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계 황태자 돌풍]
[기획-재계 황태자 돌풍]
  • 특별취재팀
  • 입력 2014-07-21 10:46
  • 승인 2014.07.21 10:46
  • 호수 1055
  • 3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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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경영자 는 이제 옛말…이재용·조현민 등 광폭 행보 주목

폭 넓히는 자녀들, 경영 수업 이젠 졸업반
꾸준한 현장수업…아버지 역할 이어 받을 듯

사업 재편 등 경영 현안‘산적’, 돌파구 찾나
색 안경 끼고 보던 시민단체, 이젠 호의적

[일요서울 | 특별취재팀]  TV드라마를 보면 재벌 3·4세가 많이 등장한다. 2011년 초에는 백화점을 경영하는 재벌 3세가 가난한 여자를 사랑하는 내용의 드라마 ‘시크릿 가든’이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때로는 동화 속 왕자처럼, 때로는 술과 여자를 끼고 사는 한량처럼 그려지는 재벌 3·4세지만, 이들의 실체는 TV 드라마와는 거리가 멀다.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혹독하게 경영수업을 받으며 사생활이 거의 없는 생활을 하는 재벌 3·4세가 다수다.

종편의 한 예능프로그램에 소개된 “재벌남과 결혼시키기"란 부제의 방송내용을 보면 재벌가와의 교육수준을 맞추기 위해 다채로운 교육을 하고, 식사예절부터 인사예절까지 가르치는 학원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충격을 준 적도 있다. 특히 이 프로그램에 소개된 18세 소녀는 부모가 어린 시절부터 혹독하게 가르쳤고, 재벌가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다니기 위해 노력했다는 설명이 있다. 일반이 인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출연진은 그게 실상이라고 주장했다.

재계 3·4세들은 한국에서 주요 대학을 거친 후 미국 등에서 MBA과정을 밟은 경우가 많다. 또 학업을 마친 후에는 주로 아버지가 수장으로 있는 회사에 과장, 부장 등으로 들어가 현장에서 5~10년 정도 실무를 경험한 후 임원으로 승진해 본격적인 경영수업에 들어가기도 한다.

혹독한 경영수업 중인 재계 3세들

두산그룹과 같은 회사는 경영능력을 키우기 위해 타 기업을 먼저 거치게 하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재계 황태자들은 ‘10~20여 년간의 경영수업을 통해 쌓은 사업감각, MBA, 해외법인 근무를 통해 축적한 국제마인드,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 배운 승부근성 등을 바탕으로 글로벌 메인무대에서 싸운다.' 2020년 이후 재계 1·2세들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3·4세가 한국기업을 이끌어 갈 때쯤 상상해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책도 많다. ‘재계 3세 대해부’라는 책이 대표적이다. 앞으로 10년 뒤인 2020년 한국 재계를 이끌어나갈 리더가 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 대표자는 역시 삼성그룹 황태자 이재용 부회장이다. 그의 최근 행보는 ‘미국 아이다호주(州)의 휴양지 선밸리에서 열린 세계 경제 거물(巨物)들의 모임인 ‘앨런&컴퍼니 콘퍼런스'에서 입은 59.99달러, 한화로 6만1000원짜리 티셔츠가 화제를 모으면서 주목받았다.

이 티셔츠는 미국의 실용 스포츠 브랜드 언더아머가 만든 골프웨어다. 언더아머는 1996년 미식축구 선수 출신인 케빈 플랭크가 만든 스포츠 의류 상표로 다른 골프웨어보다 가격이 저렴하다. 일류 삼성을 이끌 이 부회장이 입어 ‘서민 티'로 시샘과 호응을 함께 얻었다는 단순평가도 있지만 이 티셔츠에 숨은 전략이 있었음이 알려지면서 이 부회장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됐다. 경쟁사의 마음을 훔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 내포돼 있었던 것이다.

지난 10일 이 티셔츠를 입고 팀 쿡 애플 CEO와 대화하는 장면이 미국 취재진에 포착됐는데 애플은 현재 ‘언더아머'의 경쟁사인 나이키사와 협약을 맺고 사업을 추진 중이다. 공교롭게도 삼성전자도 웨어러블(착용형) 기기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이달 1일 서울 모처에서 언더아머의 최고경영자(CEO) 케빈 프랭크를 만나 사업 협력방안을 협의했다. 삼성전자와 언더아머가 손을 잡는다면 애플과 나이키의 협력에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미국 방송 CNBC도 “나이키의 경쟁자는 아디다스가 아니라 언더아머”라고 보도한 바 있어 미묘한 신경전을 이끌어 낸 것이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또한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챙겨 바이오의 마음을 흔들 정도로 이 부회장이 성장했다는 평으로 설명된다.

마찬가지로 이 부회장의 동생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행보도 주목 받는다. 2년간 호텔신라를 등한시했던 시진풍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에 맞춰 호텔리어로 변신했고, 앞서 2달간 작은 것 하나까지 챙기며 만전을 기한 사실이 알려져 이 사장의 숨은 진가를 보게 했다.

