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습기로 보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딜레마
제습기로 보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딜레마
  • 김나영 기자
  • 입력 2014-07-07 14:15
  • 승인 2014.07.07 14:15
  • 호수 1053
  • 2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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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닉스 vs 삼성·LG …골리앗이 다윗에 건 싸움

“돈만 된다면…” 신시장 키우니 대기업 달려들어 잠식
해마다 두 배씩 팽창하는 시장…가격 인상도 ‘더블’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소형가전 시장에서 제습기의 위상이 드높아지고 있다. 현재 제습기 판매 1위를 달리는 회사는 이름난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 ‘위닉스’다. 위닉스가 성장시킨 우리나라 제습기 시장은 올해 1조 원대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시장이 본격적으로 커지던 지난해부터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대기업이 여기에 뛰어들며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이 와중에 20만~30만 원대의 일반 제습기들은 부가기능을 더하며 가격이 50만 원대로 훌쩍 뛰면서 소비자들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상황이다.

소비자들은 냉장고나 세탁기와 같은 대형가전을 살 때 으레 삼성전자나 LG전자 등 대기업 로고를 단 제품을 먼저 찾는다. 하지만 밥솥이나 드라이기와 같은 소형가전을 고를 때는 그 분야에서 가장 잘 만드는 중소기업 제품을 사는 경우가 많다.

제습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름조차 다소 생소하던 이 소형가전이 집집마다 들어앉고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아열대성 기후로 접어들었다며 한 집 두 집 제습기를 사들여서다.

그간 소형가전 시장에서 중소기업이 약진하는 사례는 종종 있었다. 저속착즙으로 유명한 휴롬은 아예 원액기라는 신시장을 형성하기도 했다. 위닉스도 비슷한 형태로 제습기의 신시장을 개척했다. 그 결과 지난해 위닉스는 시장점유율 50%를 넘기며 승자로 섰다.

지난해 여름 하이마트에서 판매된 제습기의 60%는 위닉스 제품이었다. 또 같은 시점이마트에서는 특정 위닉스 제품이 전체 제습기 매출의 26%가 넘어갔다. ‘위닉스뽀송’이라는 제품명은 어감이 주는 산뜻함과 맞물려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40년 축적한 열교환 시스템 기술

본래 위닉스는 대기업에 전자부품을 납품하는 40년된 회사다. 주로 냉장고, 에어컨 등 열교환 시스템 원리를 사용하는 제품에 들어가는 부품을 생산해왔다. 지금은 경쟁자가 된 삼성전자와 LG전자 모두 위닉스에서 부품을 납품받던 원청업체다.

그랬던 위닉스가 1997년 처음으로 제습기를 만들어 시장에 내놨다. 당시는 더욱 생소했던 제품임에도 2008년부터 해마다 연매출이 두 배씩 뛰었다. 시장에 폭발적인 영향력은 발휘한 것은 지난해 홈쇼핑을 통해서다. 시간당 23억 원이라는 기록적인 매출을 올린 위닉스는 제습기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제습기 보급률은 2012년 7%에서 지난해 12%로 두 배 가까이 성장했다. 올해 보급률 추정치는 23%로 1조 원대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2009년 4만대였던 제습기 시장은 2010년 8만대, 2011년 25만대, 2012년 40만대, 2013년 130만대로 반경을 넓혔다.

간혹 다소 높은 보급률이 아니냐는 의문에 이웃나라 일본은 현재 90%의 보급률을 보인다는 대답이 날아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기업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제습기 시장에 뛰어들었다. 커다란 골리앗들이 자그마한 다윗에 싸움을 건 셈이다.

이와 관련해 윤혁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제습기 시장에 대기업들이 뛰어들면서 위닉스의 점유율은 다소 줄어들겠지만 시장 자체가 급성장하고 있어 관련 기업들의 이익은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제습기 시장이 과열되면서 중소기업 적합업종 보호와 가격 인상 문제 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인들을 중심으로 제습기를 적합업종으로 지정해 달라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부가기술 첨가…기본제품 사라져

지난달 열린 2014 중소기업 리더스포럼에서도 이와 같은 논란을 다뤘다. 정명화 한국전자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제습기는 중소기업의 틈새시장이었는데 최근 대기업들이 끼워팔기 등을 통해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며 “중소기업이 전략품목으로 개발했더라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라고 짚었다. 중소기업이 신시장을 키우자마자 대기업이 달려들어 시장을 잠식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제습기를 꼽은 것이다.

이어 정 이사장은 “중소기업이 투자해서 만들어놓은 시장에 대기업이 뒤늦게 오는 것은 돈만 되면 뭐든지 다하겠다는 것”이라며 “제습기를 적합업종으로 지정함으로써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의 하청업체로 전락되는 것을 막아달라”고 덧붙였다.

또한 팽창하는 시장에서 경쟁기업은 많아지는데 가격도 함께 오르는 이상 현상도 지적되고 있다. 올해 들어 나온 제습기 신제품의 가격은 50만 원대로 지난해 20만~30만 원에 비해 두 배가량 올랐다.

제품을 뜯어보면 제습용량의 확장, 공기청정 등 부가기술 첨가, 인버터 등 신기술 채택으로 분명 달라진 면모는 있다. 그러나 본연의 기능에만 충실한 제습기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비싼 신제품들이 메우면서 소비자들은 오히려 가격 선택의 폭이 좁아졌다는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저마다 저소음·절전형을 내세우며 신제품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시원한 것’, ‘건조한 것’과 같이 매우 단순하다”면서 “경쟁기업이 많아질수록 가격이 내려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부가기능을 넣어 두 배씩 뛰는 현상은 이례적인 것”이라고 꼬집었다.

nykim@ilyoseoul.co.kr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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