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기 10승, 2년 연속 두자리 승수 기록…침체된 다저스 구원자
5선발 댄 해런 연봉의 절반… 1선발 수준의 고효율 투수로 우뚝
지난 16일 미국 메이저리그가 올스타전으로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한 가운데 본격적인 후반기 리그에 접어들었다. 이런 가운데 다저스는 올 시즌 서부지구 1위로 월드시리즈 진출을 꿈꾸고 있다. 특히 타 구단에 비해 월등한 1~3선발의 기량은 부러움을 살 정도다. 이에 다저스는 전반기 잠시 1위 자리에 올랐지만 지난 24일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 1-6으로 패해 1위인 샌프란시스코와 2경기차로 벌어지며 주춤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류현진이 호투를 펼치며 구원자 역할을 도맡아 하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 류현진은 후반기 들어 선발승을 따낸 유일한 투수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지난 22일 피츠버그와의 경기에서 7이닝 동안 2실점하는 호투로 5-2승리를 이끌었다. 반면 후반기 첫 경기인 19일 세인트루이스전에서 댄 해런이 4⅔이닝 3실점을 기록했고 20일 잭 그레인키도 5⅔이닝 4실점으로 승리를 거머쥐지 못했다. 다만 에이스인 클레이튼 커쇼가 지난 21일 7이닝 3실점으로 연패를 끊었지만 3-1로 앞선 6회 동점을 허용하고 물러나 이후 J.P 하웰이 승리 투수로 이름을 올렸다.
결국 다저스는 지난 26일부터 열린 샌프란시스코와의 3연전에서 승기를 잡아 순위를 뒤집거나 따라잡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크레인키, 커쇼, 류현진 등 선발 3인방을 차례로 출격시키는 승부수를 던졌다.
여기에는 앞서 다저스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의 원정경기에서 참패를 경험한 반면 샌프란시스코는 펜실베니아주 시티즌스뱅크파크에서 열린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원정경기에서 2연승을 기록하며 무서운 기세로 달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저스는 지구 3위인 애리조나 다아몬드백스와 이미 10경기 이상 경기차를 벌리며 1위 자리에 오르기 위해 오직 샌프란시스코만이 경쟁자가 됐다.
하지만 다저스가 침체기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 때문에 샌프란시스코와의 3연전이 후반기 판세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나홀로 빛난 류현진의 고효율 진가
이런 악조건에도 최근 2연승을 거두며 다저스의 중심축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류현진의 진가는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우선 류현진은 쾌조의 컨디션을 보이고 있는 만큼 좋은 결과를 예고하고 있다. 올 시즌 두 차례에 걸쳐 등판한 샌프란시스코전에서 둘쭉날쭉한 모습을 보였지만 두 번째 경기에서 7이닝 4피안타 무실점의 쾌투를 선보여 샌프란시스코전에서의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보다 2~3경기 정도 빠른 승수를 쌓아가면서 2년차 징크스가 없다는 점도 장점으로 떠올랐다.
이런 류현진을 두고 지난 4월 15일 미국 스포츠전문매체 ‘SB네이션’의 칼럼리스트인 그랜트 브리스비는 연봉과 성적을 함께 평가한 ‘2014년 가치 있는 투수 10인’ 중 류현진을 7위에 올렸다. 그는 “(류현진 영입은) 다저스가 성사한 최고의 계약 중 한 가지임에 분명하다”며 “류현진은 케빈 코레이아 수준의 연봉을 받고 1·2선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류현진의 저연봉 고효율의 진가는 후반기 들어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류현진의 올 시즌 연봉은 약 433만 달러(한화 약 45억 원)을 받아 팀 내 선발투수 중 가장 낮은 액수다.
다저스는 올 시즌 5명의 선발투수에게 총액 약 7708만 달러를 지급하는데 크레인키가 약 2800만 달러, 커쇼가 약 1900만 달러, 조시 베켓은 약 1575만 달러, 하렌은 약 1000만 달러를 각각 받는다.
