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인물탐구]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 이지혜 기자
  • 입력 2014-08-11 16:36
  • 승인 2014.08.11 16:36
  • 호수 1058
  • 6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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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사고에 강한 리더 관운 타고 난 ‘레이저 김’
▲ photo@ilyoseoul.co.kr

전북 임실 출신, 육사 입교 후 서독 육사 졸업한 ‘유학파’
뒤늦게 ‘윤일병 사건’ 책임론 일어… 은폐·축소 의혹

[일요서울 | 이지혜 기자] ‘윤일병 사건’으로 인해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에 대한 책임론이 일고 있다. 김 실장은 장관 재임 당시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을 비롯해 북한군 노크귀순 사건, 사이버사령부 대선개입 논란 등 많은 사건들로 인해 책임 논란에 휩싸였지만 그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청와대 안보실장으로 승진해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 속에서도 김 실장은 합리적이면서 강한 리더십으로 대한민국의 안보를 책임져 왔다.


1949년 8월 27일 전북 임실에서 태어난 김 실장은 전주북중과 서울고교를 거쳐 1972년 육군사관학교 28기로 임관, 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생도 시절 우수한 성적으로 육사 기수 중 1명만 선발하는 서독 유학 시험에 합격한 김 실장은 서독 육사에서 졸업까지 마친 ‘유학파’다. 당시 한 달에 60달러로 생활해야 했던 김 실장이 졸업할 때 까지 그럴 듯한 식당에서 식사 한 번 못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독일 육사 측에서 김 실장에게 학사 학위를 주지 않은 탓에 후배들이 김 실장을 ‘고졸’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작전·전략·정책 문무 겸비한 군인

1972년 육군 소위로 임관한 뒤 32사단 수색중대 소대장을 시작으로 주요 보직을 거친 김 실장은 2003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보국훈장을 받은 이듬해 이라크 파병을 총괄하는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에 임명되며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0년 12월 국방부 장관에 임명됐다.

김 실장은 야전 주요 지휘관으로 작전, 전략, 정책, 전력증강 분야 등에서 폭 넓은 경험을 쌓았으며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로 문무를 겸비한 군인이라는 평을 받았다. 각종 의사결정 시 소신을 갖고 의견을 개진하는 등 합리적이면서 강한 리더십도 보여줬다. 군 최고 수뇌부로 손색이 없는 사람이었다. 김 실장은 장관 취임 후 보고서 간소화, 가죽 권총벨트와 지퍼식 전투화 착용을 금지하는 등 군의 분위기 쇄신에 앞장섰다.

김 실장의 별명은 ‘레이저 김’이다. 강렬한 눈빛이 레이저를 쏘는 것 같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특히 김 실장의 레이저는 북한과 관련된 발언을 할 때 강렬하다. 장관시절 김 실장의 집무실 의자 뒤편 벽에는 당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김경식 군사보좌관 등 북한군 수뇌부 사진이 걸려 있었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적이 장관의 등을 노려보고 있는 만큼 한시도 적을 잊어선 안된다는 마음가짐일 것”이라고 해석한 바 있다.

그러나 김 실장이 언제나 무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지난해 12월31일 김 실장은 국방부 직원들에게 ‘조기 퇴근’이라는 깜짝 선물을 내렸다. 당시 김 실장은 “안녕하십니까. 장관입니다. 갑자기 장관 목소리가 나와서 놀랐습니까? 장관이 올해 마지막 지시를 하겠습니다. 모두들 일찍 퇴근하세요”라고 구내방송을 했다. 갑작스런 선물을 받은 직원들은 웃음을 터트린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김 실장은 2011년 5월 SNS계정을 만들고 직접 국민과 소통의 장을 열었다. 이에 어느 현역 군인이 김 실장에게 소원수리의 내용을 담은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끊임없는 사건·사고 책임 없이 지나가

그러나 김 실장의 장관 재임시절 군 내부에서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굵직굵직한 사건 속에서 김 실장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오히려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 ‘승진’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첫 번째 사고는 김 실장의 장관 취임 8개월이 되던 때 발생했다. 2011년 7월 해병대에서 총기난사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인천 강화도에 위치한 해병대 제2사단 해안 초소에서 김모 상병이 총기를 난사해 4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을 입었다. 원인은 기수열외였다. 선임과 동기는 물론 후임병에게도 무시당했던 김 상병이 화를 참지 못하고 동료에게 총을 겨눈 것이다. 이에 해병대 내 고질적인 악습이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됐다.
1년 뒤인 2012년 10월에는 ‘북한군 노크 귀순’ 사건이 발생했다. 북한 병사 1명이 동부전선의 철책과 경계를 넘어 주둔지에 들어와 자고 있는 소초장을 깨운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 군에서는 북한 병사가 넘어온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같은 해 사이버사령부의 대선개입 의혹도 제기됐다.

또 지난 3월에는 북한 무인기가 청와대 상공을 촬영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나라 상공은 물론 청와대까지 ‘뚫렸다’는 사실에 심각한 안보 구멍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는 곧 김 실장의 책임론으로 이어졌으나 김 실장은 무사히 넘어갔다. 그리고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김 실장이 책임을 피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4월 발생한 ‘윤 일병 사건’을 김 실장이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22사단에서 발생한 윤 일병 사망사건은 군대 내 집단폭행에 의한 것으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를 보고 받은 김 실장은 해당 부대의 포병연대 연대장, 대대장, 본부포대장만 보직 해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윤 일병의 사인도 국방부에서 발표한 사실과는 다르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축소·은폐’ 의혹이 계속적으로 일고 있다. 해당 사건은 김 실장이 장관으로 재임하는 중 발생한 것이며, 보고도 받은 것으로 알려져 계속적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이에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김 실장의 문책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는 “고의로 은폐하려고 했던 건 아닌 걸로 안다”고 밝혀 김 실장에 대한 축소 의혹을 일축했다. 이렇게 김 실장은 또 한 번의 고비를 넘기고 무사히 남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hooks@ilyoseoul.co.kr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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