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대륙 중 아시아만 16강 진출 실패…일본 C조 최하위 퇴장
‘강한 압박·빠른 역습’의 세계 축구에 역행…해결사 부재 치명타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지난달 23일(한국시간) 한국이 아프리카 강호 알제리에 2-4로 패해 16강 자력 진출이 무산된 가운데 아시아 출전국 모두 자력 진출에 실패하면서 몰락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B조의 호주는 일찌감치 2패를 기록하며 가장 먼저 탈락을 확정지었고 나머지 아시아 국가인 한국·일본·이란 모두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부진한 모습만 노출했다.
심지어 월드컵 출전권 축소까지 언급되면서 아시아 축구가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가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16강 진출국이 가려지는 가운데 각 대륙을 통틀어 승리가 없는 지역이 있었다. 다름 아닌 아시아였다.
이번 대회에서 4.5장의 출전권을 가지고 있던 아시아는 한국·일본·이란·호주가 각각 한 장씩을 거머쥐었고 0.5장을 쥔 요르단이 대륙 간 플레이오프에서 우루과이에 패해 탈락하면서 4개국만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인구수나 면적을 놓고 보면 아시아 지역에 배분된 진출 티켓이 야박해 보이지만 세계축구연맹(FIFA) 순위만 놓고 보면 아시아 국가의 FIFA랭킹은 이란 43위, 일본 46위, 한국 57위, 호주 62위로 20위권 뿐만 아니라 30위권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월드컵 순위는 FIFA랭킹 순이 아니다. 또 아시아축구연맹(AFC)은 지난 3개 대회에서 16강 진출국을 꾸준히 배출하며 아시아 축구발전을 도모해왔다. 2002년 한국은 4강, 일본은 16강에 올랐고, 2006년 호주가 16강에, 2010년 대회에는 한국·일본 모두 16강에 진출했다.
브라질 대회 아시아축구 잔혹사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아시아팀의 성적은 처참할 정도다.
일찌감치 조별리그 탈락을 확정한 호주는 B조 조별리그 1·2차전에 이어 마지막 3차전마저 패해 브라질 월드컵 승점 0점의 수모를 겪어야 했다.
1차전인 칠레와의 경기에서는 전반 12분 만에 선제골을 내줬고 전반 14분에 또 한 골을, 후반 추가시간에 세 번째 골을 허용하며 무너졌다. 전반 35분 호주의 팀 케이힐이 헤딩슛을 성공시켰지만 칠레와의 격차를 좁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차전에서 호주는 네덜란드를 상대로 전반전을 1-1로 마쳤고 후반 들어 상대팀의 반칙으로 얻은 페널티킥을 넣어 2-1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탔다. 하지만 후반 13분 동점골을 내줬고 후반 22분에는 네덜란드 데파이가 드라마 같은 중거리 슛을 성공시키며 2-3으로 역전패 했다.
16강 탈락이 확정된 무적함대 스페인과의 3차전에서도 호주는 0-3으로 완패해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일본도 3차전마저 내주며 체면을 구겼다. 일본은 브라질 월드컵 직전 조 편성이 좋다며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16강을 넘어 4강 진출을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이 이끈 일본은 C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코트디부아르에게 1-2로 역전패를 당해 16강 진출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이어 그리스와의 2차전에서 일본은 전반 상대팀 선수의 퇴장으로 수적 우세에 있었지만 결국 무승부에 그치며 사실상 16강 자력진출이 힘들어졌다.
여기에 마지막 희망이었던 콜롬비아와의 경기에서 1-4 대패를 기록하며 짐을 싸야했다.
3차전에서 일본은 전반 17분 기예르모 과드라도에게 페널티킥 선제골을 내줬지만 전반 추가시간에 오카자키 신지가 동점 헤딩골을 만들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놓는 등 16강 진출의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후반 들어 콜롬비아의 작손 마르티네스가 후반 10분과 37분에 연달아 골을 넣었고 45분 하메스 로드리게스가 쐐기골까지 기록하며 큰 점수차로 침몰했다.
결국 일본은 C조 최하위로 이번 대회를 마쳤다.
