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반세기 이어온 군대 악습 폭행
[긴급진단] 반세기 이어온 군대 악습 폭행
  • 이지혜 기자
  • 입력 2014-08-11 10:35
  • 승인 2014.08.11 10:35
  • 호수 1058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담치 않으면 내가 피해자

▲ <뉴시스>

배 밑에 칼 놓고 성기 만져… 구타·성추행은 기본?
전문가 “군부대 관리감독 위한 외부 감시기관 필요”

[일요서울 | 이지혜 기자] 군부대 최악의 폭행치사 사건으로 인해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군 복무를 하고 있는 아들을 둔 부모들은 하루하루 마음을 졸이고 있다. “불안해서 군대 못 보낸다”는 부모도 늘고 있다. 오래 전 전역한 아버지들은 “옛날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며 한숨을 내쉰다. 군대에서 벌어지는 집단폭행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지속돼온 ‘악습’이다. 어제의 피해자가 오늘의 가해자가 되는 악습이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이다.

지난 4월 28사단에서 윤모(23) 일병이 선임병들의 집단구타로 인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초기에는 냉동식품을 나눠 먹던 중 선임병들의 우발적인 폭력으로 인한 사망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지난달 31일 군인권센터의 발표로 인해 부대 내 상습 폭행 및 지속적인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니 애비 사업 망치고 니 애미 섬에 팔겠다”

지난 4월 6일 윤 일병은 내무반에서 냉동식품을 먹던 중 쩝쩝거리며 먹는다는 이유로 선임병에게 가슴과 얼굴 등을 폭행당했다. 선임병들은 오줌을 싸며 쓰러진 윤 일병을 계속해서 폭행했고 결국 윤 일병의 입에 있던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산소 공급이 중단되면서 뇌사상태에 빠진 뒤 다음날 사망했다.

군인권센터가 확보한 군 수사기록에 따르면 윤 일병은 28사단으로 전입한 3월초부터 사망할 때까지 선임병들로부터 매일 반복적으로 집단 폭행을 당했다. 대답이 느리거나 인상을 쓴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이모(25) 병장을 비롯한 선임병 4명은 윤 일병의 다리를 폭행한 뒤 다리를 절뚝거린다는 이유로 다시 폭행했다. 또 멍을 지운다며 윤일병의 성기에 안티푸라민을 바르는 등 성추행도 일삼았다. 치약 한 통을 통째로 먹이거나, 잠을 재우지 않고 기마자세 서기를 시키는 등의 가혹행위도 이어졌다. 또 이 병장은 윤 일병에게 “우리 아빠가 조폭이다. 만약 가족한테 이 사실을 말하면 니 애비 사업을 망하게 하고 니 애미는 섬에 팔아버리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심지어 간부였던 유모(23)하사는 윤 일병을 향한 폭행을 알면서도 묵인했다. 오히려 이 병장 등에게 “때려서라도 군기를 잡아라”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 병장 등은 ‘의무반’이었던 자신들의 특기를 살려 폭행당한 윤 일병에게 링거를 투여했다. 윤 일병이 병원에 실려 간 날에는 쓰러진 윤 일병의 맥박과 산소포화도를 측정하기도 했다. 그 결과 수치가 정상으로 나오자 꾀병이라며 다시 폭행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윤 일병이 병원으로 옮겨진 뒤 의무반에 입원해 있던 장병들에게 “잠을 자고 있던 것이다. 누구에게도 본 것을 말을 하면 안 된다”고 협박했다.

윤 일병은 4월11일 가족모임을 기다리고 있었다. 앞서 3월에 부대개방 행사가 있었지만 구타로 온 몸에 멍이 든 윤 일병은 선임병들의 반강제적 권유로 가족과 만나지 못했다. 가혹행위로 힘들고 아픈 나날을 보내고 있던 윤 일병에게 가족과의 만남은 유일한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윤 일병은 끝내 고대하던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부검결과 윤 일병은 종아리, 허벅지 근육 파열, 갈비뼈 14개 골절, 자기 손상 등을 입은 것으로 드러났다.

계속되는 폭행 전역 날 목숨 끊기도…

윤 일병 사건으로 전국이 충격에 휩싸인 가운데 군대 폭행과 관련된 여러 피해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폭행사건이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군대 내에 만연해 있다는 것이 알려진 것이다.