이에 반해 류현진은 함께 11승을 올리며 팀을 이끌고 있는 커쇼와 그레인키에 턱없이 부족한 수준의 연봉을 받고 있다. 또 5선발로 최근 부진을 겪고 있는 하렌 연봉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류현진의 성적은 여느 팀의 1선발에도 뒤지지 않는 호투를 펼치고 있어 올 시즌 다저스의 신의 한 수로 평가받고 있다.
시속 140Km가 넘는 고속 슬라이더
상대타자들에게 위력적인 투구를 던지고 있는 류현진의 신무기는 단연 시속 140km가 넘는 고속 슬라이더를 꼽는다.
류현진의 고속 슬라이더 즉 ‘류라이더’는 구속에서 이전과 큰 차이를 보인다. 류현진이 그간 던지던 보통 슬라이더는 평균 구속 83마일(약 133km)이었지만 고속 슬라이더는 88마일(약 142km)까지 끌어 올렸다. 특히 이 같은 고속 슬라이더는 오른손 타자들의 혼을 빼놓기 일쑤다. 그간 우타자들은 속구처럼 날아오다 바깥쪽으로 도망가는 체인지업을 받아칠 수 있도록 타이밍을 조절해왔는데 여기에 비슷하게 날아오다 갑자기 몸 쪽으로 꺾여 들어오는 공이 추가되면서 타자들의 머릿속을 온통 헤집어놓은 셈이 됐다.
최근 2경기에서 우타자를 상대로 슬라이더 22%를 구사해 재미를 봤다. 반면 좌타자를 상대로는 딱 1개만 던졌다. 더욱이 류현진은 2경기에서 우타자를 상대로 삼진 13개를 기록했는데 이중 ‘류라이더’로 잡아낸 삼진은 무려 8개나 될 정도다.
메이저리그 기록사이트인 브룩스베이스볼에 따르면 류현진은 지난 13일 샌디에이고 등판 전까지 올 시즌 패스트볼(속구) 54%, 체인지업 19%, 슬라이더 15%, 커브 12%의 비율로 공을 던졌다. 하지만 최근 두 번의 등판에서는 구종의 비중이 바뀌었다. 속구는 36%로 줄어든 대신 슬라이더는 22%로 높아졌고 커브도 21%를 기록했다.
류현진은 지난 22일 피츠버그전을 마친 뒤 “앞선 경기부터 슬라이더와 커브의 제구가 좋아져 많이 쓰고 있다”고 밝혔다.
괴물 같은 진화 속도로 위력 배가
물론 메이저리그 투구 궤적 시스템은 ‘류라이더’를 ‘컷패스트볼’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류현진은 ‘고속 슬라이더’라고 밝혀 변화구임을 강조하고 있다.
팬들을 더욱 놀라게 하는 건 류현진이 ‘류라이더’를 던지기까지 몸에 익힌 기간은 최근 한 달밖에 안 돼 그의 괴물 같은 진화속도 역시 화제가 되고 있다. 또 변화구의 위력이 배가된 비결에 그의 팀 동료들이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류현진은 시즌 11승째를 거둔 뒤 MLB.com과의 인터뷰에서 “팀 메이트들에게 배운 것”이라며 “커쇼의 슬라이더와 조시 베켓의 커브볼을 따라하면서 변화구를 가다듬었다”고 밝혔다.
이미 류현진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대선배 구대성에게 체인지업을 배우며 다양한 구종을 장착한 경험을 바탕으로 커쇼의 슬라이더와 베켓의 커브까지 받아들이며 끊임없이 자신을 담금질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진화를 위한 담금질이 류현진에게 2년차 징크스가 찾아오지 않는 이유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
강한 멘탈, 흔들리지 않는 원동력
여기에 류현진의 포커페이스도 주목받고 있다. 그는 마운드에 설 때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또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때 등 여러 상황에서 표정변화가 거의 없기로 유명하다.
