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인터뷰] 아프리카 미술관 정해광 관장
[직격인터뷰] 아프리카 미술관 정해광 관장
  • 최홍 인턴 기자
  • 입력 2014-06-30 17:27
  • 승인 2014.06.30 17:27
  • 호수 1052
  • 6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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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미술 속 휴머니티 매력 느껴보세요”

[일요서울 | 최홍 인턴기자]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아프리카를 경제, 외교, 원조의 대상이 아닌 문화적 측면에서 보는 것이다. 미술 시장에서도 아프리카 미술을 주목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서울 인사동에 위치한 아프리카 미술 갤러리는 한국 대중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곳은 아프리카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준다. 아프리카 미술관의 정해광 관장은 25년간 아프리카 미술을 연구했다. 그는 아프리카의 정서를 담은 예술 작품들을 대중들에게 알리는데 큰 뜻을 두고 있다. 그가 아프리카 미술을 연구하게 된 계기와 앞으로의 비전 등을 들어봤다.

▲ 아프리카 미술을 연구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 스페인 유학 시절 우연히 마드리드 벼룩시장에서 아프리카 조각을 발견했다. 처음 그 조각을 본 순간 인간적인 미가 느껴졌다. 당시 마드리드 국립대에서 정치철학을 전공하고 있었는데 정치의 주요 키워드는 ‘인간’이었다. 그동안 정치공부하면서 생각했던 그 키워드가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것이다. 달리 말한다면 휴머니티다. 아프리카 미술에 내포돼 있는 휴머니티 매력 때문에 아프리카 미술을 연구하게 됐다.

▲ 학계에 아프리카 미술에 대한 자료가 그리 많지 않다고 들었다.
- 아프리카 자료는 굉장히 많다. 그런데 그것들은 대부분 문화인류학적 지식이다. 작품 내면에 흐르는 철학이라든가 정서에 관한 자료는 없다. 설령 있어도 굉장히 드문 편이다. 특히 아프리카 회화 같은 경우는 역사가 짧아 자료가 상대적으로 적다. 과거 아프리카인들은 이동, 수렵, 채집 생활을 많이 했다. 조각은 이동할 때 가져갈 수 있지만 벽화 같은 경우는 들고 갈 수 없다. 그래서 아프리카 미술은 벽화 보다는 조각 쪽이 발달했다. 오히려 회화는 대부분 서구 식민지 시절에 어깨 너머로 배운 게 많다. 시스템도 미술 대학이 중심이었다. 아프리카 회화의 역사가 짧으므로 당연히 연구된 것도 많지 않다.

▲ 자료가 많이 없다면 아프리카 미술에 대한 연구는 어떻게 하는가.
- 발품이다. 25년 동안 아프리카를 왕래했다. 현지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했다. 긴 시간동안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정서를 교류하다보니 작품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예컨대 부르키나파소에서는 혼인 할 때 사용하는 조각상이 있다. 그 조각상의 특징은 입이 마름모꼴 모양으로 오므라져 있다. 당시 난 조각상의 입이 왜 그렇게 생겼는지 궁금했다. 그러던 어느 날, 누워서 조각을 가만히 바라보는데 갑자기 그 조각상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라고. 너무도 신기해서 내가 겪은 일을 아프리카 현지인에게 물어보았더니 그도 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자신의 할아버지도 조각상과 똑같은 말을 했다는 거다. 알고 보니 아프리카에서는 부부간에 지켜야할 덕목이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때 난 아프리카 미술은 이론보다는 인간적인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야 말로 아프리카적 해석이다.

▲ 미술계의 트렌드가 대부분 서구 양식에만 치우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프리카 미술이 어떤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보는가.
- 힙합, 레게 등 아프리카 음악을 빼놓고 현대음악을 거론할 수 없는 것처럼 아프리카와 음악은 깊은 연관이 있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도 살에 음악적인 유전자가 있다. 바로 ‘흥’이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뼈’에 있다. 더 깊숙이 박혀 있는 거다. 그렇다면 아프리카 음악이 현대 음악에 영향을 미친 것처럼 난 아프리카 미술이 현대미술에 영향을 줬다고 본다. 아프리카인은 색을 바라보는 유전자가 다르다. 예컨대 아프리카 미술의 형태는 굉장히 역동적이다. ‘릴랑가’라는 작가는 작품에서 사람의 몸을 굉장히 역동적으로 그린다. 그들의 음악성이 회화에 배어 들어간 거다. 이렇듯 아프리카 미술이 미술 시장에서 주목 받을 가능성은 높다고 생각한다.