지난달 10일 상병으로 만기 전역한 이모(22)씨가 전역날 집에서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한 뒤 아파트 18층에서 떨어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씨는 군 복무 중 동기들에게 물건을 나눠주며 “자살하고 싶다”고 말을 하거나, 내무실에서 혼자 웃다가 화를 내는 등 조울증 증세를 보였으며 후임병과 선임병을 폭행해 영창을 다녀오기도 했다. 또 탈영했다가 2시간 30분 만에 붙잡혔다. 그러나 이씨의 불안한 군 생활은 폭행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암기에 서툰 이씨는 선임들에게 집중적으로 폭행을 당했다. 선임병들은 이씨를 ‘인간 샌드백’이라고 부르며 지속적으로 폭행했다. 결국 이씨의 정신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부대 내 콘크리트 벽에 머리를 들이받거나 생활관 2층 창문에서 뛰어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씨의 이상행동에 부대 측은 휴가를 통제하는 등의 대책만 내놓았다. 결국 이씨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전역 당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약제의무병으로 군입대한 임모 이병은 복무를 다 채우지 못하고 제대했다. “많이 처먹어라”라고 말한 선임병에게 “말이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반문한 것이 이유였다. 선임병에게 말대꾸를 한 임 이병은 그때부터 선임병들에게 구타를 당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배 밑에 외과 수술용 칼을 대놓고 “네가 잘못해서 칼이 배를 뚫고 들어가도 우리는 책임 없다”며 칼 위에 엎드려뻗치라고 시키기도 했다. 그 상태에서 성기를 잡고 흔드는 등 성추행도 일삼았다. 또 혈압을 측정할 때 사용하는 고무줄을 임 이병 목에 감고 ‘풍선놀이’라며 호흡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조르기도 했다. 결국 참다못한 임 이병은 자살소동을 벌였다. 부대 측은 그때서야 임 이병에게 정신과 치료를 받게 했다. 결국 임 이병은 1년반 만에 의병전역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해병대에서는 선임병들이 새로 자대배치를 받은 이병에게 혓바닥으로 소변기를 핥도록 시킨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6월 말 해병대 1사단에 전입한 이병 3명에게 선임병들이 화장실 청소 상태가 불량하다며 변기 핥기를 강요한 것이다. 이들 선임병들은 신병을 폭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군 병영 내 가혹행위가 연이어 드러나자 아들을 군에 보낸 부모들은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내고 있다. “(군대에서)참으면 윤일병, 못 참으면 임병장”이라는 말도 나온다.

군대 내에서 발생하는 폭행은 대한민국 군대 창설 이후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다. 어제의 피해자가 오늘의 가해자가 되면서 대물림된 것이다. 장병들 사이에서 폭행과 가혹 행위가 아직까지 뿌리 뽑히지 않고 전통으로 내려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보복에 대한 두려움 군대내 폐쇄성이 문제

전문가들은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한다. 하나는 ‘군대의 폐쇄성’이고 다른 하나는 ‘보복의 두려움’이다. 사실 폐쇄성과 보복은 연관돼 있다고 봐도 무관하다. 군부대 특성상 보복을 피해 도망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후임병 시절 당하는 폭행은 그 순간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본인이 선임병이 되는 순간 폭행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참지 못하고 피해 사실을 윗선에 폭로하면 전역하는 그 날까지 부대 전체의 적이 될 수 있다. 이런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군법 관계자는 “소원수리나 고발을 통해 가혹행위 사실을 외부에 알릴 경우 부대원에게 기수열외를 당할 수 있다는 공포 때문에 입을 다무는 피해자들이 대부분”이라며 “다른 부대로 옮겨가도 고발 사실이 알려져 기수열외를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부대 내에 있는 동안 피해자는 매일같이 선임병들을 마주쳐야 한다”면서 “고발을 했다가 도망갈 곳이 없는 폐쇄 공간에서 더 큰 보복을 받을 것을 두려야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소원수리를 해도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약한 것도 문제”라고 강조했다. 가해자가 처벌되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 본인이 ‘배신자’로 낙인찍힐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군법 관계자는 “글씨를 대조해 소원수리를 작성한 피해자를 찾아낸다”며 “피해자가 고발했다는 사실을 가해자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러니 가혹행위를 멈출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군대 내부에서 가혹행위 추방을 위한 의지를 가지고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는 것도 가혹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큰 이유다. 윤일병은 물론 군 내부에서 가혹행위를 당한 피해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눈을 감고 모른 척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후임을 꽉 잡고 있어야 군대가 잘 돌아간다’는 고리타분한 생각을 가진 간부들이 많은 것도 문제로 꼽힌다. 외부 기관의 감사나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원인도 여기에 있다. 군법 관계자는 “군 내부의 자정 노력으로는 관습과 전통의 이름아래 한계가 있다”며 “폐쇄적인 군을 제대로 관리 감독할 수 있는 감시기관 설립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jhooks@ilyoseoul.co.kr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