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폭력-의문사 집중 취재 ]학교폭력이 軍 가혹행위 키웠다
[군폭력-의문사 집중 취재 ]학교폭력이 軍 가혹행위 키웠다
  • 오두환 기자
  • 입력 2014-08-18 09:55
  • 승인 2014.08.18 09:55
  • 호수 1059
  •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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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의문사 진상위, 女중위 자살도 대대장 성희롱 때문

중·고등학생들, 조폭보다 더한 폭력 자행
학창시절 폭력 경험자가 군대서도 폭력 저지른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28사단 윤 일병 구타 사망 사건, 관심병사 2명 자살 사건 등 군부대 내 사건사고로 나라가 시끄럽다. 따지고 보면 군 내 사건사고는 매년 있어 왔지만 날로 그 상황이 심각해져 큰 문제가 되고 있다. 게다가 국방부는 이러한 사건사고에 대한 명쾌한 수사결과를 내놓지 못해 국민들과 피해자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28사단에서 발생한 윤 일병 구타 사망 사건은 최근 일어난 군 사건사고 중 최악의 사건으로 남게 됐다. 물고문, 성고문 등 가혹 행위의 내용이 잔인한 데다가 집단 은폐시도 등의 행동들 또한 조직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도대체 군대 내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기에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이렇게 흉포하게 변하게 됐을까. 과거에는 “군대에 갔다 와야 사람이 된다”라는 말이 당연시 됐다. 하지만 지금은 “군대에 갔다 오면 바보 된다” “군대에 다녀오면 장애인 된다”는 말이 더 많이 들린다. 군대가 꼭 가야할 곳이 아닌 기피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청소년상담 전문가들은 군폭력 문제를 보면서 학교폭력이 떠오른다고 말한다. 공통점이 많기 때문이다. 학교와 군대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발생한다는 점, 성적(힘)과 계급으로 철저하게 상하관계가 나뉜다는 점, 피해자는 소수고 가해자가 다수라는 점, 행위가 날로 조직적이고 흉포하 다는 점, 기피·무시·은폐가 공공연히 일어난다는 점 등이 상당히 유사하다.

군폭력 발생의 가장 큰 이유는 군생활 상의 문제라기 보다 학창시절 교내에서 안고 있었던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고 군대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받아온 학업 스트레스, 개인주의화 된 인성, 폭력성 짙은 게임 중독, 왕따 등 총체적인 문제들이 시한폭탄이 돼 돌아온 것이다.

군대는 대부분의 청년들이 대학에 입학하고 곧장 또는 대학교 1~2학년을 마치고 들어가기 때문에 학교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폐쇄적이고 철저한 계급사회다보니 폭력이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자행돼 왔던 게 현실이다. 심리상담사들은 학창시절 폭력 등 비행을 경험한 사람이 군대 내에서도 비행을 저지를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학교폭력이 문제가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학교폭력사범 작년 9663건, 15배 증가

지난해 10월 3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김회선 새누리당 의원이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각 검찰청에 접수된 학교폭력사범은 2012년 617명에서 2013년 9663명으로 15배 이상 증가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접수된 학교폭력 사건이 1918건인 것과 비교하면 2013년에만 접수된 사건이 지난 4년간 발생한 총 사건수보다 5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눈에 띄는 점은 2008년부터 2013년 10월까지 발생한 학교폭력 사건 1만1581건 중 51.2%인 5550건이 불기소 처리됐다. 정식재판으로 기소된 사건은 731건, 약식 기소된 사건은 897건으로 전체 피해사건의 15.0%에 불과하다. 가해자 구속률은 4.0%로 집계됐다. 날로 심각해지는 학교폭력에 비해 처벌이 약하다는 지적이 많다.

고등학교 1학년생이 성매매 강요, 사체 유기

학교폭력은 이제 더 이상 ‘애들 싸움’이 아니다. 단순 폭력, 왕따를 넘어 살인까지 할 만큼 그 행동이 더욱더 잔악해졌다.

요즘 학교폭력의 잔혹함은 최근 밝혀진 김해 여고생 살인사건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창원지방검찰청 형사2부는 지난 5월 여고 1년생 윤모(15)양을 폭행·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한 혐의로 양모(15), 허모(15), 정모(15)양을 구속 기소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피해자 윤양은 가해자 허씨의 친구인 김모씨와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윤양은 지난 3월 15일 김모씨를 따라 집을 나간 후 피고인들과 함께 부산의 한 여관에서 지냈다. 피고인들은 인터넷으로 '조건만남' 대상을 물색해 윤양에게 성매매를 강요했고, 화대로 생활비를 충당했다.

이후 3월 29일, 윤양이 집으로 돌아가자 성매매 사실을 밝힐까 두려웠던 피고인들은 다음날 윤양을 울산의 한 모텔로 끌고가 폭행을 일삼으며 성매매를 강요했다. 윤양이 “집에 가고 싶다”고 얘기할 때마다 이들의 학대는 더 심해졌다.

특히 이들은 냉면 그릇에 소주 2병을 부어 마시도록 한 후 게워낸 토사물을 다시 핥아 먹게 하는 등 인간 이하의 만행을 저지른 것이 드러났다. 또 폭행을 당하던 윤양이 “너무 맞아 답답하니 물을 좀 뿌려달라”고 부탁하자 팔에 끓는 물을 붓기도 했다.

