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동안 변한 건 담당 검사뿐(?)
1년 동안 변한 건 담당 검사뿐(?)
  • 김대현 
  • 입력 2006-09-29 10:39
  • 승인 2006.09.29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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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박수근 ‘위작논란’ 수사 난맥상 추적

한국 근현대를 대표하는 화가 고 이중섭 화백이 타계한지 지난 6일로 50년의 세월이 흘렀다. 타계 50주기를 맞아 미술계가 떠들썩할 법도 한데, 그 어느 때보다 조용하게 지나갔다. 근대 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이중섭이 이처럼 냉대를 받은 이유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위작논란 때문이다.
지난해 4월부터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이번 사건은 이중섭 50주기에 맞춰 미발표작 전시를 추진하던 김용수씨 등 ‘이중섭 50주기 준비위원회’와 한국미술품감정협회의 대립으로 촉발됐다. 양측의 고소와 맞고소가 이어지면서 검찰의 수사도 탄력을 받았다. 그러나, 중간수사 발표 직후 부실수사 논란이 불거지면서 파문은 계속됐다. 특히, 위작범 수사가 난관에 봉착하면서 검찰의 수사는 답보상태다. 빈번한 수사진 교체도 구설수에 올랐다.
<일요서울>은 ‘진실공방’ 최종 라운드로 접어든 이중섭, 박수근 작품의 위작 시비의 진행상황을 취재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 7부에 따르면 김용수씨는 지난해 4월 25일 ‘감정협회 관계자가 이중섭의 차남 이태성이 김용수로부터 위작을 기증받아 이를 경매하려 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감정협회 소속 이 모씨를 고소했다. 또, 박수근 화백의 장남 박성남씨는 김씨를 위작 혐의로, 김씨는 반대로 박씨를 무고 혐의로 맞받았다.
검찰은 당시 ‘감정협회 관계자 및 박성남은 혐의 없음’ 결정을 내렸고 김씨에 대해서는 ‘위작에 직접 관여했다는 증거가 없어 좀 더 수사해 본 다음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중간발표를 했다.

초라한 ‘이중섭 화백 50주기’
검찰 압수수색 결과 김씨는 이중섭 그림 994점, 박수근 그림 1,746점 등 모두 2,740점의 작품을 소유하고 있었다.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검찰이 서둘러 중간조사결과를 발표했지만 논란은 쉽게 봉합되지 않았다. 오히려 검찰 수사결과에 여러 의혹이 제기되면서 ‘진실 공방’은 더욱 치열하게 전개됐다.
검찰은 중간발표 이후 김씨가 위작에 개입했는지 여부에 대해 추가 수사를 진행했다.
또, 위작 전과자 등을 대상으로 수사를 확대했지만 위작범을 잡는데 실패했다. 이제 검찰 수사가 ‘진퇴양난’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위작으로 추정되지만, 위작범은 없는’ 기이한 사건으로 변질된 것이다.
김씨측 변호인은 “단순히 눈으로 보고 판별하는 안목감정을 제외하면 과학적 근거로서 받아들여질 만한 검증은 거의 없었다”면서 “예를 들어 방사성탄소 함유량 측정의 경우, 단 3개의 그림을 추출한 뒤 이중에서 1개 그림이 위작으로 의심된다는 식으로 발표를 해버렸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이산’ 신봉철 변호사는 “민사상 명예훼손 소송이 조만간 진행될 예정이며, 작품 반환소송도 준비 중에 있다”고 밝혔다.
김씨측은 작품을 반환받는 즉시 해외 감정기관에 진위 여부를 의뢰할 계획이다. 국내에는 아직 국영 감정기관이 없는 탓이다.
김씨는 “작품을 비롯해 모든 자료를 검찰에서 압수해간 뒤, 돌려주지 않아 진실을 밝힐 수단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이번 사건이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을 것이라는 얘기가 들려 잠을 이룰 수 없다”며 “검찰이 못하겠다면 일부 작품을 내달라. 그러면 내가 빚을 내서라도 해외 권위 있는 기관에 의뢰를 하겠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진실이 밝혀져 이중섭, 박수근 작품을 돌려받는다면 대부분의 그림을 국가에 기증하겠다는 입장도 피력했다.
일각에선 검찰이 위작범을 밝혀내지 못할 경우, 작품은 원 소장자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화여대 안병태 교수는 위작 논란과 관련 이중섭, 박수근 작품이 진품이라는 취지의 진정서를 지난 8월 12일 검찰에 접수했다. 준비위 활동을 함께 했던 안 교수는 이보다 앞서 지난 7월 검찰이 압수해간 일기장, 일본방문 일지, 면담기록 등 자신의 자료를 돌려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안 교수는 진정서에서 “이중섭, 박수근 작품 소송에 영향을 미칠만한 결정적인 자료를 준비하고 있다”면서 “감정협회 등이 제시하고 있는 위작논리가 억지임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며 조만간 공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과연 위작으로 의심, 추정된다고 발표한 검찰 수사결과를 뒤집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는 또, “나는 언제든지 검찰 수사에 협조할 용의가 있다”면서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게 돼 있다”고 주장했다.
위작논란 사건이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보다 과학적인 접근방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검찰 내부에는 사실상 미술품 전문가가 전무한 실정이다.
그럼에도 검찰 수사가 1년 5개월이 경과한 지금, 형사 7부 수사 담당자가 3차례나 바뀌는 등 업무의 연속성이 저하됐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4월 담당검사였던 노상길 검사를 시작으로 김철, 유성열 검사를 거쳐 현재 김용정 검사가 위작 논란 사건을 담당하고 있다. 부장검사와 차장검사도 인사 발령으로 각각 1차례씩 교체됐다.

검찰 ‘과학적 접근’ 시사
김용정 검사는 “이번 사건을 맡은 지 1개월 정도가 지났다”며 “워낙 중대한 사안이므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검사는 또,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므로 더 이상 언급할 수 없다”고 했다. 검찰은 향후 보다 과학적인 수사를 진행하기 위해 양측 관계자들을 접촉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미술계 안팎에선 유사사건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반드시 이중섭, 박수근 위작논란 사건의 ‘진실’을 가려내야만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 화가 ‘이중섭’은 누구인가?
이중섭은 1916년 4월 10일 평안남도 평원의 한 농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순탄했던 삶은 6·25 전쟁과 아내와의 이별을 거치면서 불행해지기 시작했다. 공산주의자를 피해 제주로 이동했지만, 일본인 아내(야마모토 마사코)가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떠나간 것.
이중섭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하루하루를 술로 보냈다. 그럼에도 그림에 대한 열정은 전혀 식지 않고 더욱 정교해졌다. 대표작 ‘황소’와 바다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만들어진 시기다. 그는 언제나 붓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붓을 잡은 손은 대폿집이며 작업장을 가리지 않고, 종이 위에든 담뱃갑에든 닥치는 대로 그림을 그려냈다.
무절제한 생활 끝에 정신질환과 간질환으로 1956년 서울 서대문 적십자병원에 입원했으나 9월 6일 숨졌다. <현>

김대현  dhkim@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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