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문화재관리국 전문위원 중에 박모씨가 있었다. 박 씨는 20세기 서예 거장소전의 제자인 만큼 글씨를 잘 썼다. 그래서 전국의 석탑, 석등 등 석조 문화재와 사적 중 국보, 보물 몇 호라는 돌 표지석의 글씨를 그가 썼다. 또 그는 고서감정에 자신이 있어 우리 옛 글씨를 모두 다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자주 박물관 미술과에 찾아와 여러가지 자문을 구하기도 하고 문화재관리국에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알려주곤 했다.
하루는 그가 창덕궁 창고에 갔더니 노리개와 장신구가 수없이 많아 자기가 창덕궁 몇 전각과 회랑 등에 전시를 했으니 한번 가 보라고 알렸다. 궁중의 노리개와 장신구이니 얼마나 화사하고 위엄이 있을 것인가. 실제로 가서 봤더니 정말 일부 전각과 회랑의 내려다보는 진열장에 각종 노리개가 전시돼 있었다. 대삼작, 단작, 비취, 발향, 한충향, 방아다리노리개와 장신구 등 듣도 보도 못한 황실 노리개와 장신구가 즐비했다. 하도 신기해 종일 들여다봤다. 진열장은 얼마나 견고한가 싶어 뚜껑을 들어보니까 그대로 열렸다. 너무 기가 막혀 숨을 쉴 수가 없는데 몇 개를 들어보아도 잠겨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기가 막혀 최순우 선생께 보고하고 문화재관리국에 어찌해 그 귀중한 보물을 전시하고 잠금장치가 없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아마 괜찮을 것이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마도 후에 이 노리개와 장신구 중 몇 개는 흩어져 없어졌을 것이다.
황실의 공물은 6·25전쟁을 거치면서도 창덕궁 창고에 상당량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1960년대에 전부 사라지고 말았다. 인사동에 범람했던 각종 지물과 채묵도 창덕궁에서 흘러나온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된다. 구 황실 창고에 쌓여있던 각종 공물과 보물이 관리도 안 되고 대장도 없고 아는 이도 없었다. 그러니 창고에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이 누군지 몰라도 모두 그들의 처분대로 이제 자취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우리를 지키지 못해 일어났던 슬픈 이야기다.
경매시장 도록에서도 없어져
올 3월 세계적 경매회사인 미국의 크리스티(Christie's)에서 한국, 일본, 중국 고미술품 경매가 있었다. 경매회사에서는 잘 팔릴 만한 미술품(문화재)에 대한 정보를 전 세계에서 수집하고 그중에서 경매에 출품할 미술품을 선정해 경매에 내놓는다.
그러기 위해 자체내의 전문가와 해외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진위와 상품가치를 판단한다. 이후 원매자와 가격을 상의해 예정가격을 적시한다. 그 뒤 제작시대와 작품에 대한 설명을 상세히 기술하고 사진을 실어 호화로운 경매도록을 만들어 전 세계에 보낸다. 이 도록은 각국 박물관, 미술관, 미술사학자, 감정가, 소장가, 수집가, 상인들에게 널리 배포된다. 전 세계에서 고미술품에 관심이 있는 기관과 개인은 모두 이 경매 도록에 관심을 갖는다. 이 경매를 통해 세계 고미술계의 동향을 살펴 이해할 수 있다. 그런 만큼 기관과 개인 등이 필요한 미술품을 응찰해서 확보하려고 해 도록이 배포되고 경매가 끝나도 한동안 관심과 화제의 대상이 된다.
나도 지난 3월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전시에 갔다. 당시 중국 미술품은 수천 점이 나왔다. 일본 미술품도 수백 점이 나왔지만 우리 미술품은 백육십여 점쯤에 불과했다. 크리스티에서는 각국의 출품 문화재 가치가 높고 큰 가격대에 팔릴 만한 나라의 것은 두꺼운 도록을 두세 권씩 발행한다. 반면 출품 문화재의 수효도 적고 높은 가격에 팔리지 않는 것이라고 판단되면 얇은 책 한 권에 두세 나라 것을 묶어 출간한다. 그런 중에서 우리나라 것은 꾸준히 도록 한 권 또는 일본과 같이 한 권에 수록돼 수십 년간 출간되고 전 세계에 배포돼 경매가 이어졌다.
귀국해서 경매결과를 물어보니까 우리 문화재가 비교적 좋은 값에 많이 팔려서 성과가 괜찮았다고 했다. 중국 것은 매매가 잘돼 우리보다 몇 십배 몇 배의 값으로 팔려서 대 성황을 이루었다. 일본 것은 이상하게 우리보다도 덜 팔려서 크리스티에 일본인 직원이 낙담했다고 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다시 연락이 왔다. 앞으로는 중국 미술품만 도록을 만들어 전 세계에 배포하고 경매를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것과 일본 것은 경매도 안 하고 도록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매물신청이 들어올 시에만 크리스티 직원이 각개약진으로 선전해서 판다는 것이다.
크리스티 외에 세계 경매시장의 또 다른 거상은 소더비(Sotheby's)다. 30년쯤 전엔 소더비가 한국지사를 설립하고 지사장도 있었다. 한국에서의 경매를 위해 활발한 판매활동을 전개했다. 하지만 18년 전쯤 한국지사를 철수하고 한국경매도 끝을 내고 말았다. 결국 세계 경매시장의 양대 회사가 한국 문화재 경매를 포기했다. 전 세계에 수천 부의 한국 미술평가와 더불어 해설 선전 도록이 자취를 감추게 됐다.
점점 한국 문화재의 가치와 중요성이 잊힐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였다. 이런 비참한 상황에 대해 그동안 우리 고미술시장이 1990년 후반부터 침체일로를 걷는 원인에 대해 역사적으로 살펴봤다. 이제는 크리스티에서 한국경매를 종식한다는 결정을 내린 이 시점에 그 직접적 원인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백자준(白磁樽)>
18세기 전반 호림박물관 소장
지난번 소개한 뚜껑을 덮은 준과 같은 형태인 이 준은 뚜껑이 없어 입 모양을 볼 수 있어 유사한 준을 하나 더 소개한다.
이러한 준은 15세기부터 있지만 그 대표적인 준은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 청화백자 송죽문 홍치2년(1489)명 준이다. 이 준과 홍치 2년명 준을 비교해 보면 입의 모양은 둘 다 약간 높고 안으로 기운 내경형이다. 하지만 이 준은 어깨가 좁은데 홍치명 준은 어깨가 딱 벌어져 긴장감이 있다.
따라서 이 준은 어깨가 좁아 몸통의 허리에서부터 조금씩 홀쭉해지기 시작해 굽 위에서 잘록해진다. 홍치명 준은 허리에서부터 많이 홀쭉해지기 시작해 굽 위에서 더욱 잘록하다. 그리고 직선으로 내려가다 굽에 이르는데 이 준은 조금 내려가고 홍치 명은 조금 더 직선으로 내려가다 굽에 이른다.
이 준은 15세기 홍치명 준 같은 조선 초의 긴장감 있는 기형에서 훨씬 편안한 기형으로 바뀌어 먼저 소개한 준과 같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매력을 지닌다.
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