‘중동축구의 수장’인 이란은 F조 조별리그 전까지는 탄탄한 실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됐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시종일관 수비 축구와 침대 축구로 일관하면서 축구팬들로부터 ‘재미없다’는 야유를 받았다.
경기 결과도 참담했다. 1차전인 나이지리아전에서는 득점 없이 무승부로 끝났고 2차전인 아르헨티나전에서는 90분 동안 잘 버티다가 추가시간에 리오넬 메시에게 결승골을 내줘야 했다.
결국 자력 진출에 실패한 이란도 3차전에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상대로 1:3으로 패하며 F조 최하위로 전락했다.
홍명보호 ‘의리발탁’에 발목 잡혀
홍명보 감독이 이끈 한국 역시 원정 8강을 목표로 세웠으나 조별리그부터 위기에 봉착했다.
홍명보호는 최종 엔트리 선정 시부터 ‘의리발탁’ 논란에 휩싸이며 잡음이 일었다. 특히 2013-2014시즌 벤치신세를 졌던 박주영을 발탁했고 선발 원톱으로 기용하는 무리수를 던졌다.
문제는 박주영이 선발 원톱으로 나선 만큼 그간 한국의 문제점이었던 공격결정력을 해결해주길 바랐지만 그는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비난의 화살이 홍 감독에게 돌아갔다.
이렇게 되자 일명 ‘의리논란’이 다시 불거져 홍명보호의 오점으로 남게 됐다.
특히 한국팀 조별리그 최악의 경기였던 알제리전에서 홍명보호는 여러 가지 약점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평가전에서의 문제점을 되풀이했다.
이날 한국은 전반전 내내 슈팅을 단 한 개도 기록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알제리의 빠른 역공에 흔들리며 수비가 균형을 잃고 무너져버렸다. 결국 전반 28분 알제리는 중앙수비 뒷공간을 파고드는 칼 메자니의 롱패스를 이슬람 슬리마니가 이어 받아 김영권, 홍정호를 따돌리고 왼발로 가볍게 차 넣어 선제골을 기록했다.
전반 28분에는 왼쪽으로 올라온 코너킥을 정면에서 수비수 홍정호가 볼을 놓친 사이 리피크 할리시가 헤딩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어 0-2를 만들었고 전반 38분 델무멘 자부가 추가득점에 성공하며 0-3의 압도적인 경기를 선보였다. 그 사이 한국은 평가전에서와 같이 무기력한 모습으로 알제리에 끌려 다니는 신세가 됐다.
후반 들어 한국은 손흥민이 후반 5분 월드컵 데뷔골을 선보여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으나 후반 17분 알제리의 야신 브리히미가 득점에 성공에 1-4로 격차를 다시 벌렸다.
결국 한국은 후반 27분 구차철이 이근호가 문전으로 연결한 패스를 골로 성공시켰지만 2-4로 아쉬운 마무리를 해야 했다.
더욱이 홍명보호는 조별리그 내내 박주영을 대신해 투입한 조커들이 빛을 발하며 공격 포인트를 올렸다. 이렇게 되자 홍 감독의 선발 구성 및 용병술이 도마에 올랐다. 여기에 1차전인 러시아전과 동일한 전술로 일관하면서 이미 알제리는 경기 전부터 한국과의 경기에 대한 대비를 마친 반면 홍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알제리의 선수변화와 전술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해 전술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경기를 내줘야 했다.
일각에서는 1승의 제물로 삼으려던 알제리에게 도리어 잡아먹혔다며 홍 감독의 전술과 대응방법에 대해 불만을 쏟아냈다.
홍 감독은 알제리 경기 후 인터뷰에서 “최선을 다했으나 결과가 좋지 않게 나왔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전력 분석이나 대책이 잘못된 것”이라며 “전반에 수비가 안 돼 실점을 했는데 그 점이 아쉽다”고 평가했다.
또 그는 “전술적으로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다”면서 “전체 결과는 나의 실책 때문이다. 러시아와의 1차전 결과가 나쁘지 않아 같은 전술을 계속 이어가려고 했다”고 자책했다.
