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 대한민국 소녀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으며 큰 인기를 끌었던 한국 농구가 불미스런 사건 사고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체면을 구긴 지 오래다. 급기야 최근 한 대학 감독의 심판폭행사건까지 벌어지면서 농구팬들의 실망도 커지고 있다. 좀처럼 침체일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농구, 농구선수의 폭행사건을 비롯해 승부조작까지 날개 잃은 새처럼 추락하고 있는 한국 농구의 현주소를 돌아본다.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최근 농구계가 심판 폭행으로 얼룩지면서 떠들썩했다. 대한농구협회는 지난 15일 상벌위원회를 열어 심판 폭행의 책임을 물어 정재근 연세대 감독에게 자격정지 5년의 제재를 내렸다.
상벌위는 “정 감독의 심판 폭행은 스포츠 정신에 어긋나는 잘못된 행동”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지난 10일 잠실 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연세대와 고려대의 ‘KCC와 함께 하는 2014 아시아-퍼시픽 대학농구 챌린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양팀은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승부를 내지 못하고 75-75로 극적인 연장전에 돌입했다. 이후 연장전 종료 2분 전 연세대의 최준용 선수가 하프라인 부근에서 골밑슛을 시도할 때 고려대 이승현 선수가 수비하는 과정에서 반칙으로 의심되는 행동이 나왔다. 이에 정 감독은 파울이라고 판단했지만 끝내 심판은 파울 휘슬을 불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분을 참지 못한 정 감독은 코드로 난입해 심판에게 박치기를 가했다. 결국 정 감독은 즉각 퇴장 명령을 받았으나 이후에도 심판에게 욕설을 퍼붓는 등 물의를 일으켜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더욱이 이날 경기는 해외로 중계되는 국제경기여서 파문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정 감독은 지난 11일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어제 아시아-퍼시픽 농구경기 고려대와의 결승전에서의 불미스러운 행동에 사과한다”며 “보여드려서는 안 되는 어처구니없는 잘못에 대해 죄송하다. 나 자신도 실망스러웠고 모든 책임을 통감한다. 어떠한 질책도 달게 받겠다”고 사과의 뜻을 전했다.
또 그는 “황인태 심판에게 죄송하다”면서 “연세대 감독직을 사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 감독은 사과와 사퇴의사에도 불구하고 대한농구협회의 중징계를 피해갈 수 없게 됐다. 정 감독이 7일 이내 재심사를 요구하지 않을 경우 자격정지 5년의 효력이 발생된다.
정 감독에 대해 협회 측은 영구제명 징계까지 고려했지만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점, 직접 사과를 한 점 등을 고려해 징계수위를 낮췄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 감독은 한 번의 실수로 5년 동안 아마추어팀을 비롯해 프로팀을 맡을 수 없게 됐다. 또 해외에서의 지도자 생활도 대한농구협회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해 사실상 퇴출된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협회 측은 나중에 징계가 감경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가능성이 없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어 복귀 가능성을 일축했다.
방열 대한농구협회장은 “감독이 이렇게 흥분한 사례가 없었다. 국제대회 결승전이라 더 속이 상한다”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결국 이번 사태로 농구팬들은 국가대표 선수로서 한 시대를 풍미한 뒤 지도자의 길에 접어든 농구스타의 몰락을 지켜봐야 하는 씁쓸함을 남겼다.
감독들 천태만상…농구 인기 시들
정 감독뿐만 아니라 최근 감독들의 불미스러운 일이 빈번히 발생하면서 프로농구의 열기를 반감시키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지난 3월 22일 심판에게 거세게 항의한 전창진 KT감독은 대한농구협회로부터 1경기 출전 정지와 제재금 500만 원의 징계가 내려졌다.
전 감독은 같은날 경남 창원에서 열린 프로농구 부산 KT와 창원 LG의 4강 플레이오프 1차전 경기 도중 코트로 들어와 심판의 몸을 밀치며 강하게 항의하다가 테크니컬 반칙 2개를 받고 코트를 떠났다.
이날 전 감독은 데이본 제퍼슨(LG)과 조성민(KT)의 리바운드 경합 과정에서 제퍼슨의 반칙이 있었지만 심판이 휘슬을 불지 않았고 제퍼슨이 손쉽게 2득점을 올리자 이에 거세게 항의했다.
또 남자농구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모비스의 유재학 감독의 경우 지난 2월 16일 안양체육관에서 열린 안양 KGC 인삼공사와의 원정경기에서 4쿼터 종료 3분 39초를 남기고 요청한 작전타임에서 함지훈 선수에게 테이프를 입에 붙이라며 욕설을 해 논란이 일었다.
당시 유 감독은 함지훈에게 “스위치 얘기했어, 안 했어”라고 질책하자 함지훈이 뭔가 대답을 했고 유 감독은 “야 테이프 줘봐 테이프 입에 붙여”라며 트레이너에게 지시했다.
테이프를 받은 함지훈이 입에 테이프를 붙이는 것을 잠시 망설이자 유 감독이 욕설을 퍼부었고 마지못해 함지훈은 입에 테이프를 붙여야 했다. 이 모든 과정이 중계화면을 통해 그대로 안방에 전달되면서 농구팬들의 차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스타들의 몰락…사기·살인·승부조작
이와 함께 촉망받던 농구선수들의 불미스런 행보도 충격을 더하고 있다.
