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남편 박씨는 아내를 감금, 유서를 쓰게 한 뒤 농약을 건네며 “(네가) 직접 마시지 않으면, (내가) 직접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남편의 말에 겁을 먹은 아내는 음독한 후 숨지고 말았다. 남편 박씨는 “가출한 아내가 다른 남자와 동거해서 복수를 하기 위해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이들 부부에게 어떤 곡절이 있었던 걸까.지난 80년 박씨와 결혼한 아내 A씨(45)가 가출을 결심한 것은 지난 2002년 2월. 어린 딸과 아들을 둔 이들은 주변에 그저 평범한 부부로만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평소 의처증이 심한 박씨는 아내가 전형적인 가정주부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의심의 눈길로 바라봤다.
아내의 일거수일투족 감시
시장이나 목욕탕을 갈 때에도 허락을 받으라고 할 정도로 의처증이 심했던 박씨는 아내가 동네 아저씨랑 대화를 나누거나 심지어 경비한테 인사하는 것만 봐도 수상한 생각을 했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구타로 이어졌고 성적 모욕감을 주는 폭행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아내에 대한 의심이 점점 커지면서 결국 박씨는 부동산중개업도 그만두고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박씨는 정작 다른 여성들과 잠자리를 갖고 밖으로만 나돌아 다녔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심보인 셈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박씨가 아내에게 비정상적인 성관계를 요구해 왔다. ‘스와핑’을 제안한 것이다.
지독한 의처증, 불륜도 모자라 특이한 성적 취향까지. 아내는 이러한 박씨의 엽기적인 행각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이것이 A씨가 집을 뛰쳐나오게 된 직접적인 원인인 것이다.하지만 아내로부터 배신당했다고 생각한 박씨는 이때부터 아내에 대한 ‘복수’를 꿈꾸기 시작했다. 박씨가 생각하는 복수는 바로 아내를 찾아내 죄 값을 묻는 것. 이때까지만 해도 박씨는 아내를 ‘살해’할 생각은 없었다. 박씨는 끈질기고 집요한 추적 끝에 아내의 행방을 찾아낼 수 있었다. 아내가 가출한 지 2년 10개월 만이다. 박씨는 2004년 12월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으면서 아내가 경기도 고양에서 다른 남자와 동거 중인 사실을 알아냈다. 이 사실에 화가 치민 박씨는 ‘살인’을 계획하기에 이른다. 박씨는 먼저 아내의 거주지를 찾아낸 뒤 아내가 실제 그곳에 사는지 확인을 했다. 그 후 집 밖으로 나오는 아내를 납치해 3시간이 넘도록 차 안에 감금했다.
박씨는 아내를 추궁하며 그동안 다른 남자와 동거한 생활 등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이를 테면 “죽을래? 묻는말에 대답 안할래?”식의 ‘취조’였다. 그리고 박씨는 자신과의 재결합을 요구했다. 끝내 아내가 대답하지 않고 잘못도 빌지 않자, 박씨는 아내를 차에 태우고 인근 밭으로 데려가 ‘남편과 애들한테 미안하다’라는 취지로 유서를 쓰게 했다. 어리둥절해 하던 아내는 이를 거절하고 밭에서 나가려 했다. 그러나 박씨는 “내 말 들어”라며 아내를 때리기 시작했다. 박씨의 무자비한 폭행에 아내는 결국 저항할 의지를 상실했다. 항거 불능의 상태에 빠진 아내를 앞에 두고 박씨는 아내에게 미리 사 둔 농약을 건넸다. “농약을 마시지 않으면 내가 직접 살해하겠다”는 박씨의 위협에 겁을 먹은 아내는 결국 음독을 해야 했다.
완전범죄는 없다
100% 완전범죄로 일단락될 수 있었던 이 사건에 불을 지핀 것은 지나가던 동네 주민의 목격이었다. 목격자 B씨에 따르면 만신창이가 된 A씨는 콧물도 흘리고 입에 거품을 문 상태였다. A씨는 “남편이 나를 죽이려고 농약을 먹였다”며 자신을 병원에 데려가 줄 것을 B씨에게 호소했다. 이 말에 아연실색한 B씨는 황급히 인근 병원에 A씨를 옮겼지만 이미 농약의 독성은 온몸에 퍼진 뒤였다. 죽기 직전 A씨의 말에 따라 B씨는 이 사실을 경찰에 알렸다. 당시 사건을 맡은 경기 고양경찰서에 따르면 처음에 박씨는 자신의 범행을 극구 부인했다.
‘아내에게 자살을 강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죽어 버리겠다’고 말했을 뿐이라는 것. 그러나 목격자의 진술과 현장 증거품 등 모든 것이 박씨의 소행인 것으로 드러나자 이내 자신의 범행을 실토했다. 경찰은 가출한 아내를 붙잡아 감금한 뒤 농약을 먹도록 강요해 숨지게 한 혐의(위력자살 결의 등)로 박씨를 구속했다. 서울고법 형사3부(민일영 부장판사)도 구랍 30일 구속 기소된 박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공포감을 벗어나기 위해 가출한 아내를 2002년부터 약 3년여간 집요하게 추적해 붙잡은 뒤 범행을 저질렀다”며 “자살을 강요한 것은 범행을 은폐하려는 목적이었던 만큼 직접 살해한 것보다 오히려 더 잔인하다”고 판결했다. 주변에서는 박씨의 범죄 행각에 분노하면서도 남편의 학대를 못 이겨 가출한 아내 A씨가 결국 남편 손에 죽음을 맞은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박씨는 아내에게 사죄하는 태도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
오히려 다른 남자와 동거한 잘못만을 탓하며 자신이 고아였던 처지와 건강악화 등을 이유로 선처를 바라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남편이란 작자가 아내의 죽음 앞에 저렇게 태연하고 뻔뻔할 수 있는가…”라며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박씨의 행동에 혀를 찼다. 그렇다면 자신의 잔악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일말의 반성도 하지 않는 박씨의 행동을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범죄심리 전문가들은 ‘지나친 의처증 탓’이라고 입을 모은다. 아내에 대한 의심이 커질수록 박씨의 마음의 상처 또한 커졌고 급기야 더 큰 ‘분노’로 발전하게 됐다는 것. 이것이 박씨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시키고 있는 이유라는 시각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살인’이 ‘정당화’될 순 없다. 가정폭력에서 의처증, 살인으로 이어지는 또다른 비극을 부르지 않도록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때다.
정은혜 kkeunna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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