그는 시 주석이 호텔에 도착할 때와 떠날 때 직접 현관 앞에 나와 대기하고 있다가 마중과 배웅을 했다. 시 주석이 오기 수일 전에는 밤 1시 불시에 호텔 현장점검도 했다. 아울러 호텔사업의 중요성에 대해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언급하면서 호텔업에 대한 미래도 밝고 그 선두주자에 이부진 사장이 포진해있는 만큼 미래를 이끌어 갈 적임자라는 평가가 무색치 않다.

전혀 다른 사업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아버지가 이끄는 사업에 흥을 돋는 3세도 등장했다.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 이야기다. 조 전무는 대학강연에 나서면서 회사 기업이미지 제고는 물론 대학생에게 꿈과 힘을 실어주더니 최근에는 동화책 편찬으로 어린아이들의 순수함에 희망을 키워주고 있다. 조 전무가 펴낸 ‘지니의 콩닥콩닥 세계여행'은 이미 입소문을 통해 퍼지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 지니가 혼자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스토리를 담고 있는 동화 시리즈다. 지니라는 소녀가 주체가 되어 직접 여행을 준비하고, 떠나고, 경험하는 아기자기한 이야기와 완성도 높은 정보가 담겨 있어, 그 나라의 문화와 전 세계 또래 친구들과의 우정, 글로벌 감각까지 자연스럽게 키울 수 있다.

사실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여행서적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일방적으로 지식을 주입하고 전달하는 방식의 서적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니의 콩닥콩닥 세계여행'은 아이들이 스스로 계획하고 경험을 쌓아가는 스토리를 담아 지금까지의 서적과는 차별화를 꾀해, 아이들 여행 동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동화에서 선보인 여행지는 바로 일본의 최남단 ‘오키나와’로, 유서 깊은 문화유산과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맘껏 뛰놀며 한 단계 더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뒤이어 선보일 여행지는 미국의 역사가 살아있는 ‘윌리엄스버그’가 될 예정이다.

조 전무는 대한항공과 진에어에서 광고와 SNS, 커뮤니케이션 전략 및 마케팅 등 다양한 업무를 하면서도 틈틈이 아이들을 위한 글을 만드는 데 시간을 쏟아왔다. 조 전무는 “우리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다른 나라의 아이들과 교감할 수 있다면 더 넓은 시각을 갖게 되지 않을까라는 아이디어에 착안해 이번 책을 쓰게 됐다”며 “어린 시절부터 경험한 다양한 친구들과 문화, 여행 경험을 토대로 우리 아이들에게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는 다리를 놓아주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조 전무는 그동안‘소통’과 ‘변화’를 키워드로 기업 이미지를 변모시키는 한편, 새로운 광고 캠페인을 선보이며 탁월한 감각과 기획력을 인정받아왔던 터라, 이번 여행동화 또한 기대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진통을 겪고는 있지만 기업 내 지분을 확고히 한 효성가 장남 조현준 사장의 행보도 주목된다. 마침내 그는 아버지인 조석래 회장보다 높은 지분율을 기록하며 (주)효성의 최대주주가 됐다. (주)효성은 효성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회사다.

조 사장의 효성 지분은 10.33%로 10.32%인 조 회장을 앞서게 됐고 동생인 조현상 부사장과 지분 격차도 소폭 벌렸다. 따라서 조 사장의 지분율이 아버지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사실상 경영권 경쟁의 추가 기울었다는 평가다. 특히 효성그룹은 유교적인 가풍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장자승계 원칙에 따라 조 사장의 경영권 승계가 예상됐었다.

또한, 동년배(1968년생)이자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 이재용 삼성 부회장과의 관계도 조 사장에게 힘을 싣는다. 특히 이 부회장이 입어 화제가 된언더아머의 수입·판매사인 갤럭시아코퍼레이션은 효성그룹의 자회사이고, 이 회사의 대표가 조 사장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각에서는 조 사장이 이 부회장과 언더아머를 연결해준 것으로 보고있는 만큼 이재용 효과를 기대해 볼만하다.

