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플러스의 본사는 영국 테스코그룹이다. 하지만 한국의 홈플러스는 다른 해외법인과 달리 상호 앞에 ‘테스코’를 붙이지 않은 유일한 기업이다. 현재 국내 홈플러스 매장에서 테스코라는 브랜드를 사용하는 곳은 없다. 법인명에도 테스코는 제외 돼 있다. 본사는 영국 그룹일지라도 국내 홈플러스만의 색깔과 경영 기초의 터를 닦은 셈이다. 이를 통해 홈플러스는 본사에 굽히지 않는 위상을 누려왔다. 테스코 계열사 임직원들이 한국의 홈플러스의 경영 방식을 배우기 위해 직접 한국을 방문한 일화는 유명하다.
유통업계 신화창조
홈플러스는 1999년 출범 후 창립 10년 만에 10조 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10-10 신화’를 만들어냈다. 2008년에는 홈에버 인수를 통해 삼성테스코㈜, 홈플러스 테스코㈜(옛 홈에버), 베이커리 회사 아띠제 블랑제리㈜ 등 3사를 거느린 홈플러스그룹으로 출범했다.
홈플러스는 직원들이 가장 근무하고 싶어하는 ‘아시아 최고 직장’으로도 뽑힌 바 있으며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성공 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이승한 전 회장은 1970년 1월, 대학을 졸업하고 삼성그룹에 공채 11기로 입사했다. 입사 후 기획팀장과 마케팅 팀장을 겸하는 과장으로 승진하며 승승장구했다. 이 전 회장은 테스코와 합작회사 협상과정의 선두에 나섰고, 테스코 측은 이 전 회장을 합작회사의 CEO로 내세울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당시 테스코 측은 “이 전 회장이 합작회사 CEO를 맡아 경영하는 조건에서 계약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10개월간 걸쳐 이뤄진 협상의 결과였다. 이 전 회장은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증거를 내보이며 집요하게 설득했고, 이에 테스코는 합작회사를 이 전 회장이 맡았을 때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당시 한국 유통 산업은 세계 시장에서 제조업에 비해 수준이 15~20년 정도 뒤떨어져 있었다. 이 전 회장은 이번 기회가 한국 유통 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Global? GloCal! 신조어에 주목
그렇게 이 전 회장은 합작회사 삼성테스코가 탄생하던 날인 1995년 5월, CEO로 취입했다. 창립초기 홈플러스는 영국에서 열린 기업투자설명회(IR, Investment Relations)에서 프레젠테이션을 가졌다. 당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던 이 전 회장은 자신의 자료에 표기된 ‘Global Standard’가 잘못 표기됐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Global Standard’가 아니라 ‘GloCal Standard’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객석에서는 모두 어리둥절해 했다.
이 전 회장은 “GloCal Standard는 Gloval Standard와 Local Practice를 조합해서 만든 신조어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눈을 반짝이며 귀를 귀울였다. 그는 “세계적인 유통 기업 테스코의 경영 원칙과 유통 노하우, 운영 시스템 등 Gloval Standard는 그대로 적용하되 상품과 서비스, 마케팅 재고, 점포 구성은 철저히 한국의 시장과 문화에 맞게 적용하는 현지화(Local Practice) 전략을 취하자는 것이죠”라고 답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 시장의 잠재력과 현지화 전략인 ‘글로컬 스탠더드’와 동서양의 가치를 아우르는 ‘신바레이션’ 기업문화는 설명회를 압도한 결정타가 됐다. 지나고 보면 모든 일이 다 당연한 듯 보이지만 ‘글로컬 스탠더드’를 영국 테스코가 처음부터 잘 이해해줬던 것은 아니다. 특히 할인점에서 가장 중요한 1층 공간에 판매 공간을 넣지 않고, 문화센터와 생활 편의시설을 들여놓은 것은 우려를 샀다.
하지만 홈플러스는 유럽 사람들의 취향이 한국의 소비자들과 같을 수 없음을 강조하며 끝까지 테스코 측을 설득했다.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긴 했지만 테스코의 회장, 부회장의 전폭적 지지를 받으면서 홈플러스의 ‘글로컬 스탠더드’도 시작됐다.
세계 최초 개념의 글로컬 스탠더드는 합작 1호점인 안산점을 필두로 수원점, 김해점 등 새로 문을 여는 곳마다 신기록을 세우는 에너지의 원천이 됐다. 홈플러스만의 새로운 포맷인 글로컬 스탠더드는 전 세계 매장에서 통용될 수 있는 경영으로 인정받게 됐다.
2005년에는 더욱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영국 맨체스터 부근에 ‘테스코 홈플러스’라는 매장이 새로 문을 열었다. 홈플러스 브랜드가 테스코 그룹의 본토인 영국으로 역수출된 것이다. 차세대 한국형 할인점에 ‘홈플러스’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위해 고분군투 했던 시절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놀라운 진전이 아닐 수 없다.
사실 회사 설립 초기에 테스코 측은 한국에서 시작하는 회사의 이름을 ‘테스코-삼성’으로 하길 원했다. 하지만 홈플러스 측은 ‘삼성테스코’로 할 것을 주장하며 ‘개구리 요리론’을 이유로 들었다. 프랑스에서는 개구리를 요리할 때 처음부터 너무 뜨거운 물에 넣지 않는다. 처음부터 너무 뜨거운 물에 넣으면 개구리가 밖으로 뛰쳐나오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치게 되고 근육이 질겨져서 맛이 없어진다. 그러나 미지근한 물에 넣고 서서히 데워가면 개구리는 노곤하게 졸 듯 서서히 익어 맛있게 요리된다는 얘기다.
홈플러스는 브랜드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처음부터 낯선 이름을 사용하는 대신, ‘홈플러스’를 알리기 위한 절차를 밟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홈플러스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테스코가 아닌 자체 브랜드를 사용하게 됐다. 성공의 결과물들이 계속되자 더욱 놀라운 일이 나타났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박시은 기자>
<출처=창조바이러스 H2C│
지은이 이승한│랜덤하우스>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