이런 류현진에게도 빅리그 데뷔 첫해 1회는 악몽이었다. 피홈런 15방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7방을 1회에 허용했다. 사사구 49개 가운데 가장 많은 13개를 1회에 기록할 정도였다. 이에 지난해 류현진의 1회 평균자책점은 5.17에 달했다. 시즌 평균자책점 3.00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류현진은 2회부터는 전혀 다른 투수로 변모했다. 6회 평균자책점 3.28을 제외하고는 모두 2점대 이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심리적으로 1회에 흔들린 류현진이지만 이후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해 지난 시즌 30경기에서 14승 8패 평균자책점 3.00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루키 시즌을 보냈다.
2년차에 접어들면서 류현진은 더욱 성숙한 포커페이스를 선보이고 있다. 그는 전반기 18경기 1회 18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3.00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올 시즌 평균자책점 3.44보다 낮다. 전반기 동안 내준 사사구 21개 중 1회에만 9개를 내줘 가장 많았지만 그의 뛰어난 위기관리능력은 자책점을 지난 시즌보다 대폭 낮추며 메이저리그의 중심축으로 성장하는 기틀이 되고 있다.
이 같은 류현진의 강한 멘탈은 종종 발생하는 구심의 이해할 수 없는 스트라이크 존이나 연속 안타 허용 등의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반기에만 10승을 쓸어 담은 류현진의 후반기가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다.
무뎌진 체인지업이 유일한 아쉬움
류현진의 성공적인 변화에도 명암은 존재한다. 그의 오리지널 주무기인 체인지업의 위력이 지난 시즌에 비해 떨어진 모습을 보여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해 류현진의 체인지업 피안타율은 0.164에 불과했다. 이는 완벽한 결정구라는 소리다.
하지만 올 시즌 류현진은 여전히 체인지업을 속구 다음으로 많이 던지고 있지만 피안타율은 0.311로 급증했다. 지난해 류현진은 감독들이 뽑은 ‘최고의 체인지업’ 순위에서 내셔널리그 2위에 오를 정도로 인정받았지만 올해는 다소 빛을 잃었다.
구종 가치로도 류현진의 체인지업은 지난해 20.1로 28.6을 기록한 헤멀스에 이어 메이저리그 2위에 올랐지만 올 시즌에는 -0.7을 기록해 무려 -20.8이나 곤두박질쳤다.
이는 데뷔 첫해 류현진의 체인지업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지만 한 시즌을 지나면서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류현진의 패턴에 익숙해진 결과로 풀이된다.
또 류현진이 시즌 전부터 체인지업 공략에 대비해 슬라이더와 커브 연마에 주력하면서 상대적으로 체인지업 구위를 유지하는 데 준비를 덜 했다는 증거기도 하다.
이처럼 류현진의 주무기인 체인지업의 부진이 일시적일지 더 지속될지는 지켜봐야 하겠다. 그러나 류현진은 자신의 주무기가 다소 힘을 잃어도 현재 11승에 3점대 초반의 방어율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은 놀랍기까지 하다.
18승 박찬호의 전설 뛰어넘나
이제 후반기 들어 류현진이 남은 정규리그에서 개인 최다승을 기록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는 전반기에 10승을 달성하며 2년 연속 두 자리 승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제 류현진에게 남은 것은 2000년 다저스에서 맹활약한 박찬호의 18승을 뛰어넘어 19승에 도전하는 것이다.
다저스는 전반기 총 97경기를 치르면서 후반기에 65경기를 남겨두고 있다. 이를 5인 선발 로테이션으로 나누면 류현진에게 13번의 선발 등판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류현진이 후반기에 남은 약 13번의 기회에 9승을 거둔다면 박찬호를 뛰어넘어 한국인 투수 개인 촤다승 기록을 경신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약 70%의 경기에서 승리해야 한다. 그러나 전반기의 50% 승률만 유지한다고 가정해도 17승 정도는 거뜬히 달성해 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위력을 더하고 있는 투구 내용과 상대 선발 등을 감안하면 류현진의 신기록행진은 당연할지 모른다. 후반기를 승리로 장식한 코리안몬스터 류현진, 이제는 지구 우승뿐만 아니라 챔피언십과 월드시리즈까지 우승의 주역으로 한층 더 진화하기를 기대해본다.
todida@ilyoseoul.co.kr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