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인터뷰] 도자인형 작가 오주현 “한국 도자기 우수성과 창의성 세계에 알리고파”
[파워 인터뷰] 도자인형 작가 오주현 “한국 도자기 우수성과 창의성 세계에 알리고파”
  • 조아라 기자
  • 입력 2014-08-18 16:10
  • 승인 2014.08.18 16:10
  • 호수 1059
  • 6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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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빈 여행 중에 만난 야드로 인형에 매료

도자인형 제작 나선 지 5년, 공방과 갤러리 연내 개장
1세대로 책임감…한국 대표 인형공방 발전 시키고파

[일요서울 | 조아라 기자] 여행은 때로 삶의 전환점이 된다. 여행을 통해 복잡했던 심경을 정리할 수 있고,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도 있다. 또는 한국에서 경험할 수 없는 이국의 환경에서 삶의 목표를 다잡을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오주현 작가는 여행을 통해 삶의 목표와 방향을 전환한 용감한 작가다. 도예가에서 도자인형 제작자로 변신한 그의 이이기를 들어봤다.

도자인형은 아직 대중에게 낯선 분야다. 도자공예로 인형을 만든다는 인식이 확산되지 않아서다. 게다가 우리나라 전통 복식의 인형은 그리 대중성이 있는 영역이 아니다. 한국 전통인형이라면 인사동이나 전통상품 판매점에서나 보는 대부분 딱딱한 표정의 인형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더욱이 도자공예로 제작된 전통인형은 쉽게 그 모습이 연상되지 않는다.

하지만 도자인형을 알면 특유의 청아한 매력에 매혹될지 모른다. 단아하면서도 기품 있는 모습, 화려하면서도 소박한 멋스러움이 더해진 도자인형이 새로운 전통 공예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오주현 작가가 도자인형 제작에 뛰어든 것은 5년 전부터다. 그는 오스트리아 빈을 여행하던 중 만난 야드로 인형의 매력에 빠졌다. 야드로 인형은 스페인의 대표적인 도자기 브랜드인 야드로 사에서 제작하는 도자인형이다. 이 인형은 지난 반세기 동안 스페인 수제 도자인형으로 입지를 다져 전 세계적으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예전부터 인형을 좋아했어요. 인형은 오랜 시간 동안 사람 곁에 있던, 인간 형태를 지닌 오브제라고 생각했거든요. 저에게 인형은 일상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꿈을 대리 표현해주는 존재였어요. 동시에 상상력과 꿈을 담은 가상의 자아이기도 했고요. 성인이 돼서는 인형이 시대와 사회를 표현하는 상징물이자 실용 예술품이라고 생각했어요. 인형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갖던 차에 야드로 인형을 만난 거예요. 표정이 살아있는 그 인형들을 보면서 굉장히 좋은 느낌을 받았어요. 여행 기간 동안에 몇 번씩 인형가게를 찾을 만큼 매력에 흠뻑 빠졌죠. 저는 인형을 통해 과거를 상상하고, 잊혀가는 문화를 느끼고, 그로 인해 따뜻한 감성을 가질 수 있다고 믿거든요. 그러다 문득 왜 우리나라는 이런 인형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품성 인정받은 도자인형

오 작가는 한국에 돌아온 이후 본격적으로 도자인형 제작에 나섰다. 한국은 도자기가 생산될 만큼 도자공예가 발전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도자인형이 없다는 사실을 안타깝게 여겼다. 도예가로 활동했던 그는 도자기에 대한 높은 이해를 바탕으로 고급스러운 고열도 도자인형을 제작했다.

도예 분야에서도 도자인형은 생소한 분야지만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그동안 1000°c 이하에서 구운 도기인형과 달리 진정한 도자인형의 등장이었기 때문이다.

도예 작업을 하는 동료들도 그에게 도자산업이 부흥할 수 있는 새로운 시도가 될 수 있다는 평을 했다. 작품성을 인정받아 그는 지난해 G-공예 페스티벌, 대한민국 디자인 전람회, 대한민국 공예품 대전 등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도자인형 작업은 여러 분야의 전문지식이 필요해요. 저는 그동안 도예를 계속 해왔던 만큼 유약, 흙의 성질 등을 파악하고 있으니까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덜한 편이죠. 그럼에도 인형을 만들기 위해 소지(흙)와 안료, 오방색과 재료의 혼합기술 등을 개발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어요. 제 작품은 1250°c 이상에서 제작되는 고열도의 인형이에요. 청자나 백자를 굽는 온도와 같기 때문에 초벌, 재벌, 삼벌 작업까지 해야 하죠. 고온에서 흙이 무너지기 때문에 섬세한 한국적 미를 표현하는 게 쉽지는 않아요. 이를 견디면서 표현하는 방안을 찾는 게 숙제예요”

한국 복식의 미를 인형에 담아 오 작가는 지난 4월에는 첫 번째 개인 도예전을 열었다. 궁중 대례복부터 기녀의 화려한 한복까지 다양한 신분을 표현한 작품들로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첫술에 배부르진 않다’는 말처럼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또 다른 노력을 시작했다.

“1차 개인전에서는 복식 고증을 하지 않았어요. 전시회에서 만난 분들이 제대로 고증까지 한다면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작품이 될 것이라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최고의 도자인형을 만들고 싶다는 목표와 욕심에 올해 복식사와 생활사를 공부하러 대학원에도 진학했어요. 복식, 머리모양, 장신구 등 시대적 배경에 맞는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석고, 조형 등의 작업으로 반복하는 게 번거로워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스스로 이 일에 열정을 갖고 있는 만큼 즐겁게 작업하고 있어요”

내면 감정 표현한 인형 선보일 예정

조선시대 복식을 재현해 인형 제작을 하는 만큼 오 작가의 차기작 역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한복이 한국의 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코드이자 한민족의 정체성과 독창성을 담은 복식이라 생각해서다. 하지만 이번엔 단순히 복식의 아름다움과 다양성만을 표현하기보다는 조선시대 여인의 삶 속에 숨긴 내밀한 감성을 담을 예정이다.

