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본드 5년물·12년물 반씩 나눠…금리도 최저
고정이하여신 비율은 증가…조선·해운사 대출 관건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한국수출입은행이 국내 금융기관 최초로 장기 외화채권을 발행했다. 금리도 최저 수준에 가까웠지만 흥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수은이 대출해준 국내외 조선·해운사들이 무너지며 부실채권비율은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수은이 국책은행임에도 불구하고 내부 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당장 수은이 부실채권 관리에 들어가지 않으면 향후 외채 발행금리에도 악영향이 미친다는 의미다.
수출입은행이 지난 6일 발행한 외화채권 규모는 10억 달러(약 1조200억 원)에 달한다. 그것도 5년물과 12년물을 절반씩 구성했다. 지금까지 국내 금융기관이 발행하는 외화채권은 5년 만기에 한정돼 있었다. 수은이 국내 최초로 12년 만기 고정금리 채권을 발행한 것이다.
금리도 최저 수준이었다. 5년물의 경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 가산금리였다. 이는 미국 국채금리에 72.5bps를 더한 수준이다. 12년물의 가산금리는 85bps였다. 수은과 신용등급이 같은 중국수출입은행의 경우 지난달 발행한 미 달러화 채권 금리가 수은보다 17.5~45bps 높았다.
한여름 비수기 발행으로 해외투자자 끌어들여
애초 수은이 외화채권을 찍는 움직임이 포착될 때만 해도 발행시기에 대한 의문이 많았다. 통상 채권이 발행되는 시기가 아닌 8월에 이뤄진 탓이다.
이때에는 여느 산업이 그렇듯 금융권 역시 대대적인 여름휴가에 들어간다. 때문에 채권발행에 있어서도 한여름은 완벽한 비수기에 해당한다. 게다가 아르헨티나 채무불이행과 우크라이나 분쟁 등으로 시장의 불확실성이 증가한 상태였다.
이에 수은은 오히려 채권발행이 드문 시기를 공략했다는 입장이다. 현재 미 달러화 시장에서는 한국물 가산금리가 안정되는 추세다. 이에 금리인상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에 따라 수은은 과감하게 8월을 선택했다. 비수기가 끝나는 다음 달이 되면 대기물량이 늘어나는 것도 고려됐다.
또 한국계 우량 장기물에 대한 모멘텀도 다소 형성돼 있었다. 지난 6월 정부가 처음으로 30년 만기 외평채를 발행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외 투자자들의 관심은 장기물에도 크게 쏠렸다. 특히 일정 수준 이상의 확정금리를 요구하는 보험사나 연기금이 장기물을 선택했다. 은행이나 자산운용사가 중기물에 눈을 돌리는 것과 대비된다.
투자자별로 보면 아직까지는 아시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장기물의 경우 아시아 70%, 미국 18%, 유럽 12% 순이었다. 중기물은 아시아 56%, 미국 23%, 유럽 21%로 보다 비중이 줄었다. 전 세계 270개 기관투자자들이 주문한 금액은 총 42억 달러로 발행금액의 4.2배에 이르렀다.
이어 수은은 수출입금융채권도 잇달아 발행했다. 지난달과 이번달 발행한 할인채는 총 11개에 달한다. 발행시기는 기준금리 인하 전이었음에도 예상에 따라 낮춰 발행된 것이 7개였다. 지난달의 경우 2.46%, 이달의 경우 2.39%까지 발행됐다. 금리 인하 전 수금채 1년물은 2.413%를 기록했다.
목마른 시장은 수은이 내놓은 단기채를 급속도로 흡수했다. 수은은 지금까지 발행된 할인채를 포함해 총 7조 원가량의 수금채 발행을 계획하고 있다. 확보한 자금은 새 경제팀의 의지에 부응해 국가기간산업의 해외진출 등에 활용된다.
신용등급 떨어지면 외채 발행금리 오를 수도
한편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수은의 부실채권비율은 상승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부실채권비율은 총여신에서 고정이하 여신을 나눈 비율이다. 보통 연체가 3개월이 지난 대출은 고정이하 여신으로 분류된다.
수은의 상반기 부실채권비율은 잠정 1.69%로 전년 동기대비 0.95%포인트 올라갔다. 이는 국내 은행 중 지역은행을 제외하면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수치다.
수은은 특성상 조선사나 해운사에 대한 대출이 많다. 이들 기업이 부실해지면 수은의 부실채권비율도 올라간다. 수은에서는 국내외 조선사와 해운사들이 자율협약에 들어가면서 부실채권비율을 높이는 요인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수은이 STX조선해양, 성동조선, SPP조선, 대선조선 등에 대출해준 금액이 모두 부실채권으로 분류되면 그 비율은 급속도로 증가한다. 이렇게 계산하면 수은의 부실채권액은 지난 3월말 5000억 원에서 6월말 3조 원으로 3개월 새 6배가 늘어난다. 이를 비율로 전환하면 3.3%에 달할 정도다.
반면 국내 은행의 부실채권비율은 1.71%로 전분기 대비 0.1%포인트 감소했다. 은행 자산건전성 경영실태평가에서는 목표비율을 1.5%로 잡고 있다.
실제로 국내 은행의 부실채권 규모는 1년반 만에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금감원이 발표한 국내 은행 부실채권 현황에 따르면 은행권 부실채권은 지난 6월말 기준 25조5000억 원이다. 이중 기업여신의 부실채권은 22조2000억 원으로 전분기 대비 1조1000억 원 축소됐다.
부실채권비율도 2.24%로 전분기 대비 0.14%포인트 낮아졌다. 대기업의 경우 0.3%포인트, 중소기업의 경우 0.01%포인트 줄었다. 이외에 가계여신은 0.01%포인트 하락했고 신용카드채권은 0.05%포인트 상승했다.
문제는 부실채권비율이 단기간에 증가하면 수은의 내부 신용등급이 떨어져 외화채권 발행금리도 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수은은 국책은행이기 때문에 현재 국가신용등급과 같은 신용등급을 적용받도록 돼 있다.
그러나 부실채권비율이 높아지면 국내외 신용평가기관이 내부적으로 산정하는 수은의 신용등급이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결과적으로 수은이 대대적인 의지를 보이는 외화채권 발행금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정리와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이어지면서 각 은행의 부실채권비율도 하락하는 추세”라며 “수은의 경우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급작스러운 부실채권비율 증가만은 막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nykim@ilyoseoul.co.kr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