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朴의 남자’ 이정현의 화려한 귀환
[인물탐구] ‘朴의 남자’ 이정현의 화려한 귀환
  • 홍준철 기자
  • 입력 2014-08-05 10:46
  • 승인 2014.08.05 10:46
  • 호수 1057
  • 6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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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동도 됐는데 2년만 쓰고 버려달라”

‘예산폭탄’, ‘머슴론’, ‘자전거 유세’ 승리
26년 만에 보수정당 승리 지역주의 타파 ‘선봉장’으로

[일요서울 | 홍준철 기자] 새누리당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56)이 7.30 재보선 최대의 수혜자가 됐다. 보수정당이 야당 텃밭인 호남에서 대지역주의(호남vs영남)와 소지역주의(순천vs곡성)를 뛰어넘어 당선된 것은 26년 만이다. 이 당선인은 이번 선거에서 ‘나홀로 자전거 유세’, ‘예산폭탄’에 ‘2년만 머슴처럼 쓰고 버려달라’는 ‘머슴론’으로 지역구 민심을 파고들었다. 결과는 대승리였다. ‘박의 남자’에서 지역주의 타파의 선봉장으로 재탄생하며 정치 인생 최대의 황금기를 맞이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제일 먼저 축하전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수석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박 대통령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는 후문이다. 이 전 수석은 과연 어떤 사람인지 알아봤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뻐하지 않을 수 없다”
새누리당의 한 당직자가 이정현 전 홍보수석의 당선을 두고 한 말이다. ‘박의 남자’, ‘박근혜 복심’, ‘박의 입’, ‘박 대통령의 정치경호실장’ 등 이 당선인에게 붙는 수식어다. 여기에 ‘지역주의를 타파한 선봉장’이라는 수식어까지 붙게 됐다.

이 당선인이 주목을 받는 것은 호남에서 당선됐다는 점뿐만 아니라 선거인 2만6천 명의 작은 도시 곡성 출신이 21만 명의 유권자가 있는 순천 출신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치고 승리했다는 점이다.
광주·전남에서 영남권을 기반으로 한 보수정당 출신이 당선된 것은 26년 만이다. 과거 중대선거구제 시절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주정의당 후보가 광주·전남 지역에서 당선된 적은 있지만 1998년 소선거구제로 전환한 이후엔 단 한 차례도 새누리당 계열 후보들이 당선된 적이 없다. 전북에서는 14대 국회때 민주자유당 양창식 황인성 전 의원이 당선됐고 15대때에는 옛 신한국당 강현욱 전 의원이 당선된 바 있다.

이 당선인의 도전은 이번이 4번째였다. 지난 1995년 제1회 지방선거부터 시작됐다. 당시 민자당 후보로 광주시의원에 선거에 출마해 고배를 마셨다. 지난 2004년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광주 서구을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5위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득표율은 불과 1.03%. ‘박근혜의 입’으로 통하던 지난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는 의미 있는 득표율을 거뒀다. 광주 서구을에 재출마해 39.7% 득표했다. 패배했지만 신선한 충격이었다. 19년 동안 4번의 도전 끝에 승리를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다.

이 당선인의 ‘호남 짝사랑’이 바탕이 돼 승리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하지만 이뿐만은 아니다. 그는 ‘박의 남자’로서 호남에 ‘예산폭탄’이라는 지역주민들이 거부할 수 없는 당근책을 내놓았다. 지역 숙원 사업인 ‘순천대 의대 유치’, ‘정원박람회장 국가정원 지정’, ‘순천 구도심 재생’, ‘기업공장 유치’, ‘관광특구 조성’, ‘산업특구 조성’ 등 ‘황제공약’이라고 불릴 정도로 거대한 공약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이 당선인은 “저는 예산폭탄을 퍼부을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공약은 거창했지만 선거유세는 ‘나홀로’ 전략을 구사하며 동정표를 자극했다. 당 지도부에겐 아예 자신의 지역에 내려오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수행원 한 명에 자전거를 타고 선거유세를 했다. 암 투병중인 부인의 선거지원도 지역주민들의 ‘표심’을 자극했다. 이 당선인의 부인 김민경씨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유세를 하면서 남편의 당선을 도왔다. 김씨는 지난 2011년 말 유방암 판정을 받고 3차례 수술을 받아 외부 활동을 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여기에 이 당선인 특유의 친화력과 눈물로 호소한 것이 자신의 고향인 곡성뿐만 아니라 이웃 순천까지 감동시켰다. 또한 이 당선인은 새누리당 후보라는 단점을 역으로 ‘힘 있는 집권여당 실세’라는 점을 강조하며 장점으로 승화시켰다. 나아가 이 당선인은 지역주민들에게 2016년 4월 총선까지만 자신을 쓰고 버려달라고 대놓고 ‘머슴론’을 설파한 점 역시 당선되는 데 주효했다.

