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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일요서울 | 박시은 기자] 아울렛 전성시대다. 콧대 높던 백화점도 아울렛 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다. 장기불황, 저성장에 따른 新 소비트렌드가 된 것이다. 그런데 아울렛 시장에서 소비자 권리 보호는 함께 성장하지 못한 모습이다. ‘싸게 판다’는 이유로 교환·환불 불가 정책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렛 시장 형성 초기부터 꾸준히 제기된 문제지만 소비자의 권리는 여전히 외면당하고 있다. 단순 할인판매 채널을 벗어나 복합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는 아울렛의 현 상태를 [일요서울]이 진단해봤다.
지난 1일 [일요서울]이 방문한 여주의 한 프리미엄 아울렛은 쇼핑을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 중에는 해외에서 단체로 관광을 온 여행객들도 다수였다. 이날 아울렛을 방문한 소비자 A씨는 아울렛의 단점을 털어놨다. A씨는 “같은 물건도 훨씬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교환, 환불이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어서 사기 전에 고민하는 시간이 길다”고 말했다. 그는 “여주까지 왔는데 아무것도 안 사고 돌아가기는 아깝고, ‘혹’ 하는 마음에 물건을 샀다가 집에 가서 다시 볼 때 마음에 안 들면 어떡하지란 고민이 크다”면서 “교환이나 환불 같은 기본적인 소비자 권리가 물건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막혀 있는 것은 좀 이상한 일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소비자 B씨는 “어머니 선물을 사려고 왔는데 그냥 빈손으로 돌아가게 됐다”고 털어놨다. B씨는 “고가의 명품을 프리미엄 아울렛에서는 시중 가격보다 합리적으로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는데, 교환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나니 당황스러웠다”며 “선물이라는 게 당사자 취향에 맞지 않는 물건을 고를 수도 있는 것인데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니 선물을 고를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아울렛 매장에서 교환, 환불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굳이 멀리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시내에 위치한 아울렛 매장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 소비자를 만났다. 소비자 C씨는 “1만5000원에 판매하는 손목시계를 결제하려고 하는데 ‘교환, 환불은 안됩니다’라는 말을 들었다”면서 “가격이 저렴했고, 어떻게든 사용하고 다닐 물건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교환, 환불이 안 된다는 말을 들으니 괜히 살지 말지를 한 번 더 고민하게 되더라”고 말했다.
싸게 판다는 이유로 “안돼” 영수증 도장 찍어 표시하기도
이처럼 대형 프리미엄 아울렛을 포함한 대부분의 아울렛 이 구입한 제품에 대한 교환·환불 정책을 고수하고 있어 소비자들의 원성이 높다. 일부 브랜드는 영수증에 교환·환불 불가 도장을 찍기도 한다. 또 하자가 발생한 제품의 A/S를 소비자가 책임져야 하는 경우도 있다. 보증기간이 지나간 제품에 대해서는 소비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제재 방침 없어 문제
아울렛 시장은 의류업체들이 재고를 처분하기 위해 공장 주변에 만든 창고형 매장에서 시작됐다. 국내에서는 1994년 ‘2001 아울렛’을 시작으로 마리오아울렛과 W몰 등이 들어섰고 여주, 파주 등에 프리미엄 아울렛이 들어서는 등 상권이 확장됐다.
아울렛에서는 백화점에서 팔던 의류와 잡화를 최소 30%, 최대 90%까지 싸게 판매한다. 30만 원은 줘야했던 셔츠도 아울렛에서는 15만 원 이내에 살 수 있다. 130만 원을 훌쩍 넘는 가방도 아울렛에서는 45만 원대에 구입할 수 있다. 출시된 지 오래된 상품일수록 할인 폭은 더 커진다.
때문에 세부 디자인 하자 등 판매자와 시비거리가 생길 수 있는 가능성도 백화점보다 더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불황 등의 여파로 아울렛을 찾는 수요가 늘어나면서 백화점 업계도 아울렛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콧대 높던 백화점이 성장 정체 돌파구를 아울렛 시장으로 삼은 것이다.
이를 시작으로 아울렛은 이제 단순한 할인판매 채널에서 벗어나 극장, 헤어숍 등 문화시설과 식당가까지 갖춘 복합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저렴한 가격으로 쇼핑이 가능한 데 이어 백화점 서비스까지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이 아울렛을 바라보는 시각도 변화했다. 예전에는 비싼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질 좋은 제품을 보다 합리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아울렛은 교환·환불 불가 정책을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상권 확장에 앞장서며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있다는 홍보와는 달리 소비자의 기본적인 권리는 외면 받고 있는 셈이다. 일부 교환·환불이 가능한 곳도 있지만 아직은 불가능한 곳이 더 많다.
때문에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교환·환불이 되지 않으니 신중히 구매할 것’이란 아울렛 쇼핑 주의사항이 거론되고 있다. 또 구매한 물건을 ‘교환·환불 가능할까요?’라는 제목으로 문의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구매상품에 불만족한 일부 소비자들은 자신이 직접 중고거래 사이트를 통해 판매를 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이 같은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다. 하지만 여전히 이를 제재할 수 있는 장치는 마련돼 있지 않다. 매장 대다수는 판매시에 소비자와 제품의 하자 여부를 확인하면서 교환·환불불가 방침도 함께 전달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판매할 때 교환·환불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소비자에게 분명하게 전달한 경우 소비자와 판매자 간 계약을 맺은 것으로 보기 때문에 이를 제재할 규정이 없다”며 “구매 당시 발견하지 못했던 제품 하자에 의한 환불에 대해서는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에 피해사례를 접수해 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손해배상 전문 변호사는 “교환·환불이 안 된다는 문구 자체는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는 내용이므로 무효로 해석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아울렛 업계 관계자는 “판매 전 소비자들에게 교환과 환불이 불가능함을 미리 고지한다”면서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백화점과 같은 정책을 제공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매장별로 영업정책이 다른 점에 대해서 일일이 영업 행위까지 관여할 수 없는 우리 입장도 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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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