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가장은 ‘천연기념물’
간혹 ‘어려운 가정형편상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순정만화의 주인공도 있다. 하지만 최근 이러한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말이다. 특히 생계가 어려울만큼 가난하게 자란 여성들은 오히려 화류계에 발을 들여놓을 확률이 낮다고 한다.서울 강남의 한 업소 관계자는 “어린아이들의 경우 자신이 보고 들은대로 행동하기 마련 아닌가. 가난하게 자라온 여성들이 화려한 밤의 세계를 잘 모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어려운 집안에서 자란 여성들은 감히 나가요걸을 할 엄두조차 못낸다. ‘나가요’를 할 수 있는 기본적인 기질 자체가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일부 여대생들은 등록금이나 유럽 배낭여행 비용 마련이라는 야심찬 목표를 가지고 화류계에 진입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목표를 이루고 화류계 바닥을 과감하게 뜨는 아가씨들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오히려 학교와 업소를 오가며 이중생활을 하느라, 어느 한 분야에도 집중하기 어렵다. 일부는 학업에 신경을 쓰지 못한 나머지 졸업도 못하거나, 졸업과 동시에 실업자 위치에 처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업소 관계자의 말이다. 결국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녀들은 다시 룸살롱을 찾아와 아예 ‘완전 정착’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직장에 다니는 여성들의 경우에는 주식투자의 실패로 인해 화류계에 발을 들여놓는 경우가 많다. 입사 후 번 돈을 주식에 쏟아붓는 여성들은 갈수록 늘고 있지만 정작 주식으로 돈을 버는 여성은 가뭄에 콩나는 수준. 그러나 돈을 잃은 여성들은 본전생각에 좀처럼 주식판을 떠나지 못하고, 결국 주식에서 발생한 손해를 밤업소에서 일을 하는 것으로 메우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호프집이나, 옷가게서 일한다 둘러대
그러나 나가요걸들의 화려한 이중생활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지는 것이 보통이다. 나가요걸에 대한 이미지 때문인지, 보통 10명에 7~8명 정도는 가까운 지인에게조차 자신의 이중생활을 알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개는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한다’, ‘동대문에서 옷을 판다’고 둘러댄다.‘나가요걸’ 2년차인 A(25)양은 자신이 업소에 나간다는 것을 집에서 알면 난리가 날 것이라며 펄쩍 뛰었다. A양에 따르면 집에서는 그녀가 오후시간대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는 “귀가시간이 보통 새벽 4~5시정도 되니까 그때까지 영업을 하는 업종을 선택해 적당하게 둘러댄다”며 “가장 이해시키기 쉬운 것이 밤영업을 하는 호프집 서빙과 동대문 옷장사 아르바이트”라고 전했다. 아가씨들의 출근은 대략 저녁 8시부터 9시 사이에 이뤄진다.
일을 마친 아가씨들은 보통 새벽 5시 이후에나 잠자리에 들 수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시간은 오후 2~3시를 훌쩍 넘기는 것이 보통이다. 전날 함께 술을 먹었던 손님들이 아침에 그녀들에게 문자를 남겨봤자 무시당하기 일쑤. 정오가 지나서 일어난 아가씨들은 업소 마담이나 구좌와 간단한 통화를 한 후 오늘 있을 ‘지명 손님’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듣기도 한다. 그 이후에는 본격적인 ‘가식 타임’이 있다. 그녀들의 수입이 전적으로 자신을 찾는 손님들에게 달려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가식타임은 바로 이러한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즉 단골 손님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가식적인 멘트를 곁들여 안부를 묻거나 업소에 놀러올 것을 슬쩍 권유하는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는 것. 쉬운 일 같지만 이것도 일종의 영업이며 상당히 긴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 아가씨들의 말이다.북창동 인근에서 근무하는 B(27)양은 “아무 생각 없이 일하는 아가씨들 빼고는 모두 자신만의 영업 전략을 가지고 손님관리를 한다”며 “지명이 많을수록 수입이 올라가기 때문에 귀찮더라도 이러한 영업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미용실 이용료 월 200만원 지불
이런 저런 집안일과 간단한 잡무, 개인적인 볼일을 마치고 나면, 본격적인 영업준비에 들어간다. 그녀들의 화려한 변신이 시작되는 것이다. 미용실은 하루의 필수 코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동은 거의 콜택시를 이용한다. 저녁을 먹지 않은 경우에는 한끼에 8천원~1만원 정도의 돈을 내고 업소에서 먹는다. 그리고 그녀들은 언제든 ‘네~, 나가요!’를 외칠 수 있는 5분 대기조에 투입된다. 새벽에 일이 끝나면 개인 시간이 시작되는데 이 시간을 보내는 방식은 아가씨들마다 천차만별이다. 바로 퇴근하는 아가씨, 밥 먹으러 가는 아가씨, 포장마차나 나이트클럽을 찾는 아가씨, PC방에 가는 아가씨 등 저마다 개인시간을 즐기는 방식은 따로 있다.
유흥가 관계자들은 “새벽 3시 이후에 나이트클럽에서 노는 아가씨들 중에 아마 상당수는 ‘나가요 언니’들일 것”이라며 “일반 직장인들은 다음날 업무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새벽까지 놀기가 무척 힘들지 않겠냐”고 반문한다. 특이한 점은 나가요걸들은 룸살롱에서는 남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갖은 아양을 다 떨지만, 정작 나이트클럽에서는 부킹이 들어와도 좀처럼 승낙하지 않는다고 한다. 남자들이 싫어서라기보다는 룸살롱 영업중 뭉개져버린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것도 있다는 것. 즉 나이트클럽에서는 ‘나 쉬운 여자 아니다’라는 점을 애써 강조하려 한다는 것이다.
