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구도 타파? 더 좋은 후보 선택한 것
7.30 재·보궐선거 전남 순천·곡성 국회의원선거에서 당선된 이정현 의원은 나와 같은 대학 같은 과 동문이다. 또한 과내 서클 선후배관계이기도 한데 이정현 의원이 8년 선배다. 8년 차이라 학교를 같이 다니지는 않았다. 따라서 그의 엽기적인 행각은 선배들이 술자리에서 무용담을 깃들여 얘기할 때 주워들었을 뿐이다. 언론에 비춰지는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걸쭉한 남도 사투리를 곁들여 무대포로 밀어붙이는 언동은 선배들에게 전해들은 얘기와 거의 흡사하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는 전라도 출신 전형적인 머슴형 사나이다.
1973년 창립된 우리 서클은 작년 11월 창립 40주년을 맞이하여 성대한 자축연을 준비했다. 나는 이 서클의 회장을 6년 동안 맡고 있었다. 그런데 회장의 과욕으로 참석인원을 회원 수보다 훨씬 많게 계상한데다, 궂은 날씨 탓으로 많은 사람들이 참석을 하지 못해 준비한 뷔페음식도 많이 남았거니와, 회비만으로 비용을 지불하는 것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 되었다. 물론 회장인 내가 책임을 지던지 누군가 선배 중에 물주를 찾아내면 그리 어려운 문제도 아니었다.
그런데 때마침 누군가가 나를 찾더니 흰 봉투를 내민다. 청와대 홍보수석 이정현이 서클 창립 40주년 행사에 참석하지 못해 인편을 통해 금일봉을 전달해온 것이다. 내심 나는 쾌재를 불렀다. 당일은 토요일이었지만, 대통령은 유럽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날이었고, 민주당은 서울광장에서 의원 96명이 참가하여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며 장외집회를 한 날이다. 그렇게 이정현은 서클 창립 4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채, 주군을 보호하기 위해 청와대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2012년 총선에서 내리 3선을 한 군포지역구를 뒤로 하고 새누리당 권력의 발원지 대구, 그 중에서도 가장 민도가 높다는 수성갑 선거구에 박근혜 정권의 핵심과 맞서겠다며 홀로 뛰어든 사람이 있다. 생긴 것은 투박하여 전형적인 경상도 머슴형 사나이지만, 세련미가 넘쳐나는 정치인 김부겸이다. 그는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나는 민주당이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수도권 선거구를 벗어나 대구 출마를 결심한 그가 의도적으로 붙인 책의 제목이다. 그러나 김부라면집 사장으로 불리며 고군분투했지만, 40.4% 득표에 머물며 분루를 삼켜야했다. 그는 지난 6.4 지방선거에서도 새정치민주연합의 대구시장 후보로 출마했지만, 40.3% 득표로 또다시 패배를 맛보았다.
김부겸 전의원은 나를 교수님이라고 부른다. 내가 어느 세미나에서 생활정치에 대한 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 강연을 하도 잘하니 그냥 교수님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김부겸 전의원과는 인사는 하고 지내지만 자주 만나는 관계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012년 총선 때 대구로 그를 응원하러 간 적이 있다. 그래봤자 오렌지와 바나나 한 박스씩을 사들고 간 것이었지만, 나를 대구까지 가게 한 것은 순전히 그의 묘한 매력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매력 덩어리인 사람이 왜 번번이 고향에서 고배를 들어야 했을까? 나는 그가 경상도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정현의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에 버금가는 투박한 외모에 어울리는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고 있지 못하다. 수도권 3선 하는 동안 세련됨은 그의 자산이었지만, 대구에서는 오히려 독이다. 그런 면에서 이정현을 배워야 한다.
이정현과 김부겸. 지난 2012년 총선 이후 정치권에서 뜨고 있는 콤비다. 동병상련할 때도 있었지만,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를 주는 것이 더 많다. 이정현은 청와대 홍보수석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이 되고, 집권 새누리당의 최고위원이 됐다. 덩달아 김부겸의 가치도 치솟아, 허울만 남은 새정치민주연합을 재건할 유력한 인물로 회자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와 같은 지역구도 정치를 타파할 정치인으로 두 사람을 주목하고 있다.
이번 보궐선거에서 이정현 후보가 당선된 것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어떤 이는 이정현 후보의 ‘예산폭탄’ 공약이 먹혔고, 그가 정말 열심히 진정성을 가지고 선거운동에 임한 결과라고 한다. ‘예산폭탄’으로 낙후된 지역발전을 이루고, 지역의 현안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데, 그러한 공약에 반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이다. 반면, 무능하고 무책임한 박근혜 정권의 실정에 면죄부를 준 ‘영혼 없는 투표’, ‘호남의 자존심을 버린 투표’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지역발전론’과 더불어 이정현 후보가 구사한 또 다른 전략은 ‘지역구도 타파’였다. “호남이 앞장서 새정치민주연합 독점 구도를 깨고 동서통합의 물꼬를 트자”고 호소했던 것은 그러한 전략의 일환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이정현 후보의 ‘지역구도 타파’ 전략이 직접적으로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준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역민을 무시하는 공천 행태에 대한 불만이 이정현 후보의 ‘지역구도 타파’ 전략과 맞물리면서 이정현 후보가 당선되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어쨌든 이정현 후보는 승리했고, 그가 주장했던 ‘지역발전론’, ‘지역구토 타파’는 순천시민이 선택한 것이 됐다. 언론은 앞 다투어 이정현을 골리앗과도 같은 거대한 지역구도에 맞서 싸워 승리한 다윗과 같은 인물로 추앙하고 있다. 앞서가는 언론은 그를 2017년 여권의 대권주자 반열에 올려놓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그러한 과정을 있게 만든 순천시민의 역사를 바꾸기 위한 위대한 선택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
‘지역구도 타파’ 좋은 말이고 당연히 해야 한다. 그리고 이정현 후보의 당선이 그러한 ‘지역구도 타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지역구도 타파’의 진정한 주역이 누군가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다. 나는 이번 순천·곡성 보궐선거의 내용을 ‘지역구도 타파’라는 관점에서만 본다면, 이정현 후보와 서갑원 후보의 대결이 아니라 새정치민주연합과 순천시민의 싸움이었다고 생각한다. 지역주의를 볼모로 새정치민주연합이 선택한 후보에 대해 무조건 지지를 요구받았던 것이 순천시민들이었다. 그리고 그 한 모퉁이에 이정현 후보가 있을 뿐이었다.
“순천에서 인물자랑 하지말라”는 얘기는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순천시민들이 생각하는 국회의원 후보자에 대한 눈높이 기준은 대한민국 최고 수준이다. 그러한 눈높이에 맞추지 못한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천을 순천시민들이 거부한 게 이번 선거결과다. 물론 상대편에는 이정현이라는 꽤 쓸 만한 인물이 있었다. 따라서 ‘지역구도 타파’의 주역은 순천시민이고 이정현 후보는 한 사람의 배우였을 뿐이다.
<김영필 정치개혁 시민의 힘 대표>

김영필 정치개혁 시민의 힘 대표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