또 ‘앉았다 일어서기’를 100회 이상 반복해서 시키고, 보도블록으로 윤양을 내리치기까지 했다. 결국 윤양은 4월 10일, 모텔 인근 주차장에서 탈수와 쇼크로 인한 급성 심장정지로 숨을 거뒀다.

윤양이 숨지자 이들 7명은 시신을 산에 묻기로 하고 시신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 휘발유를 얼굴에 뿌리고 불을 붙여 훼손시켰다. 이들은 3일 후 경남 창녕의 한 야산에 시신을 묻은 후 시멘트를 반죽해 시신 위에 뿌리고 돌멩이와 흙으로 덮어 범행을 은폐하려 했다.

고등학교 1학년인 이들이 윤양에게 가한 가혹행위와 시신 유기 내용은 성인 범죄자들보다 더 잔혹했다.

경남 진주외고에서는 지난해부터 4월까지 15건의 폭행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최근 학교폭력으로 2명의 학생이 목숨을 잃은 진주외고는 대부분의 학교폭력이 교내 기숙사에서 밤에 일어났으며, 상급생이 후배를 몽둥이 등으로 때린 것이었다.

감정·스트레스 조절 능력 알려주는 사람 없어

학생 간 폭력도 문제지만 학생과 교사 간 폭행사건도 끊이지 않고 있다. 과거에는 대부분 교사에 의한 학생 폭행이 문제가 됐지만 최근에는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한 중학생이 임신한 지 6개월 된 여교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청소년상담 전문가들은 어린 학생들이 폭행을 하게 되는 이유에 대해 스트레스 상황이나 본인 감정이 격해져 분노가 차오를 때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다보니 결국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폭력밖에 없다고 전했다. 또 과거에 비해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으로 폭력적 내용을 많이 접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밖에 학생들의 신체 발육이 빨라지면서 사춘기 때의 신체적 발달과 정서적 발달의 괴리가 예전보다 더 커지고 있는 점 또한 문제라고 말했다.

사실 학창시절에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능력과 조절능력을 키워야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지나친 입시경쟁으로 관련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병영문화 개선책 실패 지난해 장병 79명 자살

각종 스트레스와 분노를 조절할 줄 모르는 학생들이 군대에 입대해 폐쇄된 환경, 상명하복 시스템의 군대를 경험하면서 이들이 갖고 있던 스트레스와 분노는 더욱더 증폭됐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군폭력이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에 따르면 지난 한 해만 군대에서 117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3분의 2가 넘는 79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4년부터 지난 13일까지 자살한 장병은 총 821명이다. 연평균 자살자는 2004〜2008년 72.6명이었으나 2009〜2013년에는 82.2명으로 늘었다.

사실 국방부는 2000년 2월 국방부 국방개혁추진위원회가 ‘신병영문화 창달 추진계획’이라는 종합보고서를 발표하며 군대문화개선 사업을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육·해·공군 모두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표준일과표를 마련하고 저녁점호의 형태가 아니라 인원이나 사병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정도로 점호도 완화됐다.

육군은 2003년 8월 각 부대에 하달한 '병영생활 행동강령'을 통해 분대장을 제외한 병사끼리는 명령이나 지시, 간섭을 할 수 없도록 했다.

그러나 2005년 1월 육군훈련소에서 훈련병 192명에게 인분이 묻은 손을 입에 넣도록 강요한 사건이 발생하자 군내 인권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이후 범정부 차원의 ‘병영문화 개선 대책위원회’가 발족돼 다양한 연구와 대책이 수립돼 10월에 ‘가고 싶은 군대, 보내고 싶은 군대’를 구현하기 위한 9개 과제 30개 실천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선진 병영문화 비전’이 발표됐다.

야간 점호를 없애고 신병교육대에서 훈련받는 병사에 대해서도 현역복무 부적합 판정을 내려 보충역으로 재배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였다.

그러나 2011년 7월 해병대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병영 내 왕따와 구타 행위가 사라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군은 다시 한번 병영문화개선 운동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군폭력이 줄어들지 않고 더욱더 심해졌다.

군대에서 고발자는 곧 배신자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군폭력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학교폭력의 연속성 외에도 ‘군대 내 폭력은 교육’ ‘고발자는 배신자’라는 의식이 군대 내부에 뿌리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또 군인들을 대상으로 한 심층면담이나 자살예방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군대 내에서 얼차려는 폭력이 아니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교육의 일환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교육 중 졸거나 청소 상태가 불량일 경우 뺨을 맞거나 배를 걷어 차이는 등의 폭행도 교육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인식이 상식적이다. 장교들이나 분부대장 등도 이러한 폭행을 알고 있지만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느 장병 하나가 이러한 폭행을 문제삼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2011년 1월 해군에 입대한 박씨는 2월에 작성된 군의 면담·관찰 기록사항에 “심리적으로 건강하고 무사하게 군 생활을 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씌여 있었지만 8월 스스로 목을 매 자살했다.

알고 보니 1월부터 8월까지 11명의 선임병들로부터 “네 동기는 잘 하는데 너는 못한다” “왜 후임병 관리를 제대로 못하느냐”라며 지속적인 폭행을 당했다. 만약 장병들을 대상으로 제대로 된 면담이 있었다면 자살을 예방할 수도 있었다.
freeore@ilyoseoul.co.kr 

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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