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회피에 급급한 축구협회 실리와 명분 모두 놓쳤다
책임회피에 급급한 축구협회 실리와 명분 모두 놓쳤다
  • 김종현 기자
  • 입력 2014-07-14 11:18
  • 승인 2014.07.14 11:18
  • 호수 1054
  • 5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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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월드컵 후폭풍

▲ <뉴시스>

버티던 협회 3대 논란에 홍 감독·허 부회장 사퇴로 눈가림
밀실·근시안적 행정 한국 축구 몰락 자초…감독 선임 난항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브라질 월드컵 결과를 놓고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어난 가운데 홍명보 감독이 끝내 사퇴하면서 대한축구협회는 또 다시 길을 잃었다. 특히 조광래 감독 경질 이후 불거진 밀실행정과 책임회피 등 축구협회가 한국 축구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면서 한국 축구의 몰락을 자초했다. 더욱이 홍 감독의 사퇴발표 직후 기다렸다는 듯 허정무 부회장의 사퇴발표, 정몽규 협회장의 대국민 사과가 이어지면서 진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실리도 명분도 모두 놓친 축구협회의 문제를 살펴본다.

축구대표팀이 브라질 월드컵 본선무대에서 1무2패로 H조 조별리그에 탈락하는 부진을 겪으며 축구팬들의 거센 항의가 이어졌다. 지난달 30일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축구대표팀에게 호박엿을 던지고 ‘한국 축구는 죽었다’는 현수막이 걸리는 등 그간의 대표팀 환영행사와는 딴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협회는 홍 감독의 사퇴 의사에 상관없이 재신임을 결의해 6개월 남짓 남은 아시안컵까지 맡아야 한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허 부회장은 홍 감독의 유임을 발표하는 기자회견 내내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느냐”라는 지적에도 책임지겠다는 말 한마디 없이 버티기로 일관했다.

하지만 홍 감독은 지난 10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마음이 굉장히 무겁다. 지난 월드컵 전에는 국민들께 희망을 전해드리겠다고 다짐했지만 결과적으로 실망감만 안겼다”며 “부족한 저에게 많은 격려를 해주셨지만 오늘로 감독직을 사퇴하겠다. 앞으로 발전된 사람으로 많은 노력을 하겠다”고 밝혀 국가대표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악화된 여론에 홍 감독 백기

▲ <뉴시스>
물론 여기에는 악화된 여론이 한몫했다. 축구협회는 그간의 감독 경질에 부담을 느끼며 홍 감독에 대해 끌고 가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브라질 월드컵 실패 이후 잇달아 터진 홍 감독에 대한 논란이 가세하면서 결국 양측 모두 백기를 들었다.

홍 감독을 궁지로 몬 논란에는 최종엔트리 선정부터 제기되어온 일명 ‘엔트의리’를 시작으로 토지매입, 뒤풀이로 압축된다.

우선 홍 감독이 월드컵 본선을 한 달 앞둔 지난 5월 파주NFC(축구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서 훈련할 당시 한국판 비버리 힐스라고 불리는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토지를 매입한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었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에 따르면 홍 감독은 이곳의 토지를 구입하기 위해 4월부터 수차례 현장을 찾았고 훈련시기에도 직접 최종 계약을 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축구협회 측은 “만약 (토지 매입 등)움직였다 하더라도 개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협회 차원에서는 멘트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는 개인적인 생활이고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는 점에서 문제가 될 것은 없지만 월드컵 성적이 16년 만에 최악을 기록한 만큼 큰 대회를 앞두고 홍 감독이 개인적인 부분에 더 신경을 썼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에 대해 홍 감독은 “토지 구입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었다”면서 “제 삶이, 비겁하게 살지 않았다. 언론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훈련시간에 구입한 것은 전혀 아니다. 그렇게 살지 않았다”고 억울함을 표출했다.

또 홍 감독의 사퇴발표 직전 공개된 대표팀의 뒤풀이 영상이 축구팬들의 공분을 샀다. 지난달 26일 벨기에와의 조별예선 3차전에서 0:1로 패하며 16강 진출에 실패한 대표팀은 상파울루에서 하루를 보낸 후 이구아수에 있는 베이스캠프로 돌아와 뒤풀이를 했다. 그런데 당시 대표팀 선수들은 결과와 상관없이 현지 여성과 음주가무를 즐기며 흥겨운 술자리를 가진 것으로 확인돼 비난이 거세게 일었다.

