답했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에 대해 시장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지켜보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현재의 상황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통찰을 얻을 수 있고 앞으로의 행동을 정할 수 있다.
‘입은 하나인데 귀가 두개인 것은 말하기보다 듣기를 두 배로 더 하라는 뜻’이라는 잠언은 그래서 더 의미심장하다.
민병돈 유진투자증권 본점영업부 이사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