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심한 주류업체, 손 놓은 복지부, 귀찮은 국세청
변심한 주류업체, 손 놓은 복지부, 귀찮은 국세청
  • 오두환 기자
  • 입력 2014-08-11 10:49
  • 승인 2014.08.11 10:49
  • 호수 1058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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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카프병원의 미래

“성공회대 조건으로는 알코올사업 유지발전 어렵다”
노조 압박하는 복지부, 병원 편 아니라 주류협회 편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국내 유일한 비영리 알코올 중독 치료 전문 병원 카프 병원의 정상화가 쉽지 않다. 카프재단의 치료, 재활사업과 자산을 성공회대학교 법인으로 귀속하는 협상이 결렬됐기 때문이다. 성공회대는 지난달 11일 카프재단 인수를 철회한다는 내용을 담은 공문을 보건복지부에 통보했다. 공문에 따르면 “한국음주문화센터 노동조합(이하 카프노조)과 시민단체와의 협치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다소 간의 이견 차이를 좁히지 못해 난항을 겪어왔다”고 전했다.

성공회대와 카프노조는 지난 6월 18일 논의 중인 내용으로 각기 이사회와 총회를 통해 의사를 묻고 한쪽이라도 부결되는 경우 MOU는 파기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카프노조는 총회에서 이를 부결했으며, 성공회대도 이사회를 통해 인수철회를 결정하고 보건복지부에 인수철회서를 제출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에 카프노조는 성명서를 통해 “성공회대의 조건(독립법인 불가, 건물매각 필수, 자금지원 불가)으로는 공익사업인 재단 알코올사업의 유지 발전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자산이 알코올사업을 위해서만 쓰인다는 보장도 없었다. 카프노조는 성공회대가 카프재단의 가치를 지키며 사업을 유지 발전시키는데 부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 과정에서 카프노조는 “복지부가 재단이사회와 노동조합을 무시했다”며 “복지부는 노동조합에게 국세청, 주류협회, 주류회사에서 집회를 하지 않고, 향후 개최되는 이사회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각서에 서명을 해야만 밀린 6개월치 임금을 지급하겠다고 압박했다”고 폭로했다.

주류회사·국세청 이익 위해 설립

카프재단의 시작은 주류소비자보호사업이었다. 주류소비자보호법은 국세청의 주도하에 1997년 술에 건강증진기금을 부과하는 국회입법발의를 저지하고 주류제조업자들이 알코올 폐해에 대한 사회적, 도덕적 책임을 다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당시 국세청은 주류제조업자들의 편에 서서 술에 건강증진기금을 부과하는 것에 대해 반대했다.

1997년 9월 한국주류산업협회 및 주류제조업체 36개사는 국회 등에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입법 추진에 관한 우리의 입장’이라는 탄원서를 보내 알코올 관련 연구, 예방사업, 전문병원 건립, 사회복귀시설건립 등을 약속했다. 동시에 기금을 모아 2000년 국내 최초의 알코올문제 전문기관인 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이 카프병원 운영 주체인 카프재단이다.

당시 재단 설립발기인으로 국세청장과 법인납세국장 등이 참여했으며 재단 경영은 국세청과 복지부 전현직 고위 공무원들로 꾸며졌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던 국피아·관피아였던 것이다.

주류업계는 사업의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 재단을 ‘공익법인설립에 관한 법률’에 의한 비영리 공익법인으로 설립하기로 했고 재단운영자금으로 매년 50억 원을 출연한다는 내용의 재원출연각서를 제출하고 설립허가를 받았다.

그 결과 2004년 고양시 백석동에 카프병원이 설립됐다. 대다수 알코올중독 치료는 가족들에 의한 강제 입원이 90%를 넘는다. 하지만 카프병원은 환자가 원하는 경우에만 입원이 가능하다.

주류협회의 변심 2011년 기금출연 중단

알코올중독의 예방부터 조기발견, 치료, 재활, 사회복귀까지 술로 인한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도 카프병원의 의미는 크다. 2009년 이후 외래환자가 매년 1000명 안팎씩 증가해 2012년에는 입원 523명, 외래 6214명 등 총 6737명의 알코올중독 환자가 카프병원을 이용했다.

카프병원은 주류협회가 2011년 기금 출연을 완전히 중단하면서 재정난에 부딪혔다. 주류협회가 그간 내지 않은 출연금은 2011〜2013년 3년간 미납한 돈과 앞서 미납한 지원금까지 총 170억 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자금난에 빠진 병원은 지난해 2월 여성병동에 이어 5월 남성병동까지 폐쇄돼 7월 아예 휴업하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8월에는 강제 퇴원한 환자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를 신청하기도 했다.

이후 성공회대가 인수의향을 밝히고 MOU를 체결하면서 빠른 시일 내 병원이 정상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결국 성공회대도 인수의향을 철회하고 말았다. 사업을 접게 된 데는 병원 운영 계획을 둘러싸고 학교 측과 병원 노조 간의 이견과 불신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가운데 카프노조는 복지부가 국세청, 주류협회, 주류회사에서 집회를 하지 않고, 향후 개최되는 이사회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각서에 서명을 해야만 밀린 6개월치 임금을 지급하겠다고 압박했다고 전했다. 또 조건에 안 맞는 것을 강요하고 협박을 서슴지 않았고 감독관청으로서의 역할은 하나도 하지 않은 채 이사회를 파행으로 몰고 가 카프재단을 벼랑으로 몰아갔다고 지적했다.

재단·병원 운영 퇴직 고위공무원 맘대로

이밖에 국세청과 퇴직관료들이 주요 임원으로 구성된 재단은 당초 약속과 달리 몰래 재단건물 매각과 치료·재활사업 정리를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재단 측은 2007년 3월에 재단출연금을 전용해 주류연구원 설립을 추진하다 저지당했다.

그러나 국세청은 2007년 6월에 운영재원이 불확실한 주류연구원 설립을 허가하고 재단출연금을 동 연구원을 통해 지원토록 하여 재단출연금도용을 방조했다. 2010년 중반에는 재단이사장이 비밀리에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건물매각과 사업포기를 추진하다 들키기도 했다.

병원 정상화 바라는 환자 많아

알코올 환자들을 위한 재단과 병원이 정작 본래의 기능과 역할을 하지 못하고 문을 닫자 피해는 고스란히 알코올중독 환자들이 받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카프병원에서는 알코올중독의 예방부터 조기발견, 치료, 재활, 사회복귀까지 술로 인한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룬다. 다른 병원에 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어 실제 알콜 중독에서 벗어나는 환자들도 많이 있었지만 이제는 이러한 진료를 받을 수 없다.

복지부와 국세청이 카프병원 정상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유는 하나다. 카프노조에 따르면 복지부는 공공적으로 카프재단을 운영할 의사가 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주류업계는 돈이 남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만두고 싶어 하는 상황이고 국세청도 주류협회 배후로 지목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들을 규탄하는 여론이 부담돼 손을 떼고 싶은 심정이라는 것이다.

주류협회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만든 병원이 이제는 부담이 되는 것이다. 1997년 술에 건강증진기금을 부과하는 국회입법발의를 막기 위해 재단을 만들고 병원을 세웠지만 이제는 이러한 법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당시에는 사실상 반강제적으로 출연금을 내놔야했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카프병원은 성공회대의 인수의향서 철회로 또다시 정상화 문턱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게다가 지금 당장은 인수의향을 내비치는 곳도 없어 당분간 카프병원 정상화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freeore@ilyoseoul.co.kr 

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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