홍 감독은 뒤풀이영상에 대해 “사퇴할 생각을 해서 그 자리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어린 선수들이 패배에 대한 슬픔이 깊었기 때문에 위로해주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신중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해 반성의 뜻을 전했다.

여기에 최종엔트리 선정까지 불거진 ‘엔트의리’ 논란도 부진한 결과 앞에서 다시 고개를 들었다. 홍 감독은 원팀과 원칙을 내세우며 선수 선발에 신중을 기하겠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드러냈다.

하지만 정작 월드컵을 앞두고 청소년대표팀부터 올림픽 대표팀까지 함께했던 선수들을 대거 발탁하면서 비판을 받았다. K리그에서 뛰고 있던 국내파 선수들 대신 소속팀 벤치신세를 면하지 못하던 해외파를 선호했고 이는 본선 무대에서 해외파 선수들의 부진으로 이어지면서 발등을 찍혔다.

그러나 홍 감독은 “국내 선수들로 지난해 7월과 올해 1월 경기를 했는데 멕시코에 0-4로 지고 생각을 바꿨다. 내가 아는 선수들로 골격을 만드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K리그 최고의 선수들이라도 유럽에서는 B급일 수밖에 없다”며 “월드컵을 나서는데 내가 좋아하는 선수만을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더 철저하게 검증을 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명확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또 “선수선발이 밖으로 비치는 부분에서는 실수가 있었겠지만 잘못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알제리전에 대한 의구심도 남아 있다. 이번 월드컵을 치르면서 홍 감독은 항상 러시아전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을 뿐 알제리와 벨기에에 대한 말을 아껴왔다. 그 때문인지 대표팀은 알제리에 2-4로 무기력하게 패하면서 16강이 좌절됐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러시아전이 끝나고 이틀간 휴식을 취한 채 알제리 분석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홍 감독은 “러시아전이 끝나고 훈련일정은 선수들의 피로도를 감안한 것이었다”며 “코칭스태프는 알제리의 비디오를 수십번 봤다. 우리 경기를 분석하고 알제리에 대해 선수들에게 보여줬다. 횟수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대응이 실패했고 상대 전략에 대처하지 못했다”고 소문을 일축했다.

홍 방패에 숨은 협회 때늦은 사과

▲ <뉴시스>
이처럼 홍 감독이 자진사퇴를 결정해 브라질 월드컵 부진을 일단락짓는 듯 했지만 축구협회의 책임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동안 축구협회 고위층들은 홍 감독을 방패막이 삼아 비난의 화살을 피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들은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홍 감독에게 기회를 더 주겠다”는 이유를 댔지만 일부에서는 “홍 감독이 떠나면 모든 비난이 협회로 쏠릴 것에 대한 우려가 홍 감독을 유임시킨 이유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내놓고 있다.

더욱이 의혹의 실체가 홍 감독 사퇴 이후 구체화 되면서 축구협회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홍 감독을 끌고 가겠다던 허 부회장은 홍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사퇴의사를 밝혔다.

허 부회장은 “홍명보 감독이 고생 많았다. 나도 겪었지만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라며 “선수단 단장으로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 홍 감독과 함께 동반 사퇴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또 그는 “월드컵 부진의 책임은 나와 홍 감독에게 돌리고 협회가 노력하는 만큼 기대했으면 좋겠다. 기대에 못미쳐서 죄송하고 한국 축구가 잘 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뒤이어 정 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는 “브라질 월드컵 성적 부진에 이은 일련의 사태로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다. 월드컵대표팀의 성적 부진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월드컵에서의 부진을 거울삼아 한국 축구는 더욱 큰 도약을 위한 준비를 하겠다. 많은 축구팬들의 질타를 겸허하게 수용하겠다. 도약을 위해 뼈를 깎으며 노력하겠다”고 말한 후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정 회장은 이미 16강 탈락이 확정된 때를 비롯해 축구대표팀 귀국 기자회견 등 수차례 사과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지만 끝내 외면한 바 있다. 결국 홍 감독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고 하니 그제야 국민들에게 사과를 하는 모양새가 돼 비난을 피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에 대해 한 축구 원로는 “월드컵 성적 부진에 대해 책임질 생각은 하지 않고 비난 여론만 피하려고 하는 협회의 행정이 안타깝다”고 꼬집었다. 또 “이날 정 회장이 한 대국민 사과를 협회가 일찌감치 실행하고 어떤 식으로든 책임지겠다는 모습을 보였으면 홍 감독이 사퇴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협회 기술위 개편 및 뼈 깎는 노력

▲ <뉴시스>
더욱이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몰락은 그간 얽히고설킨 협회 행정의 난맥상과 주먹구구식 뒷짐 행정이 초래한 결과로 풀이된다.

