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홍준철 기자] 새누리당 이정현 최고위원의 기세가 무섭다. 7.30재보선에서 호남에 출마해 당선된 이후 파죽지세다. 26년 만에 여당 후보가 야당 텃밭인 전남에서 뱃지를 달고 여의도에 금의환향해 ‘박근혜의 남자’에서 ‘호남의 남자’로 격상됐다. 사실상 전국구 거물이 돼 돌아온 이 최고위원이다. 급기야 여권 일각에서는 ‘이정현 대망론’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본인은 ‘분수론’을 내세우며 일축하고 있지만 정치란 게 살아 있는 생물이라는 말처럼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다. 2017년 대선도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이정현 대망론’의 실체를 들여다봤다.
‘이정현 대망론’의 단초는 지난 7·30재보선에서 시작됐다. ‘철옹성’같은 지역주의 벽을 깨고 이정현 최고는 ‘노무현의 남자’라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서갑원 후보를 압도적인 표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다. ‘박의 복심’, ‘박의 남자’라는 이 최고의 여의도 입성은 정치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매우 컸다. 이 최고가 국회로 입성한 시기는 친박 주류에 맞서 친박 비주류인 김무성 의원이 서청원 의원을 누르고 당 대표가 된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당권을 넘어 대권을 노리는 김 대표는 친박 주류 세력을 지리멸렬하게 만들고 당을 장악하기 위한 인선 직전이었다.
하지만 친박 주류 중에 핵심인 이 최고가 화려하게 복귀하면서 김 최고의 대권 시나리오에도 차질을 빚게 됐다. 당장 김 대표는 재보선 이후로 연기한 당직 인선에서 이 의원을 지명직 최고위원에 앉힘으로써 자기 사람 한 명을 포기해야 했다. 청와대와 수평적 관계 요구나 ‘할 말은 하겠다’는 평소 발언 역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과거 ‘청와대가 국회를 무시한다’고 불만을 토로하던 김 대표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가 경제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에 전적으로 동감한다며 한껏 자세를 낮추고 있다.
‘이정현 효과’ 여의도 강타 숨죽인 정치권
‘이정현 효과’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 최고는 처음 참석한 최고위원회의 자리에서도 당당하게 당·청 가교역할을 하겠다고 일갈했다. 그는 “청와대에서 근무했고 이제 국회의원도 됐고 당에서 30년 넘게 일해 온 사람”이라며 “대통령의 뜻과 의중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기 때문에 ‘당·청’간의 중간에서 역할을 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전당대회에서 서청원 최고위원이 친박 주류를 대표해 당 대표에 도전하면서 던진 말이기도 했다. 바야흐로 서 대표의 역할을 이 최고가 하겠다고 최고위원회의 석상에서 당당하게 밝힌 셈이다.
‘이정현 효과’는 여기서 그치질 않았다. 재보선 이후 첫 현장 최고위원 회의가 지난 14일 전남 광양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에서 개최됐다. 이 자리에서 김 대표를 위시한 당 지도부는 호남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호언장담했다. 김 대표는 “이 최고가 선거기간에 약속한 예산폭탄이 불발탄이 되지 않도록 당 차원에서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 역시 이 최고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재보선 이전만 해도 새정치연합은 ‘세월호 침몰사고 국정조사특위’에 당초 청문회 증인으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유정복 인천시장(전 안전행정부 장관), 정호성 청와대 제1부속실장과 함께 이 최고가 반드시 나와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최근 기류에서는 ‘이정현 증인출석’에 대한 언급을 삼가는 분위기가 읽힌다. 자칫 호남에서 당선된 인사에 대한 ‘복수’처럼 받아들여지거나 ‘이정현 영웅 만들기’에 일조하는 분위기를 염려하는 탓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정현 효과’가 나타날 정도로 ‘정치적 거물’로 귀환한 이 최고는 ‘호남 인물 부재론’까지 설파하면서 차기 대권 지형을 요동치게 만들고 있다. 이 최고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예전에 야당은 호남 출신 대통령을 배출할 정도로 쟁쟁했다”면서 “하지만 지금 누가 있나. 박원순 서울시장, 문재인 의원, 안철수 의원, 김두관 전 의원 등 모두 경상도 출신이다. 호남 출신 야당의원들이 경상도를 욕하면서 대권 주자는 한 명도 없지 않나”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 최고의 이런 지적은 야당보다는 여당이 더 심각하다는 점에서 간접적으로 본인에 대한 몸값을 올리기 위한 고도의 전략적 발언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실제로 여당 내 잠룡군을 보면 서울 출신인 오세훈 전 시장을 제외하고 PK(부산/경남) 출신으로 김무성 대표, 정몽준 전 의원, 김태호 최고위원,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있고 TK출신으로는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있다. 그래도 야당에는 유력한 영남 출신 후보가 둘이나 존재하지만 여당 내에서는 호남 출신으로 차기 대권 후보감으로 거론되는 인사가 단 한 명도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차기 대권주자 반열론? 넘어야 할 산 ‘수두룩’
하지만 이 최고가 차기 대권 주자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수두룩하다.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의 성공’이 이 최고 앞에 놓인 가장 높은 산이다. ‘5년 단임제’ 특성상 대한민국 임기말 대통령 대다수가 ‘레임덕’에 빠져 인기가 추락했다. 군부정권이후 ‘레임덕 덫’에 빠진 대통령과 함께 ‘동고동락’한 최측근이 대통령이 된 경우도 없다. YS가 그랬고 DJ가 그렇고 MB 역시 같은 전철을 밟았다.
이 최고 뿐만 아니라 김무성 당 대표가 ‘박 대통령의 성공’을 주창하는 배경이다. 이를 잘 아는 이 최고는 최근 기자 간담회장에서 차기 대권 도전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나는 내 분수를 너무 잘 아는 사람이다. 분수에 맞게 사는 게 제 명에 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일축하면서도 “박근혜 정부의 성공이 2016년 총선에서의 승리에 도움 되고 2017년 정권 재창출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고 밝힌 이유다.
또 다른 산은 2016년 20대 총선에서 생환해야 한다. 패배한다면 그는 박 대통령과 함께 ‘순장조’가 돼 역사속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대망론’은 한여름밤의 꿈처럼 사라지고 오히려 정권이 끝난 후를 걱정해야 하는 신세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연이어 호남에서 당선된다면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여권 내 차기 대권주자로 우뚝 설 공산이 높다. 게다가 박 대통령이라는 든든한 우군도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정치권 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각인된 이 최고 본연의 이미지 변신이 남아있다. 이 최고는 ‘보스형’이라기보다는 ‘참모형’에 가깝다. 그의 경력을 보면 국회의원, 청와대 수석, 최고위원이 전부다. 물론 호남에서 여당 후보가 당선된 것은 역사적인 일이고 지역 구도를 타파한 공헌도 높지만 대통령감으로는 ‘2%’로 부족하다는 게 중론이다. 이에 여권 일각에서 임기말 특임장관이나 고위 공직자로 갈 것이라는 말이 벌써부터 나도는 배경이다. 과거 DJ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해수부 장관으로 임명했고 노 전 대통령 역시 정동영, 김근태, 천정배 전 의원 등을 장관에 임명해 차기 대권 반열에 올려놨다.
이 최고의 도전은 이제 시작됐다. 일차적인 목표는 20대 총선에서의 생환이다. 이를 위해 그는 선거기간 중에 약속한 ‘예산폭탄’과 각종 지역개발 공약 실현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과연 다시 적지에서 살아올 수 있을 것인가’ 청와대를 비롯해 여야 정치권이 이 최고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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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