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는 대로 성관계 “세상에 복수하고 싶었다”
닥치는 대로 성관계 “세상에 복수하고 싶었다”
  • 정은혜 
  • 입력 2006-01-31 09:00
  • 승인 2006.01.3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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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부터 제주 지역이 ‘에이즈 공포’로 술렁이고 있다. 에이즈에 감염된 20대 남성이 도내에서 다수의 여성들과 버젓이 성관계를 가진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 에이즈 환자에 대한 관리체계가 엉망인 것으로 나타났고 감염된 사실을 알면서도 성 관계를 가진 감염자에 대한 법적인 처벌도 미비,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제주경찰서는 23일 에이즈 감염 사실을 숨기고 수명의 여성들과 수십 차례 성관계를 가진 A(26)씨를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의 ‘성관계 대상’은 현재 드러난 수만 7명이다.

그러나 취재 결과 A씨는 이들 외에도 수많은 여성들과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가졌던 것으로 밝혀져 또 한 차례 에이즈 후폭풍이 예상된다. 이유인즉, 지난 19일부터 3일간 제주시보건소에 접수된 에이즈 감염 여부 신청만 36건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를 숨기거나 모르는 경우까지 합하면 감염자는 수백 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A씨가 에이즈 감염자라는 사실이 처음 확인된 시기도 최근(제주시 보건소)이 아닌 지난 2000년(전북 남원시 보건소)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보건당국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게다가 그동안 A씨는 에이즈에 감염된 채 제주 지역 뿐만이 아닌 전국 각지 유흥업소를 전전하며 성 접촉을 해왔던 것으로 드러나 구체적인 실태파악과 역학조사가 시급한 실정이다.

에이즈 감염 후 유흥업소 전전

경찰에 따르면 A씨가 에이즈 감염자라는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된 시기는 지난 2000년 9월.군 입대 후 신병훈련소에서 신체검사를 받다가 ‘에이즈 감염자’로 판명된 것이다. 유난히 놀기를 좋아했던 A씨는 친구들과 집 근처에 있는 나이트클럽이나 술집 등을 자주 드나들었다. 군 입대 전에는 친구들과 ‘제대로 한탕 놀아보자’며 사창가를 찾아 윤락녀들과 성관계를 맺기도 했다. A씨가 에이즈에 감염된 시기도 이 즈음으로 보인다. 에이즈에 감염된 채 군에 입대한 A씨는 신병훈련소에서 내린 ‘에이즈환자’ 판명에 의가사 제대를 하게 된다. 형편 상 군에서 특혜를 봐준 것이 아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군에서 쫓겨난 셈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가족 역시 A씨를 외면했다. 일반적인 통념대로 에이즈에 대해 가까이 가면 옮는 무서운 전염병, 혹은 온 몸에 붉은 반점이 생겨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불치병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상의 편견과 가족의 냉대에 상처 받아 방황한 것일까, 아니면 기존 성향대로 놀기를 좋아해 문란한 생활을 즐겼던 것일까. A씨는 유흥업소 등지를 전전하게 된다. A씨는 처음에 전주와 인천 등을 떠돌다가 한때는 일본으로 건너가 생활하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적응하지 못하고 되돌아왔다. 떠돌이 생활 끝에 A씨는 지난 해 8월 제주에 들어오게 된다. A씨는 같은 해 10월 5일께 제주시 연동 동사무소에 주민등록 전입신고를 했다. 이후 A씨는 이곳에서도 그간 해왔던 속칭 ‘호스트바’ 종업원으로 취업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대학생, 주부 가리지 않고 여러 명의 여성들과 성관계를 맺었다.

사회편견·가족외면에 상처

A씨의 이러한 엄청난 ‘범죄행각’의 배후에는 분명 의도가 있어 보인다. 일반적으로 에이즈 감염자들의 범행 동기는 ‘나만 당할 수 없다’는 식의 ‘복수심’이거나 ‘우린 일반인과 다를 게 없다’는 식의 ‘당당함’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조사결과 A씨의 반응은 그야말로 황당 그 자체였다. 이 같은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고 정작 자신은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A씨는 “세상에 복수하고 싶었다”며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미처 몰랐다”고 밝혀 경찰들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보건당국 관리체계 곳곳 ‘구멍’

그렇다면 에이즈 감염자인 A씨가 어떻게 유흥업소에 취업을 할 수 있었을까. 먼저 보건당국의 ‘허술한 관리’ 때문이라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 때문에 A씨를 관리할 보건소도 최초 전주에서 인천으로 바뀌었다. 이후 A씨가 일본으로 가면서 행방불명되는 바람에 지난해 6월에는 본적지인 남원보건소가 그를 떠맡았다. 문제는 A씨가 제주로 들어온 8월 이후에도 6개월 동안이나 관리전환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원래 에이즈 환자가 전입신고를 할 때는 그 지역 보건소로 관련 서류를 넘겨 관리하도록 보건복지부가 지침을 마련,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A씨는 단 한 차례의 면담도 갖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실시해야 하는 감염 역학조사도 받지 않았다. 다만 지난 11일 남원시 보건소가 관련서류를 넘겨준 뒤에야 제주시 보건소 관계자가 A씨와 처음 전화통화 했을 뿐이다. 이러한 허술한 관리 탓에 A씨가 5년여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성 관계를 맺고 유흥업소에 취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 제주시보건소 관계자는 “A씨가 그동안 숨어서 지냈기 때문에 A씨를 만날 수 없었다”며 “조만간 A씨에게 보건교육과 치료 및 진료비 지원 등에 대한 안내를 하고 역학조사도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유흥업소에 쉽게 발을 들여 놓을 수 있었던 두 번째 이유는 법의 ‘맹점’이다. 현행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에 따르면 에이즈 감염자는 직업은 마음대로 가질 수 있으나 유흥업소 취업만 금지돼 있다.

그러나 A씨는 유흥업소 종업원의 경우 여성에 대해서만 6개월에 한 번씩 정기적인 검사를 하고, 남성은 제외된다는 법의 맹점을 노렸다. 실제로 A씨는 “사실상 이 법은 여성들에게만 해당되지 않느냐”고 반문해 경찰은 혀를 찼다.이에 대해 제주도 보건당국 관계자는 “앞으로 에이즈 정기검진 대상자에 성차별을 두지 않겠다”며 “관련 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개정안을 입법 추진 중이며, 성병 검진 규정에서도 성차별을 없애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은혜  kkeunna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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