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언론사·언론인들에 대한 소송이 넘쳐나고 있다. 오보를 냈다면 당연히 정정보도를 내고 사과를 하는 것이 맞지만 최근의 소송들을 살펴보면 사실 관계를 따지는 경우보다 화풀이식 소송이 난무하는 경향이 짙다.
지난 5월에는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부산일보 정상섭 기자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한 데 이어 한겨레 최상원 기자에게 제기한 소송도 패소했다.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 민사1단독 박무영 판사는 “한겨레 최모 기자의 기사는 진실이거나,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고, 공익을 위한 목적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 “일반 보도기사와는 차이가 있는 시사 논평 기사인 점을 고려하면, 언론의 자유 보장 내에 있는 것으로, 위법성이 조각돼 명예훼손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최 기자는 진주의료원 폐업 관련 논란이 확산되던 지난해 6월 21일 '홍준표 지사의 국정조사 피하기 꼼수'란 제목의 칼럼을 통해 "홍 지사는 한번 머릿속에 입력한 내용이면 잘못된 내용이라거나 틀린 수치라고 조언해도 고치려 하지 않는다"는 등의 내용으로 홍 지사를 비판했다.
홍 지사는 해당 기사 때문에 명예가 훼손됐다며 최 기자를 상대로 지난해 7월 18일 1억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냈다.
앞서 홍 지사는 부산일보 기자를 상대로도 최 기자와 같은 이유로 1억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지만, 지난 5월 27일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패소했다. 하지만 홍 지사는 두 판결 모두 항소할 뜻을 내비쳤다.
박 판사의 판결에서 알 수 있듯이 기자들은 ‘언론의 자유 보장 내’에서 얼마든지 사건을 소개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를 작성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기사의 대상자들이 반론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합리적인 반론이야 충분히 논의가 가능하지만 막무가내식 반론 요청에는 언론사들도 마땅히 대처할 방법이 없다. 결국 소송으로 이어져 법원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언론사·기자들에 대해 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비단 일반인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정부 관료와 정부기관에서도 적극적으로 기자들을 대상으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언론사 대상 소송 정부도 나서
지난 6월 12일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등 청와대 관계자 4명은 서울중앙지법에 한겨레를 상대로 정정보도 및 8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 및 800만원의 손해배상을 신청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월 17일 전남 진도체육관을 찾아 세월호 사고현장에서 구조된 아이를 위로하는 장면에 대해 연출 의혹을 제기한 보도를 문제 삼은 것이다.
앞서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은 4월 30일 ‘박 대통령 조문 연출 논란’을 보도한 CBS노컷뉴스를 상대로도 서울남부지법에 8000만원 손해배상 소송을 내고 언론중재위에 정정보도를 청구했다.
하지만 문제는 소송 당사자가 언론중재위의 권고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한겨레는 반론보도문 게재를 조건으로 소송을 취하한다는 언론중재위의 권고를 받아들일 계획이었으나 김기춘 실장 등은 이를 거부했다. 결국 법정 싸움으로 끝을 보겠다는 심산이다.
1심 판결까지 최소 1년 추가기사 봉쇄 노려
언론중재위의 권고까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결국 판단은 법정에서 가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홍 지사처럼 소송 전까지 가더라도 패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사를 상대로 끊임없이 소송을 진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론인들은 ‘언론 재갈물리기’ 또는 ‘전략적봉쇄소송’이라고 말한다.
전략적 봉쇄소송이란 추가적인 비판기사를 사전에 막기 위한 소송을 말한다. 일단 언론사나 기자가 소송을 당하게 되면 변호사를 두더라도 재판을 준비하기 위해 시간을 소비할 수 밖에 없다.
보통의 재판이 1심판결이 나오기까지 1년이 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송에 걸린 기자는 그 1년이란 시간 동안 다양한 스트레스와 심적 부담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또 소송에 걸린 만큼 추가기사를 쓰기는 더욱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소송을 거는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점을 노리는 것이다.
비판적인 기사를 막기 위한 소송은 결국 언론탄압이다. ‘언론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는 어떠한 국가나 기업이나 개인의 명예 때문에 위축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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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