결국 알제리에게 패하면서 한국은 자력으로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여기에 지난 27일 열린 3차전 벨기에전에서도 한국은 수적우세에도 불구하고 0:1로 패해 16강 진출을 위한 마지막 경우의 수마저 실패로 돌아갔다. 홍명보호는 이번 대회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해 한국 축구가 퇴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역행한 아시아 축구 위기 초래
브라질 대회에서 아시아 축구는 세계 축구의 벽을 실감하며 실력에서 더욱 격차가 벌어지는 모양새가 됐다. 4년 전인 남아공 대회 때만 해도 한국, 일본, 호주, 북한으로 구성된 아시아 국가들은 조별리그에서 4승2무6패(승점 14점)를 기록했다. 당시 3패로 탈락한 북한을 제외하면 나머지 3개국은 모두 최소 승점 4점 이상을 획득하며 선전했고 한국과 일본은 16강까지 진출하며 아시아의 자존심을 세웠다. 이후 4년이 흐른 브라질 대회에서 아시아 국가들은 전력이 크게 성장하지 못하며 타국의 제물로 남아야 했다.
전문가들은 몰락의 원인으로 ‘강한 압박·빠른 역습’이라는 세계 축구 트렌드를 따라잡지 못하는 데서 찾고 있다. 또 이를 해결할 창조적 해결사를 보유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또 세대교체에 실패해 경험 부족을 드러냈고 단조로운 수비 축구에 머물러 세계 축구 흐름에 역행하고 있는 수준이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번 대회에서 여실히 드러난 축구 실력이 아시아 축구의 부진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아시아의 월드컵 출전권이 축소될 위기에 몰려 있다.
현재 대륙별 출전권은 유럽이 13장으로 가장 많고 아프리카 5장, 아시아 4.5장, 남아메리카 5.5장(개최국 브라질 포함), 북아메리카 3.5장, 오세아니아(호주 제외) 0.5장으로 배정되어 있다.
그러나 매번 월드컵을 치를 때마다 아시아의 출전권을 3.5장으로 줄이고 유럽 출전권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 스포츠전문지 스포츠호치는 “아시아에 배정된 월드컵 대륙별 출전권이 현재 4.5장에서 3.5장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해당 매체는 일본축구협회 관계자의 말을 빌려 “다음 월드컵 출전권은 브라질월드컵이 끝난 후 재검토된다. 당연히 이번 대회에서 아시아 국가들의 성적이 중요하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남길 필요가 있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또 “3.5장이었던 아시아 대륙 출전권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4.5장으로 늘어났고 이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4강)을 제외하고는 16강 진출이 최고 성적인 만큼 다른 대륙에서 ‘아시아 출전권이 너무 많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더불어 아시아와 함께 축구 3세계로 불렸던 북·중미와 아프리카가 이번 월드컵에서 뛰어난 성적을 올리고 있어 아시아 축소 우려에 힘을 싣고 있다.
미국·멕시코·코스타리카·온두라스가 출전한 북·중미는 지난달 25일 현재 5승2무2패를 올렸고 멕시코와 코스타리카, 미국이 16강 진출을 확정했다. 아프리카도 3승1무8패를 기록해 아시아국가들보다 월등한 성적을 올렸고 나이지리아, 알제리가 16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다만 제프 블래터 FIFA회장은 “조금 더 세계화된 월드컵을 위해 오히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출전권을 늘려야 한다”며 반대의 뜻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아시아 축구가 스스로 몰락한다면 블래터 회장도 입장을 고수하기엔 힘겨워 보인다.
이제 월드컵은 4년 뒤인 2018년 러시아에서 재격돌하게 된다. 4년이란 시간이 축구실력을 급격히 끌어올리기엔 다소 짧을 수 있지만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국가들은 세계 트렌드에 부합하는 역량을 갖추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우려 속에 본선에 진출한 한국은 그 결과를 놓고 책임을 따지는 것보다 앞으로 4년 뒤 국민들의 희망이 될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를 점검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비록 이번 결과가 목표치에 다다르지 못했더라도 끝까지 힘을 내 월드컵본선무대를 마친 선수와 감독, 코칭스태프에게 박수를 보낸다.
todida@ilyoseoul.co.kr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