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역전’ 꿈꾸다 ‘패가망신’ 속출
‘인생역전’ 꿈꾸다 ‘패가망신’ 속출
  • 정은혜 
  • 입력 2006-02-15 09:00
  • 승인 2006.02.15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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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31일 오후 3시. 지하철 명함식 광고를 보고 기자는 서울 합정동 호주 로또 사업설명회장을 찾았다. 상가건물 3층 40여평 공간에 자리잡은 이곳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몰려든 인파로 만원이었다. 참석자 대부분은 40대 이상 남성들이 었지만 20~30대 여성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국내에 본격적으로 홍보한지 약 석달 만에 수천명의 회원을 모집했다는 항간의 소문이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인기뒤에 ‘달콤한 유혹’

이처럼 호주로또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호주로또 사업자에 따르면 이 사업은 창업자금이 필요 없다. 설령 망한다 해도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지 않는다. 속된 말로 ‘밑져야 본전’인 아이템이다. 아이템의 이 같은 속성이 불확실성 시대를 살아가는 직장인들에게 크게 어필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특히 복권의 경우 재구매율이 높기 때문에 생각보다 쉽게 수익이 생긴다”며 “불황에 호주로또 사업이 더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호주로또의 ‘TSC2000 시스템’ 운영방식 또한 인기비결 중 하나다.

‘TSC2000 시스템’은 호주로또 대행업체로 국내 ‘국민은행’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 시스템은 해외 복권 사이트(www.tsc2000europe.net)를 통해 인터넷으로 구매대금 결제와 당첨금 지급이 이뤄지게 하고 있다. 한국로또와 추첨 방식은 같지만 처음 회원으로 가입할 때 부여받은 5개의 번호를 영구적으로 사용하며 일주일에 3번(화·목·토) 추첨하는 등 당첨확률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자신을 월급 150만원을 받는 직장인이라고 소개한 한 ‘호주로또 마니아’는 “로또 고유번호가 있기 때문에 매주 번호를 바꾸지 않아도 되고, 판매와 배분이 모두 온라인상에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편리하다”며 호주로또 예찬을 아끼지 않았다.

부업으로 호주로또 사업을 하고 있다는 한 30대 남성은 “일주일에 3번 추첨하기 때문에 그만큼 확률도 높다”며 “가입한지 1개월 만에 4등에 1번, 5등에 2번 당첨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사실과는 크게 다르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말로 유혹하지만 피해자들은 날로 늘고 있다.

업자 “네트워크 사업” 강변

문제는 이들의 회원 모집방식과 무분별한 홍보가 ‘불법’이라는 데 있다. 먼저 ‘회원 모집형태’. 취재 결과 이들은 철저하게 ‘다단계 판매 방식’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회원을 직접 데려올 때나 데려온 회원이 다른 회원을 가입시킬 때마다 수수료를 받는데 이런 중개수수료를 합하면 몫돈의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당첨금 보다는 회원모집을 통한 수익을 강조하고 있는 것. 또 ‘당첨금 외 벌 수 있는 시스템’이라는 표까지 작성해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표의 내용에 따르면 자신과 추천인, 제 3, 4자 등 1대부터 9대까지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또 이들이 모집하는 회원 수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자세하게 나와 있다. 이렇게 회원모집만 강조하다 보니 부업으로 이 사업을 하는 직장인들에겐 적지 않은 악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인테리어 전문 업체에 근무했던 한 여성은 호주로또의 유혹에 투잡스를 시도했다가 직장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회원모집을 통한 수익에만 치중, 각종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 이를 홍보하다보니 본업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된 것. 결국 그녀는 회사에서 자주 개인적인 일에 치중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권고사직을 당했다고 한다. 또 다른 문제는 ‘무분별한 홍보방식’이다. 지하철이나 인터넷 사이트에 허위 과대광고를 해 회원들을 유혹, 현금이나 카드로 1년치 선결제를 요구해 가입하게 하는 방식 등이 그것이다. 회원은 크게 클래식 회원과 플래티넘 회원으로 구분된다.

첫 가입시 클래식 회원은 12만원, 플래티넘 회원은 24만원을 낸다. 플래티넘 회원이 내는 24만원 중 4만원은 1년치 연회비다. 10만원은 예치했다가 카드잔금 부족시 사용(보증금)하고, 남은 10만원은 한 달 동안 로또구입비(선불금)로 사용하게 된다. 지하철에 꽂힌 명함을 보고 이곳을 찾게 됐다는 한 남성은 “한 번에 무려 120만원어치 선결제를 했다. 아내 몰래 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아 모은 돈이었다. 일주일 내내 호주 로또 당첨여부를 확인하느라 고생했다. 그러나 당첨은 고사하고 매달 돈이 빠져나가기만 했다”며 빚진 돈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생전 처음 복권을 샀다는 주부 A씨는 “평소에 단돈 10원까지도 가계부에 일일이 적던 내가 인터넷 광고에 휩쓸려 남편 몰래 12만원을 투자했지만 간신히 1만원만 건졌다”며 씁쓸해했다.

사회문제로 급부상

이처럼 호주로또 사업이 새로운 사회문제로 급부상 하자 강남경찰서는 지난달 30일 호주로또의 불법성 여부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이에 대해 호주로또 사업관계자는 “불법이라니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로또를 즐기면서 부가수입을 올리자는 취지일 뿐 불법성은 없다”고 일축했다. 이어 “이 사업은 다단계 사업이 아닌 네트워크 마케팅 사업”이라며 “복권을 이용한 네트워크 사업은 기존의 물건을 파는 다단계와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한편 그는 “호주로또 자체가 문제되는 게 아니라 홍보방법이 문제되는 것”이라며 “지하철 내의 명함, 전단지 등 무분별한 광고지 살포를 지양하겠다”고 밝혔다.

복권 전문가들은 “아무리 합법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이라 하더라도 복권이 사람들의 사행심을 부추겨 근로 의욕을 꺾고 ‘한탕주의’를 부르는 것은 기정 사실”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성실하게 일해 떳떳하게 돈을 벌어야 할 직장인들이 ‘한탕주의’의 노예가 되어가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라는 게 복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요행’을 바라는 우리네 모습으로 보아 ‘호주로또 열풍’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정은혜  kkeunna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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