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7000원’이 부른 의료민영화 공포
‘1만7000원’이 부른 의료민영화 공포
  • 이지혜 기자
  • 입력 2014-08-25 10:23
  • 승인 2014.08.25 10:23
  • 호수 1060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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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못낸 50대 응급환자의 어이없는 죽음…
▲ <뉴시스>

N병원 “스스로 걸어 다녀 응급환자로 보이지 않았다”
“의료민영화 후 현실” vs “유 씨 사망 돈과 연관 없다”

[일요서울 | 이지혜 기자] 새벽에 응급실을 찾은 50대 남성이 응급 진료를 받지 못하고 의식불명에 빠졌다가 4일 만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병원 측이 진료를 하지 않은 이유는 미납금 1만7000원 때문이었다. 이 남성이 지난번 진료에서 돈을 내지 않았기 때문에 접수를 해주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논란이 일자 병원 측은 응급환자로 보이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 같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자 누리꾼들 사이에서 비난과 동시에 의료민영화에 대한 공포심이 일고 있다. 의료민영화가 될 경우 돈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8일 오전 4시15분께 유모(57)씨가 오한과 복통 등을 호소하며 119 구급대원에 의해 서울 중랑구의 N종합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유 씨의 상태는 출동한 구급대원이 보기에도 안 좋은 상태였다. 그러나 유 씨는 응급 진료를 받지 못했다. 지난 6월 이 병원에서 영양제를 맞은 뒤 진료비 1만7000원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료 접수를 받는 원무과 직원은 유 씨 측에 “미납금을 내지 않으면 접수를 할 수 없다”고 안내했다. 급하게 병원으로 오느라 주머니에 1만 원밖에 없다고 사정했지만 병원 측은 접수를 해주지 않았다. 결국 유 씨는 응급실 앞 대기실 의자에서 5시간 동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진료비 비싸다며 미납 음주상태로 폭력도 행사”

그러다 오전 9시20분 유 씨는 의식을 잃고 쓰러진 상태로 발견됐다. 그제야 병원은 유 씨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의식불명에 빠진 유 씨는 깨어나지 못했다. 결국 사흘 만에 유 씨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부검 결과 유 씨의 사인은 장간막탈장에 의한 급성복막염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유 씨가 1만7000원 때문에 치료도 받지 못하고 숨진 사실이 알려지자 경찰은 응급의료에관한법률 위반 여부에 대해 즉각 수사에 나섰다.

이에 대해 병원 측은 유 씨가 지난 6월 응급실을 찾았을 당시 진료 후 의료진에게 병원비가 비싸다고 폭력을 행사했으며 진료비를 내지 않고 스스로 링거를 뽑고 나갔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유 씨에게 가족을 불러 달라고 요청했지만 가족이 오지 않아 치료가 늦어졌다는 것이다. 또 유 씨가 병원에 왔을 때 구급차에서 스스로 내려 응급실로 들어왔고 걸어다니면서 물을 마시고 화장실에 다녀오는 등 응급환자로 보이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유가족은 “(아버지가) 살려달라고 병원에 갔는데 면전에서 돈 이야기만 하고 아픈 사람을 방치시켰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경찰은 유 씨의 사인과 진료를 받지 못한 상황의 인과관계를 살피기 위해 병원 CCTV와 진료 기록 등을 압수해 분석하고 있다.

돈 때문에 치료 거부 의료민영화의 현실?

1만7000원 때문에 유 씨가 어이없게 세상을 떠난 일이 알려지자 누리꾼들 사이에서 ‘병원은 슈퍼마켓이 아니다’, ‘보복성으로 진료를 미루고 가족 핑계를 대고 있다’, ‘이유가 있어도 5시간 동안 방치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등 병원을 향한 비난이 끊이질 않고 있다. 특히 의료민영화가 이뤄지면 모두에게 발생할 수 있다는 공포심도 조성되고 있다. 누리꾼 엄모씨는 “환자가 진료도 못 받고 사망해야 하는가. 온 나라가 어수선한 틈을 타 제대로 된 토론 한 번 안 하고 의료민영화가 진행되고 있다. 만약 의료민영화가 시행된다면 우리 모두가 유 씨처럼 죽을 수 있다”며 “두렵다”고 말했다. 누리꾼 강모씨도 “1만7000원이 없어서 사망했다니 참으로 비정한 사회, 비참한 국민이다”라면서 “의료민영화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다. 지금 꿈틀거리고 있는 의료민영화 움직임을 반드시 저지시켜야 할 이유”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누리꾼 김모씨도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의료민영화가 되면 더 심각해 질 것”이라며 “돈 없으면 다 죽으라는 소리”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유 씨의 죽음을 둘러싸고 의료민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에 대해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다. 의료민영화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 것은 맞지만 유 씨의 경우는 다르다는 것이다. 누리꾼 이모씨는 “1만7000원짜리 영양제를 맞고 돈을 내지 않은 채 직원까지 폭행할 정도면 병원 블랙리스트에 오른 상습 미수범일 것”이라며 “물론 응급 처지를 하지 않은 병원 측의 잘못도 있지만 유 씨의 지나친 행동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모씨도 “응급실에서 폭행이 발생하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면서 “그런 경우 직원과 의료진은 물론 정말 응급한 환자들에게도 피해가 간다. 유 씨가 응급환자로 보이지 않았다면 병원 측에서는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 씨 사망은 안타깝지만 의료민영화랑 연관이 없다”면서 “전혀 상관없는 사건에 의료민영화에 대한 공포심을 유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쓴 소리를 했다.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의료법인 부대사업 확대와 자법인 설립 허용 등을 둘러싸고 의료민영화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의료민영화가 아닌 의료세계화라고 해명했지만 보건의료노조 및 의료민영화 반대에 동참하는 시민단체는 의료민영화를 위한 꼼수라고 비판하고 있다.

의료민영화에 대한 우려는 이번 사건을 통해 민영화 미래를 내다볼 만큼 심각한 수준이다. 국민들의 불안감을 식히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앞장서 의료민영화에 대한 충분한 토론과 논의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jhooks@ilyoseoul.co.kr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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