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분 증여 공시 내용 중 가족 미국 국적 확인
류씨 가문 명성 흠집…경영 승계 시 후폭풍 전망
[일요서울 | 강휘호 기자] 풍산그룹(회장 류진·사진)의 장남이 국적을 변경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더군다나 풍산그룹은 류성룡 선생의 후손이라는 점을 들어 보국이라는 기업정신을 계승·발전시키고 있는 회사이기 때문에 비판의 목소리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형국이다. 이미 일각에서는 국적을 변경한 류성곤씨가 1993년생이라는 점을 주목해 병역을 회피하기 위한 행동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일요서울]은 풍산그룹 주변을 둘러싼 논란들을 하나씩 들춰봤다.
류진 풍산그룹 회장의 부인과 아들이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국적을 취득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같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풍산그룹은 많은 비판과 의혹에 휩싸였다.
보국 기업 행보에 흠집을 내면서까지 국적변경을 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지적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공시를 보면 류진 회장은 지난달 9일 풍산그룹 지주사인 풍산홀딩스 지분 중 0.46%인 3만6000주를 미국인 헬렌 노씨에게 증여했다. 동시에 지분 0.32% 수준인 2만5400주를 장녀 류성왜씨와 미국인 로이스 류씨에게 각각 내줬다.
이번 지분 증여로 류진 회장 부인과 자녀들이 보유한 풍산홀딩스 지분은 각각 3.36%(26만2872주)와 1.98%(15만5400주)로 늘어났다. 기존 지분은 가족들이 각자 매입해왔으며 증여는 이번이 처음이다. 류진 회장의 지분은 35.98%(281만9296주)에서 34.87%(273만2496주)로 줄었다.
또 풍산홀딩스는 공시를 통해 “헬렌 노와 로이스 류는 기존 보고서의 노혜경, 류성곤과 동일인이다”라고 밝혔다. 공시에서 밝힌 노혜경씨는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차녀로 류진 회장의 부인이며 류성곤씨는 류진 회장의 장남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병역 기피를 위한 꼼수가 아니냐고 지적한다.
로이스 류, 류성곤씨는 1993년생으로 통상 군 입대 시기에 놓인 청년이기 때문이다. 현재 류성곤씨는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행 법령상 22세 이전에 하나의 국적을 취득해야 하는 상황에서 병역 면제용 국적변경이라는 세간의 의혹을 감수하고 미국시민이 된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다는 점도 이런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다.
국내 국적법은 “미국 시민권자 중 자진해서 외국 국적을 취득한 자는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한다”고 규정한다. 이중국적자의 경우 현행 국적법상 22세 이전에 하나의 국적을 선택해야만 한다.
더욱이 이는 창업주 류찬우 회장과 선대 조상들이 보여준 행보와 어긋나는 상황이라는 견해가 많다.
류진 회장은 조선 중기 명재상이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절친으로 잘 알려진 서애 류성룡 선생(1542〜1607)의 13대손이다. 안동 하회마을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류씨 가문의 후예인 것이다.
또 류진 회장의 부친인 고 류찬우 전 회장은 사명을 지을 때부터 본관(풍산 류씨)을 따서 지은 것으로 알려진다. 류찬우 창업주는 살아생전 “선조에 누가 되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누차 강조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를 토대로 그동안 풍산 류씨 가문 600년 역사와 풍산그룹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보국기업, 국가 방위산업체의 자존심으로까지 불려왔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지키는 국방기업으로 국민의 존경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국적변경을 강행한 것에 대해 국민들이 배신감을 느끼는 상황이다.
향후 사업 변화 감지
향후 경영승계 시 후폭풍이 일어날 것이란 전망도 높다. 증여와 동시에 미국 국적을 취득했기 때문에 이러한 우려도 가시화 됐다.
류성곤씨가 아직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 않지만, 류진 회장의 뒤를 이을 경우 미국인이 우리나라 방위 산업의 중심에 자리 잡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그간 풍산이 축적해 놓은 방위산업 자료만 해도 엄청날 것이라는 점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다만 풍산그룹은 개인적인 일과 회사의 상황은 연결 짓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아무리 회장 아들이라고 해도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을 구분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정확한 답을 듣기 위해 풍산 관계자를 통해 수차례 전화취재를 요청했지만 더 이상의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담당자가 매번 자리에 없다거나 휴무·외근 중이라는 이유였다.
한편 풍산그룹은 1978년 동(銅) 제품을 생산하면서 1973년 정부에 탄약제조업체로 지정받았다. 국내 사업장에서 각종 포탄 및 총탄에 들어가는 탄약을 뇌관과 결합해 납품하고 있다.
1975년에는 M1 소총탄약을 필리핀에 수출하기 시작하면서 유럽, 중남미, 중동, 아프리카까지 시장을 넓혀갔고 비철금속 소재 생산기업으로도 이름을 떨치고 있다. 또 현재 국내의 유일한 종합 탄약 생산 업체이자 한국군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탄약을 생산하고 있다.
곡사포용 관측탄, 155㎜ 사거리 연장탄, 120㎜ 전차도비방지연습예광탄 등 미래형 탄약을 연구개발하고 있으며 5.56밀리 소총탄에서 227밀리 다연장로켓탄 탄두까지 만들고 있다. 탄약 원소재부터 최종 제품 생산에 이르는 일괄생산 체재를 갖춘 점이 특징이다.
이 외에는 한국조폐공사의 동전에 무늬를 넣기 전 단계인 소전을 생산하는 업체로 한국 이외에도 세계 각국 동전을 생산하고 있다.
류진 회장은 한국의 재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한미경제협의회 부회장을 지내는 등 재계와 미국의 가교 역할도 해온 바 있다.
구국의 이름 아래 성장하고 보국을 앞세워 존경을 받아온 풍산그룹이 장남의 국적변경과 관련해 언제까지 입을 닫고 있을 지 이목이 집중된다.
hwihols@ilyoseoul.co.kr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