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문 홈페이지와 가격 차이 논란 일파만파
해명 불구 냉랭 반응 “먹는걸로 차별 안돼”
[일요서울 | 박시은 기자] 한국인들은 평생을 영어에 시달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글을 떼기도 전부터 영어를 배우는 것은 물론 취업에서도 중요 스펙이 됐기 때문이다. 그런 영어가 이제는 먹거리에서도 한국인을 서럽게 만든다. 한국피자헛(대표 이승일)이 언어로 국내 소비자들을 차별한 것이다. 한국피자헛 온라인 주문을 할 때 같은 피자 메뉴라도 영문으로 된 홈페이지에서 주문하면 5000원이 더 싸다. 이에 소비자들은 “한국인 소비자를 우롱하는 처사”라며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피자헛 측은 “프로모션의 차이일 뿐 가격은 동일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이를 변명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논란이 잠들기는 힘들 전망이다.
한국피자헛이 국내 소비자 차별 논란으로 시끄러운 가운데 [일요서울]도 피자헛 온라인 주문을 시도해봤다. 피자 메뉴는 토핑을 올리는 도우의 종류에 따라 나뉜다. 한국피자헛 사이트에 게시된 메뉴 중 페페로니, 수퍼슈프림, 치즈 등 팬 피자의 라지 사이즈 가격은 각각 1만9900원, 2만3900원, 1만8900원이다. 그러나 영문 사이트로 접속해 보면 같은 메뉴, 같은 크기의 피자임에도 불구하고 각각 5000원 더 저렴했다. 영문 사이트 상단에는 ‘미디엄 가격에 라지로 업그레이드 해드린다’(Let us upgrade you, large for medium change)는 설명도 있다.
한국어 사이트에서도 인터넷 한정 특가로 미디엄 가격에 라지 사이즈 피자를 주는 ‘무료 사이즈업’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페페로니, 수퍼슈프림, 치즈 등 팬피자 3종은 제외돼 있다. 소비자들이 화가 난 이유에 공감이 되는 순간이었다. 한국피자헛은 한국에 거주하지만 한국어로 피자를 주문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외국인 등을 위해 영문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 국내 소비자들을 차별하고 있었던 셈이다. 같은 제품인데도 다른 가격, 그것도 외국인들이 주로 접속하는 영문 사이트에서 가격 할인이 돼 있다는 점에서 마치 한국인이 무시를 당한 기분이 들었다.
주문 절차도 한글 홈페이지보다 훨씬 간단했다. 회원 가입 절차 없이 이름, 이메일, 전화번호, 주소를 영어로 입력하면 바로 주문 가능했다. 소비자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한국피자헛 측은 해명에 나섰다. 국내 고객과 외국인의 각각 다른 선호도에 따라 할인 프로모션을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피자헛 관계자는 “소비자의 특성에 맞춰 국문 홈페이지와 영문 홈페이지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며 “국문과 영문 홈페이지를 통해 판매 되는 제품의 가격은 모두 동일하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국내 고객의 선호도가 낮은 팬 피자만 프로모션에서 빠진 것이라는 설명이다.
더불어 “더불어 국문 홈페이지에서는 사이즈 업그레이드를 포함해 베스트 피자 할인, 통신사 할인 등 다양한 이벤트 및 제휴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할인 받아도 영문사이트가 더 싸
한국피자헛 측의 해명에도 소비자들의 불만은 계속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한국어 사이트에서 통신사 20% 할인을 받아도 영문 사이트에서 주문하는 가격보다 더 비싸다”며 한국피자헛 측의 해명이 변명에 불과하다는 반응이다.
영문 사이트에서 슈퍼슈프림의 할인율은 20.9%, 페퍼로니 25.1%, 치즈피자 26.5%이다. 통신사 20% 할인을 받더라도 한국어 사이트에서 주문할 때 지불해야 하는 가격이 더 높은 것이다.
때문에 한국피자헛 측의 설명은 거짓말이 돼 소비자들의 배신감만 더 키웠다. 한 소비자 A씨는 “안 그래도 요즘 피자 가격이 엄청 비싸져서 시켜 먹기가 좀 부담스러웠는데 한국어 사이트와 영문 사이트에서 가격 차이가 나는 것을 보며 등잔 밑이 어두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영어를 모르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나. 한국에 살면서 영어로 받는 스트레스가 천지에 널렸는데 먹는 데에서도 이런 서러움을 느끼게 하다니…”라고 말했다.
또한 한국어 사이트에서만 적용되는 통신사 할인 등도 꼼수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소비자 B씨는 “만약 통신사 할인카드가 없다면 할인 적용을 받지 못하는 것 아니냐”면서 “동일한 할인율이 적용되지 않는 이상 한국피자헛은 가격을 일단 더 높인 다음에 소비자들이 할인을 받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 행동이란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한국피자헛은 그동안 외국계 기업이라는 이유로 매출액과 영업이익 등 기본적인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외국계 기업이라는 이름으로 횡포를 부린다”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가맹점주조차 기업 정보를 알지 못한 채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야 했기 때문이다.
한국피자헛은 1985년 한국에 진출한 뒤 2007년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전환했다. 유한회사는 사원이 회사 출자금 한도에서 책임을 지는 형태로 돼 있어 감사보고서 제출이나 각종 공시 의무에서 벗어나 있다. 이 때문에 한국피자헛은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 모범거래기준에서도 빠진 바 있다. 당시 한국피자헛은 실적 공개 없이 “3년째 영업손실을 냈다”는 이유로 모범거래기준 합의를 거부했다.
이에 김태호 새누리당 의원이 올 초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지만, 여전히 빠져나갈 구멍은 많다. 유한회사의 자산총액이 1000억 원 미만일 경우엔 지금처럼 공시와 회계감사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피자헛을 둘러싼 역풍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가운데 한국피자헛이 돌아선 국내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seun897@ilyoseoul.co.kr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