유흥비로 ‘펑펑’ 헤픈 씀씀이
아가씨들이 한달에 쓰는 돈은 얼마나 될까. 또 어디에 쓸까. 그녀들의 씀씀이는 가히 일반인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다. 대기업 직장인들도 한달 용돈이 50만원도 채 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그녀들 중에는 거의 1,000만원대에 가까운 생활비를 지출하고 있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헤어와 메이크업을 동시에 받는 경우 하루 미용실에 들어가는 비용만 최소 6만원에서 8만원선. 대부분의 아가씨들은 월 200만원 정도의 정액 계약을 맺어놓고 서비스를 받는다. 물론 200만원 정도는 웬만한 직장인의 한달 월급이지만 그녀들은 이 돈을 절대로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필수적인 투자라고 생각하기 때문. 주거 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
나가요걸들은 홀로 독립해서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이들 중 대부분이 강남에 거주하고 있다. 게다가 그들은 시시한 곳에서 비참하게 살지 않는다. 이들 중 상당수가 역삼, 논현, 청담, 삼성동 등지에 원룸을 얻어 거주하고 있다. 따라서 순수 월세 금액만 100만원에서 150만원 정도가 된다는 것이다. 특히 그녀들은 5천만원에서 1억원 가까이 되는 보증금을 낼 돈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비싼 월세를 내고서라도 그런 곳에 살 수밖에 없다. 또한 워낙 화려한 것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고급 빌트인형 원룸이나 오피스텔에 사는 경우가 많다. 식비 및 기초생활비 역시 결코 무시할 부분이 아니다. 이들은 대부분 음식을 직접 해먹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배달을 시키거나 외식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러한 비용을 통틀어 계산하면 월 100~150만원 정도가 들어간다. 교통비도 적지 않다.
직접 차를 몰고 다니기 보다는 콜택시를 많이 이용한다. 하루에 드는 콜택시 비용만도 대략 2~3만원으로 한달에 70~80만원 정도가 들어간다. 가장 돈이 많이 소요되는 것은 의류와 가방, 액세서리 구매 비용이다. 최소 200~500만원까지 들어간다는 것이 아가씨들의 얘기. 영업시간 이후의 유흥비도 만만한 금액이 아니다. 또 피부관리를 받거나 치아교정를 하는 경우, 레저비, 화장품 구입비, 잡비 등을 포함하면 평균 200만원 정도는 훌쩍 넘어서게 된다. 게다가 호빠나 비싼 술집에라도 들락거리게 되면 지출은 무한정 늘어난다고 보면 된다. 이런 비용들을 모두 합치면 생활비는 월 평균 800~900만원이 들고, 1,000만원대를 넘기기도 식은죽 먹기라는 것이다. 화류계가 남긴 명언 중의 한 구절에 이런 말이 있다. ‘화류계 생활 오래하면 결국 남는 건 명품과 옷, 그리고 한숨뿐이다’ 비록 그녀들이 지금은 화려해 보인다고 해도 결국에 그것은 ‘거픔’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 북창동 ‘나가요걸’ C양 인터뷰“돈맛에 발빼기 힘들어”
나가요 언니들의 생활은 ‘풍요속의 빈곤’이라는 말에 딱 들어맞는다. 버는 돈만큼이나 지출 역시 엄청나기 때문에 실제 손에 쥐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북창동에서 만난 C양(26)역시 마찬가지 경우. 그녀는 해외 유학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화류계에 진출했지만 얼마가지 않아 룸살롱에 눌러앉았다.
- 계속 이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목표가 있었지만, 이 일을 하다보니 내 스스로 무너졌다. 처음 마음을 제대로 지키기가 쉽지 않다. 이 생활을 하면서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돈 씀씀이다. 화장품 구입비만 월 200정도를 쓰다가 유학가서 쪼들리며 공부할 생각을 해봐라. 솔직히 한번 맛 들인 이상 이 생활을 벗어나기가 힘들다.
- 자신의 꿈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 물론이다. 하지만 그 꿈이라는 것도 현실의 달콤함 앞에서는 무너진다. 좋은 옷에 좋은 차를 타고 다니고 명품 옷을 입는다는 것 자체가 마약과도 같다. 돈을 얼마를 버느냐보다 어떻게 아끼느냐가 중요하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 다른 아가씨들은 어떤가.
▲ 나처럼 목표를 가지고 이 생활에 발을 들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생활에 젖어들면 그들 역시 변하더라. 그렇지않는 경우는 어떤 ‘강제적인’ 요건이 있을 때다. 예를 들어 가족의 수술비를 대야 한다든지, 생계를 책임져야할때, 혹은 카드사에서 협박에 가까운 독촉 전화를 받을 때라든지, 그런 상황에 처한 애들은 씀씀이에 자제를 하는 것 같다.
- 나가요걸들의 장래 희망은.
▲ 가장 이상적인 건 돈 많고 나를 이해해주는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다. 기존의 화려한 생활도 유지하면서 험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같은 사람들이 백마탄 왕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정신을 차린 애들은 돈을 모아서 장래준비를 한다. 메이크업이나 미용기술을 배우기도 하고 융자를 받아서라도 작은 술집을 개업하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구성모 프리랜서(pandora21.com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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