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모 교수의 ‘문화재 산책’] “가치 인정 못 받는 우리 문화재 중·일에 비해 턱없이 낮은 가격에 팔려”
[정양모 교수의 ‘문화재 산책’] “가치 인정 못 받는 우리 문화재 중·일에 비해 턱없이 낮은 가격에 팔려”
  • 조아라 기자
  • 입력 2014-07-07 16:54
  • 승인 2014.07.07 16:54
  • 호수 1053
  • 6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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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턱없이 부족한 고미술 자료

귀중한 문화재가 매매대상으로 나오면 여러 원매자끼리 경쟁이 붙었다. 이런 유물은 처음 보는 것이고 조형적으로 귀하고 아름다워 다시없다고 칭송이 이어져 평가가 올라갔다. 자연스레 값이 올라가는 것이 통례였던 시기도 있었다. 지금같이 수장가의 수효도 줄었지만 애초에 원매자끼리 경쟁이 없으니 아무리 귀중하고 다시없는 문화재라 하더라도 소중한 가치를 전혀 인정받지 못했다. 알아도 인정하지 않아 시간이 흐를수록 값이 하락했다.

그러나 문화재는 민족의 미의식과 정신이 함축된 나라의 보배다. 또 미래이자 우리 미술문화발전의 토대다. 우리의 자존심을 높이 세울 수 있는 문화재가 어느 시대이건 제대로 된 평가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돼야 한다. 이러한 우리문화재 평가절하 현상은 중국과 일본이 자국의 문화재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와 비교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중국 문화재는 그 수량이 우리보다 대략 천배는 많다. 그 수많은 문화재의 평가가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 까지만 해도 일반적으로는 우리 문화재보다 값이 덜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조선후기 청화백자접시 한 점이 크리스티 옥션에서 300만 불에 매매가 됐다. 조선조 17세기의 백자철화운룡문병형준이 역시 크리스티 경매에서 875만 불에 팔린 예가 있다.

반면 1990년 초 크리스티 경매에서 중국 선덕년간의 청화백자 대형접시는 90만 불에 거래됐다. 지금은 어떠한가. 2000년대 초를 지나면서 중국 문화재 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2000년 중반부터는 중국의 소장가가 크게 늘어 원, 명대는 물론 청대의 유물도 우리 문화재보다 열배 이상 올랐다. 최소 수십 만 불이고 웬만한 유물은 수천 만 불에 이른다.

크리스티 경매나 소더비 경매는 물론이고 세계 각지의 수많은 경매 시장과 일반 고미술 시장에서까지 중국 문화재는 성황을 이루고 있다. 일본 문화재도 그 수량이 우리 문화재보다 약 백배는 많다. 일본 문화재 역시 세계 경매시장에서 인기가 있고 비싼 값에 팔리고 있다. 일본은 대자본을 바탕으로 불황이 없이 일본 문화재를 우리보다는 훨씬 높은 값에 팔고 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일제는 도보와 도록 몇 권을 발간했다. 조선고적도보 15권, 조선총독부박물관 도록, 이왕가미술관 도록, 세키노의 조선미술사 등이다. 하지만 이 책은 크고 무겁다. 사진도 흑백으로 작고 일본어로 기술돼 널리 퍼지지 않았다. 연구 학자나 개인적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일반인이 우리 문화의 특징과 매력, 아름다움, 독창성을 보고 이해할 기회가 전혀 없다. 실상이 이러니 일반 국민들은 우리 미술 문화재를 볼 기회도 없었다. 책을 통해서라도 보고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기회조차 박탈하고 있던 시대가 일제 강점기였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일제의 여파가 남아 아직도 우리 고미술 관련 자료는 많이 부족하다. 우리 문화재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선전 책자조차 없다. 이에 비해 중국과 일본은 문화재에 관한 연구와 선전책자, 도록을 아주 오래 전부터 수백 수천 권이나 발행했다. 세계 각국어로 번역돼 전 세계에 퍼져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선 우리 시장은 왜 이 지경에 됐는지 서로 자성하면서 그 이유를 한번 따져 봐야 한다. 원인을 찾고 하루 빨리 이 어두운 상황을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 원인을 하나하나 나름대로 짚어 보려고 한다.

첫 번째 원인은 일제의 우리 문화 말살 정책이다. 일제는 우리문화 말살 정책으로 교육현장에서 우리의 역사, 언어 등 우리 문화를 가르치지 못하게 했다. 연구도, 도서 발간도 방해했다. 그러기 위해 신문, 잡지 등 모든 출판물에 대한 검열과 검사를 날로 강화했다. 삭제, 폐간, 정간, 체포, 감금을 서슴지 않았다.

이토 히로부미 등 침략 주도세력은 우리 문화유산을 수탈해 일본으로 가져가 친지들에게 선물로 주고 황실에 상납했다. 전국에서 일제와 하수인이 도굴을 자행했다. 일제의 관헌이 전국의 유적이 함부로 파헤치고 거기서 출토된 유물은 일본 상인이나 일본 관헌이 가져갔다. 지금도 일본에는 아직 우리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문화재가 수십만 점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된다.

<정리=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

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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