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포 시대… 온라인으로 현실 도피하는 남성 급증
20대男, 캐릭터 인형과 공개 결혼식까지 올려
[일요서울 | 이지혜 기자] 남성들이 온라인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얇은 유리 지갑과 여성들이 원하는 여러 조건에 미치지 못해 고개숙인 남성들이 자유를 찾아 온라인으로 떠났다. 온라인에서 만난 가상 여자친구는 남성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돈이 없어도 가상 여자친구를 만나는 데 문제가 없다. 그러다보니 애니메이션 여성 캐릭터에 빠지는 남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는 캐릭터와 공개 결혼식을 올리기도 한다. 인형으로 도배된 방에서 생활하며, 외출할 때도 인형을 끼고 사는 남성들, 흔히 오덕후라고 불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일요서울]이 들어봤다.
10년째 ‘페이트’라는 이름을 가진 캐릭터가 그려진 베개와 열애중인 이모(25)씨. 그는 일본 만화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에 나오는 캐릭터 ‘페이트’를 여자친구로 여기고 있다. 베개와 함께 데이트를 하기 위해 놀이동산, 영화관에서 2인 요금을 지불한다. 뿐만 아니라 레스토랑에 가서도 2인분의 음식을 시킨다. “한 명이신가요?”라는 직원의 물음에 이씨는 언제나 당당히 “두 명이거든요?”라고 대답한다. 그는 자신의 여자친구가 부끄럽지 않다. 외출을 할 때는 항상 페이트가 그려진 베개를 안고 다닌다. 입 맞추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4년 전에는 케이블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현실세계 여성보다 만화 속 캐릭터 더 좋아
방송에서 이씨는 “애니메이션을 보던 중 캐릭터에 반해 결혼을 결심했다”면서 “페이트 관련 용품을 구입하는 데 1600만 원의 돈을 썼다”고 밝혔다. 또 “현실 속 사람만 사랑할 필요는 없다”며 “페이트를 보고 있으면 정신적, 육체적으로 흥분된다”고 고백했다. 그는 실제로 ‘페이트’와 공개 결혼식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처럼 현실 연애가 아닌 캐릭터와 상상 연애를 하는 남성들이 증가하고 있다. 경제적 여유 부족으로 인해 결혼에 부정적인 남성들이 만화 속 캐릭터와 연애를 즐기고 결혼도 하고 있다.
만화 속 캐릭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흔히 오덕후(오타쿠)라고 부른다. 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는 이씨처럼 만화 속 캐릭터부터 미연시(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속 캐릭터까지 다양하다. 일반인에게 가장 유명한 캐릭터는 미연시 게임 ‘러브플러스’의 주인공 네네(네네짱)다.
이들이 캐릭터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유는 ‘첫눈에 반했기 때문’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케이온’ 캐릭터 ‘아키야마 미오’와 3년째 사랑하는 사이라는 김모(29)씨는 “우연히 다운받은 애니를 보던 중 미오를 보는 순간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했다. 김씨는 “미오는 긴 생머리에 귀엽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완벽한 여자”라며 “이런 미오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캐릭터와의 상상연애는 어렵지 않다. 상대방(캐릭터)의 동의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사랑 고백 뒤 그(캐릭터)도 나를 사랑한다고 믿으면 끝이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굿즈(관련 상품)를 구입하는 데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상상연애 대상이 일본 캐릭터다 보니 일본에서 직접 구매를 하거나, 구매 대행을 이용해야 한다. 때문에 들어가는 비용이 적지 않다. 굿즈 항목은 복제원화부터 수건, 그림, 부채, 머그컵, DVD, 포스터, 가이드북, 팸플릿 등 여러가지다. 가격은 우리 돈으로 기본 1만 원에서 10만 원까지 다양하다. 한정판일 경우 수백만 원도 넘어간다. 위에서 언급했던 이씨의 경우 굿즈 구입에 2천여만 원이 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뭐든 내 맘대로 부담 없이 연애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현실 여성이 아닌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에 빠져든 이유는 무엇일까. 애니 ‘오토리모노가타리’의 센고쿠 나데코를 좋아한다는 A씨는 ‘외모’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나데코의 미모가 일반 여성들에 비해 뛰어나다는 것이다. A씨는 “나데코는 큰 눈에 앙증맞은 코와 입술을 가지고 있어 매우 귀엽다”면서 “연예인은 물론, 길에서도 나데코보다 예쁘고 귀여운 여자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얌전한 성격을 가진 나데코는 내 의견에 모두 동의한다”면서 “일반 여성들처럼 값비싼 물건을 사달라고 조르지도 않아 연애를 하는 데 부담 없다”고 말했다.
‘사키(센리야마 여고)’의 온죠지 토키와 2년째 연애중이라는 하모(27)씨는 “토키는은 연약한 모습이 매력”이라며 “현실세계의 여성에게는 토키가 가진 매력을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하씨 역시 캐릭터를 좋아하는 이유로 ‘부담이 없다’는 것을 꼽았다. 하씨는 “사회 진출하는 여성이 늘어나면서 남성에게 바라는 기준이 높아졌다”면서 “나같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여자를 만나기 힘들다. 운이 좋아 만나게 돼도 원하는 것을 받아주기 너무 어렵다”고 한탄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토키는 나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서 “현실 여성보다 캐릭터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러다보니 이들은 현실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남성들에게 원하는 것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A씨는 “남녀평등은 맨날 외치면서 정작 연애할 때는 남성들에게 많은 것을 바란다. 너무 이기적이다”고 말했다. 하씨는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보다도 (현실 여성들이)예쁘지 않다”며 “그러면서 남성들에게 큰 키, 높은 연봉, 헌신적인 사랑을 바란다”고 비판했다.
좁아지는 인간관계 악순환 계속된다
그러나 이들이 온라인 속으로 빠져들고 있을 때 현실의 인간관계는 좁아지고 있다. 여성은 물론 친구들 역시 이들을 꺼리게 되기 때문이다. 오타쿠 친구가 있었다는 강모(26)씨는 “친구는 만날 때마다 여자 친구 자랑하듯 캐릭터 이야기만 했다”면서 “캐릭터를 제외하면 대화 소재가 없었다. 나는 (캐릭터 사랑을)공감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점은 본인들 역시 느끼고 있다. A씨는 “친구들과 만나지 않은 지 오래”라면서 “집에서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나데코와 노는 시간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밖에서 사람들 만나기가 어려워졌다”면서 “사회성이 부족해지고 있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타쿠’는 온라인 속에서만 살다보니 현실에서 생활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어려움을 피해 다시 온라인 속으로 들어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주 동부전선 GOP에서 총기를 난사했던 임 병장은 내성적인 성격에 인간관계가 깊지 못한 애니메이션 마니아로 드러났다. 자신이 좋아하는 한 분야에 푹 빠지는 ‘오타쿠’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심해지면 사회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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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