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적인 보험사기 행각
경찰에 따르면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가족 보험사기’라는 아이디어는 전·현직 보험설계사로 일하고 있는 임씨에게서 얻었다. 당시 IMF임에도 불구하고 임씨 가족은 생활고에 그다지 시달리지 않았다. 먹고 살만했지만 돈에 대한 욕심은 늘 한결같았다. 이에 임씨는 ‘약은’ 생각을 하게 된다.‘남들은 보험사기로 배부르게 잘 사는데 우리라고 못할 거 있나…’ 게다가 단순사고는 보험금 지급 절차가 간단하고 별다른 구비서류가 없어도 가능하다는 점에 착안해 임씨는 자신의 ‘직업’을 살려 보험사기를 계획하게 된 것이다.
임씨는 남편과 아들, 딸, 손자, 손녀 등 9명을 총 동원해 사기 행각을 벌였다. 임씨 가족은 차량통행이 드문 전주시의 한적한 도로에서 승합차를 타고 가던 중 사고를 결심한다. 전봇대를 들이받거나 논두렁에 빠져 자칫하면 부상을 입을 수도 있는 상황. 그러나 이미 돈에 눈먼 이들에게 자신뿐만 아니라 일가족의 안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이러한 ‘간사한’ 방법으로 그들은 26차례에 걸쳐 고의로 사고를 냈다. 임씨 가족은 사고 직후 병원에 입원해 4억여 원의 보험금을 챙겼다. 병원에서 퇴원을 권유하면 벽에 머리를 부딪치는 등 자해를 했다. 병원 측은 이들의 엽기적인 행각에 난색을 표했지만 환자의 입원의지를 꺾는 것은 무리였다. 게다가 자해로 인한 부상에는 ‘속수무책’ 놔둘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임씨는 최장 100일까지 입원했다. 입원 후 임씨 가족은 병실을 ‘안방’처럼 사용했다. 5,6세짜리 손자와 손녀는 겨울철에 찬물로 목욕시켜 억지로 감기에 걸리게 한 뒤 병원에 입원시켜 보험금을 챙기기도 했다. 임씨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미리 어린이 상해보험에 가입시켰다.보험료 챙기기에 혈안이 된 임씨에게 이정도 ‘치밀함’은 기본이었다. 이들은 입단속에도 철저히 신경 썼다. 이에 일종의 행동 요령과 경찰 조사 대응 요령을 만들었다. 그 내용은 ‘고의로 사고 낸 경우, 동물을 피하려다 일어난 사고라고 우길 것’, ‘최소한 3주 이상의 진단서를 받을 것’ 등이다. 3주 이상의 진단서는 잔사고 시 일반적으로 끊어주는 2주 진단(최하 60만원, 보통 70~80만원)보다 갑절 이상 많은 보험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 임씨의 고도의 전략인 셈이었다.
7년만에 사기행각 들통
그러나 이들의 사기극은 오래가지 못했다. ‘전주, 군산, 부안 등 잔사고 다발지역’이라는 보험사측 통계와 ‘전주 모 병원에 장기입원 환자가 너무 많은 것 같다. 보험금을 노린 환자인지 확인바란다’는 병원의 제보에 경찰이 압박 수사한 결과 덜미를 잡힌 것이다. 이렇게 임씨 가족의 엽기적인 보험사기 행각은 7년 만에 막을 내렸다. ‘가족 보험사기단’ 문제는 비단 어제오늘일은 아니다. 그러나 손해보험협회가 ‘2005년은 보험사기 방지의 해’란 슬로건을 내세워 보험금 누수 방지를 위해 노력하는 만큼 일말의 성과는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이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보험사기 적발 건수는 1만6,513건, 사기 금액은 1,290억원으로 전년보다 각각 77.3%, 112.9%가 증가했다. 적발된 보험사기 규모는 1만676건에 824억원. 이러한 사기 금액은 고스란히 ‘진짜’ 피해자에게 피해(높은 보험료 부담)로 돌아온다 하니 실로 분개할 만하다. 보험회사 및 감독당국, 경찰 측은 ‘보험사기’ 만류에 지속적으로 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뛰는 놈 위엔 반드시 나는 놈이 있는 법. 조직화, 지능화 돼가고 있는 추세에 맞춰 보험사기의 규모 및 빈도는 오히려 더 빠른 속도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 기상천외한 ‘보험사기’ 백태세계 6위 보험대국 위상이 흔들린다
보험 가입률 세계 6위의 보험대국. 1인당 연평균 382만원을 보험에 지출하고 있는 게 우리나라 보험 현실이다. 이에 발맞춰 ‘보험사기’도 전문화·지능화 돼가고 있는 추세다. 2003년 10월 보험설계사 안모(47)씨는 운전 도중 선글라스 왼쪽 다리에 눈을 찔렸다며 1,500만원의 보험금을 받았다. 이후 실명판정이 나오자 16억 5,000만원의 장해보험금을 신청했다. 그러나 조사결과 안씨가 자신의 눈에 통증완화제를 넣어 마취시킨 뒤 수지침과 손톱손질용 가위로 자해, 스스로 실명을 유도한 사실이 드러났다.
전직 전문지 기자 이모(43)씨 등 19명은 2001년 1월~2004년 3월 생활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골라 특정 질병으로 입원 시 고액 보험금이 지급된다며 보험에 가입시켰다. 이씨는 그들에게 검진 전 설탕물을 먹여 ‘당뇨병’ 진단을 유도했다. 이같은 방식으로 장기입원을 반복, 총 164회에 걸쳐 11개 보험사로부터 타낸 돈만 8억5,000만원에 달한다. 조직폭력배 송모(25)씨 등은 2003년 10월 ‘면허증 대출’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차려 조직을 꾸린 뒤 다시 인터넷을 통해 “병원에 가짜로 입원해 주면 1인당 10만원씩 준다”고 사기 가담자를 모았다.
송씨는 이후 총 120건(179명)의 교통사고를 조작, 25억원의 보험금을 수령했다. 2005년 2월에는 어느 섬마을 주민의 80%가 보험사기에 조직적으로 가담한 사실이 적발되기도 했다. 보험 가입자, 병원장 등이 결탁해 거짓으로 입원증명과 진료기록을 만든 뒤 보험가입자는 보험사에서 보험금을 받고, 병원은 건강보험관리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금을 챙기는 식이었다. 149명의 사기단이 뜯어낸 보험금은 70억원에 달했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보험범죄를 당하거나 목격한 사람은 해당 보험사 및 손해보험협회 보험범죄방지센터(080-990-1919)에 신고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은혜 kkeunna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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