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L’ -한국을 대표하는 핵심 기업의 창업스토리
PKL’ -한국을 대표하는 핵심 기업의 창업스토리
  • 박시은 기자
  • 입력 2014-06-30 14:47
  • 승인 2014.06.30 14:47
  • 호수 1052
  • 4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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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마스크 20년 외길…‘열정’으로 우뚝서다

한국경제가 짧은 시간 안에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기업과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이들 기업가들은 독특한 경영이론과 기법들을 창안했으며 한국의 기업풍토에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과 경영이론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삼성을 창업한 이병철은 인재제일주의를, 현대의 정주영은 생산의 혁신을, LG의 구인회는 인화모델을 각각 창안해 냈다. 현재 대한민국이 경제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들 1세대 창업자들의 도전과 혁신적인 창업정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일요서울]은 한국 경제의 한 획을 긋고 있는 기업들의 창업스토리를 출판물 또는 기존 자료를 통해 다시금 재구성해 본다. 이번주 창업스토리의 주인공은 대한민국 순수기술로 디스플레이 산업 발전의 시대를 연 PKL(대표 정수홍·사진)이다.

PKL은 1995년 반도체와 평판 디스플레이의선공정 재료로 쓰이는 포토마스크를 순수한 우리 기술로 제조하기 위해 설립됐다.

포토마스크는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제품이지만 생각보다 생활 속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다. 매일 사용하는 컴퓨터와 휴대전화, 모니터, TV 등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도체 설계회로와 평판 디스플레이가 필요하다.

PKL은 끊임없는 기술 개발과 혁신을 통해 해외 업체가 독점하다시피 한 포토마스크 산업에 국산화를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동부하이텍 등에 포토마스크를 납품하면서 이전에 미국 일본 등 해외업체가 독점했던 포토마스크 시장의 국산화를 이뤄내며 이제는 국내 최대의 포토마스크 기업으로 우뚝 섰다.

이렇게 PKL은 지금까지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 및 디스플레이 산업 발전의 조력자로서 기여해왔다.

최선을 다해 전진하다

PKL이 천안에 공장을 세우고 시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한 때는 1995년 봄이다. 그런데 매출은 정말 마음처럼 올라가지 않았다. 포토마스크 공장을 두 번씩이나 짓고, 성공적인 생산을 해 훌륭한 성공 사례를 가지고 있었지만 세 번째 공장의 매출이 늘지 않아 조바심이 난 것이다.

PKL은 나름대로 할 일을 다 해봤다. 품질 시스템을 다시 점검하고, 고객의 니즈도 다시 파악하고, 영업팀들을 독려해봐도 매출이 오르지 않았다. 경쟁사의 집요한 공략 때문인지 신규 회사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때문인지 매출은 제자리를 맴돌았다.

이 때 정 대표는 하다못해 전 사원의 염원을 한데 모으겠다면서 전 사원을 데리고 성공 기원 동반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 식사 후 산책중이던 정 대표는 갓 피기 시작한 몇 송이의 꽃을 봤다. 그 순간 정 대표는 ‘그래, 저 한 송이의 꽃도 얼마나 많은 날을 기다려왔을까? 힘든 과정을 다 겪었다고 해도 12월이나 1월 추운 겨울에 꽃을 피울 수는 없다. 꽃은 때가 되야 피는거다.’

그 후로 정 대표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노력을 게을리 하지도 않았다. 정 대표는 매일같이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자택이 있는 분당에서 공장이 있는 천안으로 차를 몰아 고속도로를 달린다. 이렇게 귀중한 이치를 깨닫고 최선을 다하자 거짓말처럼 고객은 그의 가치를 조금씩 인지하기 시작하며 매출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온통 세상이 소란스러웠던 2008년, PKL도 시련을 맞았다. 2008년 12월 정 대표는 영국의 맨체스터 공장을 폐쇄하기로 하고 그곳에 있던 기계를 대만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일보 후퇴하다

정 대표는 ‘이런 결정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줄 것인가’라는 생각에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다. 최고책임자가 느끼는 고독함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 때 정 대표의 마음은 환부를 도려내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환자를 치료하는 외과의사의 심정과 비슷했다.

정 대표는 매출이 전년보다 20~30% 감소할 것이라는 가정을 하고, 서바이벌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세계 각국에 소재한 10개 공장 중 어느 공장을 폐쇄해야 할지, 인력을 얼마나 감축해야 할지 등을 고민했다. 정 대표가 내린 결정이 비록 회사를 살리고 재무 상태를 건전하게 해서 향후 훨씬 나은 회사로 발전시킬 수 있는 일보 후퇴라 할지라도, 현재로서는 많은 직원을 거리에 내몰아야 하는 처지였기 때문에 가슴이 아픈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 같은 어려움을 겪은 뒤 PKL은 2012년 포토마스크 제조공정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대기중의 미세먼지(헤이즈)가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리고 그 해 상반기 으뜸기술상 기술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포토마스크를 제조할 때 미세먼지가 발생하면 불량률이 높아지고 제품 수명도 단축된다. 이 때문에 헤이즈 발생을 억제하는 기술은 차세대 반도체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핵심 기술이었던 것이다. 피케이엘은 포토마스크 제조 세정공정에서 잔류 이온, 잔류 유기물, 잔류 수분을 조절해 이 기술을 개발했다.
PKL은 기술개발 후 841억 원의 매출을 늘리는 효과를 봤다.

위기 극복의 자세, 열정

정 대표는 경제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삼았다. 물론 인생을 살면서 이런 고비를 처음 만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열정’이었다.

기업의 진정한 가치는 기업 구성원으로 판단할 수 있다. 외자 유치를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IMF 외환위기 시절, 미국 캘리포니아의 라이프사이클펀드를 운영하던 한 투자사의 CEO가 PKL에게 이런 말을 했다.

“투자를 함에 있어서 부동산의 경우는 첫 번째도 위치이고, 두 번째도, 세 번째도 위치입니다. 기업에 투자할 경우 우리가 보는 것은 첫 번째도 사람, 두 번째도 사람, 세 번째도 사람입니다.”

그렇다. 국내외 유수 기업이 추구하는 가장 큰 가치는 사람이다. 때문에 정 대표는 자신의 경영철학 가치의 최우선을 ‘사람’에 둔다. 그가 2008년 세계경제 위기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그토록 고통스러워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정 대표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인다. “열정을 가진 사람이 좋은 회사를 만든다.”
열정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교육을 받아도, 아무리 머리가 비상해도 의미가 없다. 무언가 하고자, 무언가 이루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때문에 그는 오늘도 열정을 가지고 PKL의 앞날을 위해 뜨겁게 달리고 있다.

<끝>
<정리=박시은 기자>
<출처=대한민국 최고의 CEO│지은이 이주민│미래북>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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