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기업 계승…3세 경영승계 염두? 상장 의도?
“후계 구도 아냐, 통합일 뿐 그 이상 의미 없다”

[일요서울 | 이범희 기자] 삼성그룹이 ‘삼성에버랜드’ 사명을 ‘제일모직주식회사’로 변경했다. 그동안 삼성에버랜드는 테마파크로 명성을 떨치며 많은 이용객을 확보한 곳이고 ‘제일모직’은 의류·패션 업계에 주목을 받던 인기브랜드여서 두 업체의 사명 변경에 대한 의구심이 발생했었다. 굳이 변경 없이도 브랜드 차제이미지로의 성장이 가능했던 곳들이기에 의구심이 더 컸다.
하지만 삼성은 지난달 31일 삼성SDI와 제일모직의 합병을 결정한 데 이어 4일에는 삼성에버랜드의 사명 변경을 공식화 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삼성은 이 같은 일반인들의 의구심에 대해 “이번 합병은 계열사 간 중복·유사 사업을 통합하고 미래 성장동력이 될 사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것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강조한다.
그동안 재계 일각에서 “이 같은 사업재편이 오너 3세들의 경영권 승계와 이를 위한 사업영역 조정의 성격을 동시에 띠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번 합병은 삼성SDI가 제일모직을 흡수하는 방식이어서, 삼성SDI가 존속회사가 되는 반면, 삼성그룹의 모태인 제일모직은 소멸회사가 됨에 따라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이 그 명맥을 잇는다.
영문명은 ‘Cheil Industries Inc.’고, 국외법인은 ‘삼성’이라는 브랜드 인지도를 감안, 지역명 앞에 ‘삼성제일(Sam-sung Cheil)’을 붙이는 형태로 사용할 계획이다.
제일모직은 1954년 고 이병철 선대 회장이 삼성물산·제일제당에 이어 세운 삼성그룹의 실질적인 모태 기업이다.
이후 1976년 현재의 제일모직으로 상호를 변경하고, 1970년대 패션사업 진출, 1990년대 케미칼 사업, 2000년대 전자재료사업에 진출하면서 지금의 삼성그룹의 초석이 된 회사다.
삼성 관계자는 사명 변경에 대해 “모태 기업이나 다름없는 제일모직을 통해 삼성의 철학과 정통성을 이어간다는 의미”라며 “실제 그룹 내 대다수 임원은 제일모직이란 상호 유지에 큰 애착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최대 수혜자와 계열사는 어디
이번 합병으로 삼성SDI의 최대주주인 삼성전자도 소재와 부품 완성품 등 수직계열화를 완성케 됐는데 이 과정서 최대수혜자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주목받는다.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최고점에 있는 삼성에버랜드의 최대주주로 전자와 금융 등 삼성그룹 핵심회사들을 대부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제일모직이 삼성엔지니어링, 삼성SDI가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여서 이 부회장은 삼성SDI를 통해 건설까지 지배하게 된다는 설명도 된다.
삼성에버랜드로 넘어간 제일모직의 패션사업 부문도 화려한 비상을 꿈꾸는 만큼 차녀 이서현 사장의 행보도 함께 주목된다.
삼성에버랜드에서 패션부문은 지난해 편입되자마자 최대 사업 조직으로 부상했다. 올해 1분기 패션부문 매출은 4695억 원으로 삼성에버랜드 전체 매출(1조1622억 원)의 40%를 차지한다. 상장 발표 자리에서 삼성에버랜드가 패션 사업 얘기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실제로 제일모직 패션사업을 품은 삼성에버랜드는 곧장 에잇세컨즈, 빈폴아웃도어, 로가디스 등 주력 브랜드를 키우는 데 역량을 집중했다. 테마공원 에버랜드에 에잇세컨즈와 빈폴아웃도어 매장을 입점시킨 한편 에버랜드 매장 전용 의류를 출시한 것이 그 예로, 놀이와 패션의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도 삼성 3세 중 이 회장의 외아들인 이 부회장이 전자·금융 계열사를 맡고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삼성에버랜드 사장이 호텔·건설·중화학을, 차녀인 이서현 제일기획·삼성에버랜드 사장이 패션·미디어 부문을 각각 맡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이번 합병은 제일모직의 불안정한 지배구조 문제를 해소한다는 의미도 있다.
현재 제일모직의 최대주주는 지분 11.6%를 보유한 국민연금이며 2대주주는 한국투자신탁운용(7.3%)이다. 삼성 계열사가 보유한 지분은 삼성카드 7.3%, 삼성자산운용 4% 등에 불과했다.
하지만 삼성SDI와 제일모직의 합병이 성사된 만큼 합병회사의 최대주주는 지분 13.5%를 보유한 삼성전자가 되며 국민연금은 10.5%의 지분으로 2대주주가 된다. 때문에 후계구도를 확고히 했다는 평이 나돈다.
사업 재편 어떻게 시너지 효과 극대화
그러나 삼성 측은 “후계구도설”을 일축하면서 사업 재편임을 강조한다.
한편, 삼성SDI와 제일모직은 지난달 31일 이사회를 열고 글로벌 초일류 소재ㆍ에너지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합병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삼성SDI가 제일모직을 흡수·합병하는 방식으로 사명은 삼성SDI를 그대로 사용하게 된다.
이로써 삼성SDI 통합법인은 에너지솔루션부문(대표이사 박상진)과 소재부문(대표이사 조남성 )의 양 부문으로 구성되며, 각자 대표 체제를 유지한다.
통합법인의 외형은 2013년 기준 매출 9조 4276억 원, 자산 15조5434억 원 규모로 커진다.
1970년 설립돼 흑백 브라운관 사업으로 출범한 SDI는 지난 2002년에는 신사업으로 2차 전지를 추가한 뒤 지난 2010년부터 4년 연속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skycros@ilyoseoul.co.kr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