“궁중 여인들의 화려한 복식 속에 감춰진 내면을 담아보려고 해요. 왕비가 대례복을 벗었을 때의 그 감정, 여자로서의 그 느낌을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궁중 여인의 외로움과 슬픔 등에 주목해 작업하려고 해요. 뿐만 아니라 춤, 노래 등 예능을 겸했던 기생과 8도 무당들의 삶과 애환을 담은 인형을 만들 계획이에요. 복식이 화려하고 익숙해서 조선시대를 재현하고 있지만 나중에는 고려시대, 신라시대를 배경으로 작품을 만들어 보려 해요”

오 작가는 도자인형을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 상품화 할 목표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에게 ‘고급 기념품’이라는 이미지를 알려 한국 자기의 우수성과 창의성을 전할 꿈도 있다. 동시에 도자인형에 친숙감을 갖도록 꾸준한 전시회로 관심도를 높여갈 계획도 있다.

오는 11월에는 강원도 춘천에 갤러리 ‘자우’와 공방을 열 예정이다. 인형을 제작하는 시간이 거듭될수록 제대로 갖춰진 공방과 전시공간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3년간의 고민과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을 오 작가는 목전에 두고 있다.

갤러리 이름인 자우(資偶)는 도자인형을 뜻한다. 도자인형이 없던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생소한 이름이지만 뜻을 알면 의외로 쉬운 이름이다. 앞으로 고화도 도자인형을 발전시키길 바라는 뜻에서 석경 황규완 선생이 붙여줬다.

“우리나라 도자기는 중국에서 전해졌지만 우리만의 특색이 담기면서 더욱 훌륭해졌어요. 고려청자의 영롱한 청자 비색과 분청사기의 맑은 빛깔과 유려한 자태는 도공들의 간절한 혼과 자유분방함, 예술적 기질을 담았다고 생각해요. 최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혼신의 힘을 다한 그 모습이 지금 제 작업에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고려청자와 분청사기를 만들었던 무명의 도공들의 예술혼이 저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어요. 저도 이들처럼 세계 최고의 조선조 복식 인형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스페인의 야드로 인형이나 독일의 마이센처럼 대를 이어 한국을 대표하는 인형공방으로 발전시키고 싶어요”

도자 역사 속에서 함께 발전해 온 자기인형

도자인형은 유럽에 자기가 전해진 이후 제작을 시작해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크게 유행했다. 지금까지도 도자인형은 명맥을 이어오며 대중에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유럽에 자기가 전해진 것은 13세기 말 중국자기가 소개되면서부터다. 최초의 유럽자기가 등장한 것은 18세기 초반 독일 작센주에 있는 도시 마이센에서 자기가 생산되면서다.

작센의 영주인 아우구스트 대제가 연금술사 뵈트거를 감금시켜 자기를 만들 것을 명령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7년여의 노력 끝에 뵈트거는 1709년 유럽 최초로 백자를 완성했다. 이후 1710년 마이센 가마가 만들어지면서 유럽 최초의 자기인 마이센자기가 공식적으로 생산됐다.

마이센은 처음에 중국자기의 모방에서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독자적인 제공공법과 채색기술을 발달시켰다. 이후 다양한 식기류와 액세서리, 도자인형 등을 제작하며 유럽의 자기 트렌드를 이끌어왔다. 마이센의 자기는 스테인드글라스와 발색유리, 에나멜 등을 사용한 제작기법을 통해 화려한 색감과 모형을 자기에 옮긴 것이 특징이다. 도자인형 역시 이러한 영향을 받아 화려한 유럽풍이 주를 이뤘다.

도자인형 하면 스페인의 야드로 인형도 빼놓을 수 없다. 1953년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첫 작품을 제작하며 야드로 사를 설립한 야드로 형제는 정교한 디자인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특히 1955년까지 18세기 트렌드의 영향을 받은 조각상을 제작하며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야드로 형제는 혁신적인 디자인과 스타일을 인형에 접목시키기 시작했다.

특히 ‘슬픈 할리퀸(1969)’을 세상에 내놓으며 야드로 스타일을 정립시켰다. 이 작품은 정형화된 라인과 조각상의 로맨틱한 분위기로 높은 평가받았다. 이후 꾸준한 쇄신으로 야드로 사는 도자인형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2000년대 들어서는 다른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며 독특한 성격의 도자기 인형을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동양권에서는 일본의 하카타 인형이 대표적이다. 하카타 인형은 하카타 근교에서 채취되는 점토를 원료로 해 인물상을 만들고 초벌구이 후 채색하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1600년 기와 기술자가 하카타 영주에게 헌상한 것이 시초로 알려졌다.

미인, 남자, 어린이 등으로 크게 구분되며 일본의 전통 연극인 노(能), 가부키(歌舞伎), 풍속 판화인 우키요에(浮世繪)를 소재로 한 것이 주류를 이룬다. 일본을 대표하는 인형으로 외국 손님에게 보내는 선물용으로 애용되고 있다. 하카타 인형은 1976년 국가 전통 공예품으로 지정됐다.

chocho621@ilyoseoul.co.kr

 

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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