지난 2월 24일 한국 최고의 슈터로 이름을 날리며 미국 프로농구(NBA) 진출까지 노렸던 방성윤이 사기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방성윤은 공증까지 된 상황에서 건물 보증금을 속여 빼앗는 등 고소인을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인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방성윤은 2012년 9월에는 폭행혐의 등으로 고소돼 경찰 조사를 받았다. 방성윤은 “남자들끼리 장난친 게 전부”라고 항변했지만 결국 2013년 3월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돼 현재 집단·흉기 등 상해혐의로 재판중이다.
한때 농구천재로 주목을 받았던 전 프로농구 선수 정상헌은 지난 1월 10일 처형을 살해한 뒤 암매장한 혐의로 징역 25년을 선고받아 농구계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큰 충격을 안겼다. 정상헌은 평소 허재 KCC감독처럼 되는 것이 본인의 꿈이라고 밝혔지만 결국 살인자 신세로 전락했다.
지난해에는 강동희 전 동부 감독이 승부조작 혐의로 기소돼 징역 10개월에 추징금 4700만 원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돼 물의를 일으켰다.
강 감독은 2011년 2월 26일과 2월 11·13·19일 등 4경기에서 승부를 조작하는 대가로 경기당 700~1500만 원을 받는 등 총 4700만 원을 받아 챙긴 혐의다.
법원은 “강동희 전 감독이 범행 내용과 방법이 불량해 죄질이 좋지 않고 범행 내용을 대부분 다루고 있어 반성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후에도 브로커들에게 회유와 압력을 넣었다”고 판시했다. 또 “한국 농구계의 우상인 강 전 감독이 직접 승부조작에 개입한 사건 때문에 프로농구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저하되고 사회적 손실도 상당하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한국 농구를 이끈 추억의 스타들과 앞으로 한국 농구를 이끌어갈 선수들의 성숙치 못한 행동이 도마에 오르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협회, 근본적 문제 해결에 뒷짐
농구는 인기가 예전만도 못하면서 이미 스포츠팬들의 눈밖에 난 지 오래다. 90년대엔 절정의 인기를 누렸지만 이제는 프로종목 중 가장 인기가 떨어진다는 오명을 입고 있다.
이에 과거의 영광을 재현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늘 나오지만 정작 실현되지 못하며 밥그릇 싸움만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농구가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직면해 있다고 보고 있다.
우선 성적지상주의를 큰 병폐로 꼽는다. 스포츠 경기인 만큼 우승이 중요하지만 성적을 내야 코치들이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구조여서 선수들을 닦달하고 훈련량을 늘릴 수밖에 없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구타가 한때 팀 운영의 필수였던 시절이 있을 정도로 심각했다.
여기에 농구선수의 꿈을 키우는 유망주들이 개개인의 기술보다 당장 이겨야 하는, 이기는 농구에 익숙해지면서 재미없는 농구로 바뀌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올스타전을 보더라도 프로선수들은 농구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제대로 된 인성교육이 뒷받침하지 못하는 점도 아쉽다. 2010년부터 공부하는 농구선수를 만들기 위해 수업을 모두 참여하고 있지만 효과는 미비하다.
이렇다 보니 구단프론트와 감독, 선수들의 간극은 좀처럼 좁혀지지 못하고 있다. 프론트들은 혁신적이고 발전적인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NBA의 화려한 경기운영 방식을 벤치마킹하고 마케팅과 홍보를 위해 발로 뛰고 있다. 하지만 정작 선수들은 여전히 아마추어 수준에 머물러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경기력은 물론 쇼맨십도 부족하고 인터뷰초자 서툴다.
이는 선수에 국한되지 않는다. 농구지도자들 역시 과거의 악습을 벗어나지 못한 채 정정당당하게 싸워야 하는 스포츠에서 심판을 불신하고 욕설과 폭력으로 선수들을 가르치고 있어 문제점을 되풀이 하고 있을 뿐이다. 항간에서는 지도자와 심판이 기싸움을 하는 리그는 프로농구(KBL)과 여자프로농구(WKBL)밖에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오죽하면 지난 1일 취임한 김영기 프로농구연맹 신임 총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프로농구가 옛 영광을 되찾아 다시 인기 스포츠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심각성을 인정했다.
그는 “우리 프로농구는 다시 한번 팬들에게 열정어린 사랑을 받는 종목으로 도약하느냐 아니면 침체를 거듭하느냐 하는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며 “최고 인기 스포츠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혼신의 뜀박질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크고 작은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그 탓을 구단은 KBL에, KBL은 지도자에, 지도자는 심판에, 심판은 선수에게 돌리려 했다. 이렇게 KBL은 흩어지고 분열되어갔다. 초심의 자세로 기본에 충실하면 KBL이 다시 한 번 우뚝 설 수 있는 기회가 올 것 이라 굳게 믿는다”고 말해 부정할 수 없는 한국농구의 실상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결국 한국 농구가 수년째 지속되고 있는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농구인 스스로 변화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특히 좋은 선수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지도자부터 바뀌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김 신임총재의 말처럼 스포츠정신에 입각한 초심으로 돌아가는 노력이 있을 때만이 90년대 누렸던 영광이 다시 재현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농구계가 한국농구의 부흥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으로 불협화음이 아닌 하모니를 만들어내길 기대해본다.
todida@ilyoseoul.co.kr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