그 결과 총 6만815표, 49.43 %를 획득하면서 4만9611표, 40,32%를 얻은 서갑원 후보를 가뿐히 눌렀다. 특히 이 당선인은 자신의 고향인 전남 곡성에서 70.55%를 얻어 23.31%를 얻은 서갑원 후보를 큰 표차로 눌렀고 서갑원 후보의 고향인 순천에서도 46.22%를 획득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이 당선인은 1958년 전남 곡성군 목사동면 관암촌에서 아버지 이재규(84) 씨와 어머니 장귀옥(80) 여사 사이의 3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 당선인 부모는 넉넉지 않은 시골살림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에게는 가난을 물려주지 않아야 한다며 자식 교육에 열정을 쏟았다. 덕분에 이 당선인은 광주살레시오고와 동국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비록 어렵게 자랐지만 소탈한 성품과 상대방을 배려하는 넓고 깊은 그의 심성은 정가에 널리 알려져 있다.

정치 입문은 지난 1985년 전남도지사를 지낸 민정당 구용상 전 의원의 총선 캠프에 합류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16대 대통령 선거 때 이회창 후보 측 대선 기획단장을 맡아 당내 전략기획통으로 이름을 알렸다.

지난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해 알려진 바대로 당시 '호남예산지킴이'란 별명을 얻을 만큼 예산확보에 열과 성을 다했다. 지난 19대 총선에는 여권의 불모지인 광주 서구을에 출사표를 던져 낙선했지만, 민주당의 텃밭에서 39.7%라는 득표율을 기록하며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비록 낙선했지만 호남 몫 당 지명직 최고위원을 거쳐 대선기간 박근혜 후보 공보단장으로 활약했다. 이 당선인은 11년간 박 대통령의 '입' 역할을 했다. 2004년 17대 총선 직전 탄핵국면에서 박 대통령이 당시 한나라당 대표를 지낼 때 수석부대변인으로 발탁되면서부터다.

이후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에도 박근혜 후보 대변인을 맡았다. 박 대통령이 대선 경선 패배 후 정치적 칩거를 하던 (2008년〜2010년)시절에도 전례가 없는 '대변인격(格)'이라는 직함을 갖고 박 대통령의 대변인을 자처했다.

당시 이명박 후보 측의 선대위 고위직 제의와 김문수 경기지사 측의 정무부지사 제의를 모두 고사하면서까지 박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지켰다. 익히 알려진 사실처럼 잠을 잘 때는 핸드폰을 손에 들고 자고, 목욕탕에 갈 때는 비닐봉지에 넣어 들고 들어갔다고 한다. 언제 어디서 걸려올지 모르는 호출에 항상 대비한 것이다.

당시 혼자서 전 언론을 상대하다 보니 휴대 전화 배터리를 12개씩 준비해놓고 사용했다는 일화는 홍보담당들에게는 전설처럼 내려온다. 대선 이후엔 박 대통령의 대선 승리를 이끈 대표적인 공신으로 꼽히면서 비서실 정무팀장에 기용돼 박근혜 정부의 '실세'로 부상했다. 이후 청와대 정무수석과 홍보수석으로 발탁되면서 당·청 간의 소통을 주도하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mariocap@ilyoseoul.co.kr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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