전임 집행부인 조중연 회장 때 조광래 감독이 경질된 이후 협회는 신임 감독 선임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에 최강희 감독을 시한부 사령탑에 앉혀 고비를 넘겼지만 그가 그만둔 뒤 협회는 또 다시 위기에 봉착했다.
이에 홍 감독이 위기 상황에서 사령탑에 올랐고 협회의 방패막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협회는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밀실행정과 근시안적인 행정을 반복해왔다. 또 지난해 초 조 회장에서 정 회장 체제로 바뀌면서 대대적인 ‘인적 쇄신’이 있었다. ‘조 회장 냄새를 완전히 지우려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전임 집행부 간부들이 대거 교체됐다. 일부 인사의 경우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왔다.

특히 정 회장은 취임 후 첫 작품으로 홍 감독을 선임했는 데 홍 감독이 브라질에서 실패한 후 사퇴하며 최대 위기를 맞았다.

이 때문에 허 부회장, 홍 감독의 사퇴, 정 회장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태풍의 눈이 사그라들지 않으면서 축구협회의 갈 길도 험난해 졌다. 여기에 여론은 축구협회의 안일한 태도에 날을 세우며 홍 감독을 사퇴가 아닌 경질했어야 한다는 비판도 들끓고 있다.

축구협회는 홍 감독의 사퇴로 당장 A대표팀 사령탑을 잃으면서 사면초가에 몰렸다. 여기에 개혁의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인적쇄신이 불가피해 보인다.

먼저 축구협회는 월드컵 부진의 후속 조치로 기술위원회를 수술할 것으로 보인다. 황보관 기술위원장과 기술위원회가 개편 대상에 올랐다. 기술위의 권한과 책임도 손질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 비상근인 기술위원을 상근직으로 돌리는 방안과 외국인 기술위원장 영입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집행부의 재편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은 일찌감치 차범근 SBS 해설위원을 부회장으로 영입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차 위원이 마다함으로써 성사되지 않았다. 그러나 차 위원이 브라질 월드컵을 끝으로 해설위원에서 물러나기로 해 재영입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독이 든 성배’ K리그 감독들 고사

또 홍 감독을 대신할 후임 사령탑을 물색하는 작업에도 착수했다. 하지만 홍 감독마저 이렇게 물러나면서 축구계에는 국가대표감독직을 두고 ‘독이 든 성배’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어 선뜻 나서겠다는 사람을 찾기 힘든 상황이다.

이에 축구협회는 일단 외국인 감독을 대상으로 물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협회 측은 브라질 월드컵에서 ‘엔트의리’ 논란이 불거진 만큼 학연·지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외국인 감독이 적합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통상 월드컵이 끝난 뒤 유럽 프로리그가 개막해 주요 외국인 감독들이 이미 프로구단에서 시즌을 준비 중이어서 타이밍을 놓친 상태다. 일본이 조별리그 탈락 직후 재빠르게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을 선임한 것과 대조적이다.

또 협회 내부에선 한국인 감독을 계속 선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어 축구협회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한국인 감독 중에는 황선홍 포항 스틸러스 감독이 차기 대표팀 사령탑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황 감독을 포함해 국내 주요 K리그 전·현직 감독들이 ‘부담감’을 내세워 난색으로 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위기에 몰린 한국 축구는 축구협회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가 됐다. 이에 정 회장이 대국민사과에서 밝힌 것처럼 이번 월드컵 부진을 거울삼아 한국 축구의 체질을 바꾸는 노력이 요구된다. 특히 대표팀 운영 체계에 대한 쇄신책과 장기적인 비전 마련이 절실할 때다. 당장 6개월 앞으로 다가온 아시안 컵을 두고도 신임 사령탑이 일정 성과를 내야 하는 부담감으로 사령탑 찾기조차 힘들어진 상황은 묵과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축구협회는 새 사령탑에게 충분한 지원과 시간을 보장하고 한국 축구발전을 위한 김호 전 수원 감독이나 조광래 전 국가대표팀 감독 등 재야에 묻혀 있는 ‘한국 축구 최고의 기술자’들과 다시 손을 잡는 지혜를 발휘하기를 기대해 본다.
todida@ilyoseoul.co.kr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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