다만 차남 조현문 변호사가 고발한 사건이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다. 사업에 몰두하기 보다는 경영수업에 몰두하고 있지만 주목받는 황태자가 있기 마련. 특히 김승연 한화그룹 장남 김동관 실장은 한화의 ‘태양광 사업'을 진두 지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태양광 사업이 안착하면 김 실장의 승계기반 마련도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차곡차곡 현장수업 그들은 누구

한화케미칼의 태양광 사업부문(한화솔라원·한화큐셀)은 지난 1분기 241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12분기 만에 흑자를 기록했다. 태양광 사업이 흑자를 내면서 한화케미칼·㈜한화의 실적도 뛰었다. 아버지 김승연 회장의 경영공백과도 맞물려 더 주목받고 있다. 지난 2월 징역 3년에 5년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김 회장은 올해 주주총회를 통해 계열사 등기임원 자리에서 물러났다. 신병치료와 부정적 여론을 감안해 김 회장의 경영복귀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김 실장은 독일과 일본 등을 두루 다니며 태양광 사업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구광모 부장의 행보도 여전히 재계호사가들 사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구 부장은 최근 지주사 LG로 자리를 옮겼다. 계열사 협력, 조율을 담당하는 LG 시너지팀으로 발령난 만큼 실무경험을 쌓은 후 후계구도를 위한 마지막 레이스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LG그룹에 따르면 구 부장은 최근 LG전자 HA(홈 어플라이언스)사업본부에서 LG 시너지팀으로 부서 이동했다. LG전자 창원공장으로 자리를 옮긴 지 3개월 만이다. 구 부장은 2006년 LG전자 재경부문에 대리로 입사 후 2009년부터 2012년까지 LG전자 미국 뉴저지 법인에서 근무했다.

2013년에 귀국해 LG전자 HE(홈엔터테인먼트)사업본부 선행상품기획팀에서 근무한 후 올해 1월부터는 HA(홈어플라이언스) 사업본부 창원사업장에서 기획관리 업무를 하며 현장 실무 경험을 쌓았다. 시너지팀장은 현재 LG전자에서 지난해 말 자리를 옮긴 권봉석 전무가 맡고 있다.

LG 관계자는 “구광모 부장이 지주회사로 이동한 것은 LG의 전통과 방식대로 현업에서 차근차근 실무 경험을 쌓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 구 부장의 향후 행보에 이목을 모았다.

보령제약그룹 창업주인 김승호 명예회장(83)은 네 명의 딸을 두고 있다. 현재 보령제약은 김 회장의 장녀인 김은선 회장이 경영하고 있으며, 둘째 은희 씨, 셋째 은영 씨는 경영과는 동떨어져있다, 막내인 김은정 보령메디앙스 부회장(46)이 보령제약의 핵심계열사를 맡고 있다. 그런데 김은선 회장의 아들 정균씨가 지난 1월 이사로 신규 선임되면서 활약하고 있다.

김 이사는 근무 전부터 지주사인 보령 지분의 25%(13만2천주)와 보령제약 지분 1.39%(110만6천930주) 등을 소유하고 있다가 본격적으로 경영수업에 나선 것이다. 특히 지난 2009년에는 유 씨에서 어머니 성인 김 씨로 개명하며 김은선 회장의 뒤를 이을 보령제약의 후계자로 해석되고 있다.

이외에도 이웅열 코오롱 그룹 회장의 장남 규호씨도 현재 코오롱인더스트리로 입사해 경영수업에 들어간 상태다. 규호씨는 현재 코오롱글로벌 차장으로 근무 중이며 건설과 철강 수출업을 영위하고 있다.

매일유업 김정완 회장의 딸, 김윤지(28)씨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영일선에 합류했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윤지씨는 작은아버지인 김정민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유아용품 업체 제로투세븐에서 바닥부터 실무를 다지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 4월부터 박태영(35)씨가 경영관리실 총괄임원(실장)으로 신규 임명돼 경영수업을 진행중이다. 박 실장은 박문덕 회장 장남으로 영국 런던 메트로폴리탄대학교를 졸업하고 2009년부터 경영컨설팅 업체 엔플랫폼에서 기업체 인수합병(M&A)업무를 주도했다.

교원도 후계 경영 수업이 한창이다. 장 회장의 아들 동하씨(30)는 올해 그룹 전략기획본부 신규사업팀 대리로 경영에 합류했다. 장 회장 맏딸 선하(31세)씨와 사위 최성재씨도 호텔사업부문에서 올해부터 각각 차장과 부문장으로 장 회장을 돕고 있다.

경영세습 비난 여론 ‘희미해져’

이쯤 되면 일부 경제단체와 시민단체가 나서서 ‘경영세습', ‘무늬만 경영자'라는 비난도 서슴치 않을 터다.
하지만 최근 이런 분위기조차 조용하다. 이젠 이들이 추후 왕좌에 오르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통념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들이 문제를 만들거나 부자간 잘못된 모습이 보일 땐 따끔한 지적이 필요하다는 게 경제단체의 중론이다. 이 때문에 이들 3·4세에 대한 행보가 더욱 주목받고 있다. 향후 이들의 행보에 산업계의 어깨가 걸린 만큼 이젠 이들을 응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황태자들은 오너 일가다. 특별한 잘못이 없는 한 이들이 경영을 세습하는 것에 대해 뭐라 할 수는 없다. 다만 창업주의 정신이 퇴색되고 후계구도로 인해 주주회사의 주주가 피해를 본다면 이를 바로 잡아줄 필요는 있다는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ilyo@ilyoseoul.co.kr

특별취재팀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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