▲ 다들 아프리카 미술이 색채가 아름답다고 한다.
- 아프리카 색채는 자연과 관련이 깊다. 아프리카라고 꼭 황량한 건 아니다. 예를 들어 황량한 벌판에 500년, 1000년 된 바오밥 나무가 있는데 굉장히 크다. 엄청난 크기의 바오밥 나무에 꽃이 피는데 꽃 역시 산더미 같이 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들판에 꽃을 보면 대부분 머리로 느끼려고 한다. 그런데 아프리카인들은 다르다. 그것을 가슴으로 느낀다. 흡수하고 감성으로 받아들인다. 이성으로 재단하는 게 아니다. 색을 표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느꼈던 걸 가슴으로 걸러서 표현한다. 예컨대 아프리카에는 녹색을 표현하는 언어가 20가지나 된다. 검은색은 40가지다. 우리나라는 많아봤자 5~6가지 밖에 안 된다. 녹색과 검은색이 어떻게 보면 안 어울릴 수 있다. 그런데 아프리카인들은 그 많은 녹색과 검은색 중에 서로 어울리는 색을 찾아낸다. 검은 피부를 가진 아프리카인들이 숲속에 들어갔을 때의 느낌을 떠올려 보라. 어울리지 않는가. 그들은 실제로 자연을 몸으로 느끼면서 색을 찾아낸다. 색에 대한 탁월한 감각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개성들이 미술 시장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 아프리카 미술의 매력을 설명해 달라.
- 아까 말했듯이 색채가 다르다. 또 형태에 있어서도 목을 길게 늘어뜨리거나 왜곡한다. 그러면서도 자연스럽다. 예를 들어 앤틱 조각을 보면 목이 길게 늘어진 형상이 많다. 이는 하늘과 신에 닿으려는 소망을 보여준다. 그러나 다른 이유도 있다. 케베라는 작가는 힘든 현실을 극복하고 장미빛 미래에 도달하기 위해 인물의 목을 길게 표현했다. 또 에티오피아 작가 아세파에게 긴 목은 발전된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진보의 뜻을 담고 있다. 작가 타데쎄는 남편을 기다리는 간절함을 긴 목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처럼 아프리카 미술은 자체만으로도 개성이 뚜렷하지만 그 안에서도 작가마다 특징이 있다. 이는 아프리카가 오랜 식민 지배를 극복하고 그들만의 개성을 지켜낸 덕분이다.

▲ 아프리카 작가들과의 교류가 활발하다고 들었다. 아프리카 작가들의 작업 방식은 어떠한가.
- 1920~70년대 아프리카 작가들은 캔버스가 아닌 섬유질 합판에 그림을 그렸다. 당시 미술시장도 없고 미대도 없는데 캔버스가 어디 있겠나. 물론 서양인들이 사용하는 캔버스가 있긴 했지만 그건 굉장히 고가다.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은 아프리카인들이 구입할 수 없다. 유화도 비싸서 구입할 수 없다. 콩고에서는 경찰의 월급이 100불이라면 유화는 50불이다. 그렇다보니 집에서 쓰는 에나멜 페인팅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래서 아프리카 미술은 재료에 있어서도 개성이 강하다. 물론 지금 대부분의 아프리카 작가의 작업 방식은 현재 우리나라 작가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아직도 탄자니아에서는 대다수가 전통대로 에나멜 페인팅과 합판으로 그림을 그린다.

▲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
- 체계적으로 아프리카 미술을 알리고 싶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문화사대주의가 만연하다. 아프리카에 무슨 현대미술이 있냐고 손가락질하기 일쑤다. 가난한 나라도 미적 감수성이 있는 법이다. 나라의 경제성에 상관없이 예술 그 자체를 봐줬으면 좋겠다. 또 기회가 된다면 아프리카 미술을 연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싶다. 아프리카 미술이 세계 미술을 선도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ilyo@ilyoseoul.co.kr 

최홍 인턴 기자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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