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류탄 투척 및 총기 난사로 5명 사망·7명 부상
임 병장, “엄청난 일 저질러” 언급 후 자살 시도
[일요서울 | 이지혜 기자] 지난 21일 오후 8시15분께 강원도 고성에 위치한 군부대 22사단 GOP에서 임모병장이 총기를 난사하고 무장 탈영한 사건이 발생했다. 임 병장은 주간 경계근무를 마치고 복귀한 직후 근처에 있던 근무자에게 총기를 난사해 5명을 사망케 했다. 무장 탈영한 임 병장은 다음날 오후 2시께 발견됐다. 그때부터 군과 임 병장은 추격전과 대치를 반복했다. 그리고 23일 오후 2시55분께 임 병장은 자해 시도 후 검거됐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많은 사람들의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제대가 3달 남은 병장이 총기를 난사했다는 점과 탈영할 때까지 아무도 대응사격을 하지 않은 점 등이 미스터리로 떠올랐다. [일요서울]은 임 병장의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한 의문점을 정리해봤다.
지난 21일 오후 8시15분. GOP 주간 경계근무를 마치고 복귀하던 임 병장은 함께 있던 장병 7명에게 “두고 온 물건이 있어 가지고 오겠다”며 간격을 벌린 뒤 수류탄을 투척했다. 이어 도망가는 장병들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임 병장은 그 후 생활관으로 이동해 도망가는 장병들에게도 총격을 가한 뒤 그대로 도주했다. 이 과정에서 5명이 사망하고 7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군은 즉시 진돗개 하나를 발령하고 수색작전에 돌입했으며 다음날인 22일 오후 2시17분께 강원도 고성의 명파리 지역에서 임 병장을 발견하고 총격전을 벌였다. 그리고 긴 대치 끝에 23일 오후 2시55분 총으로 자해를 시도한 임 병장 검거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둘러싸고 많은 의문점이 제기되고 있다. 총기를 난사한 장병이 다름 아닌 병장이라는 점에서 의문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제대 3개월 앞두고 자유 아닌 사형 선택?
2012년 12월에 입대한 임 병장은 오는 9월 전역을 앞두고 있었다. 3개월만 지나면 꿈에 그리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임 병장은 3개월을 참지 못했다. 무려 18개월을 참고도 단 3개월을 참지 못한 채 총기사고를 저질렀다. 희생자들이 조준 사격으로 사망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을 볼 때 임 병장은 이번 사고를 사전에 계획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총기를 난사했던 해병대 김모 상병과 연천 GOP 김모 일병 등은 모두 사형선고를 받고 현재 군교도소에 수감중이다. 임 병장이 이 같은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그렇다면 임 병장은 3개월 뒤 찾아올 자유보다 사형선고를 선택했다고 보는 편이 옳다. 왜 임 병장은 자유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제대를 눈앞에 둔 임 병장이 이 같은 끔찍한 일을 저지른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그러나 임 병장이 지난해 11월까지 A급 관심병사였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본인 스스로의 부적응이 원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임 병장의 조부모에 따르면 임 병장은 고교 시절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임 병장은 같은 반 친구들에게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했고 이에 아침 자율학습 시간도 부담을 느껴 1교시 수업시간에 맞춰 등교할 정도였다.
그는 결국 학교를 자퇴해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진학했다. 이렇듯 내성적인 성격에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임 병장이 24시간 반복되는 군 생활을 참지 못하고 사고를 저질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총기난사의 원인으로는 군대 내 괴롭힘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 해병대 총기난사 사고 원인은 선임병은 물론 후임병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기수열외였다. 내성적인 성격의 임 병장도 부대 내에서 집단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해 총기난사를 일으켰을 가능성도 높다.
실제로 김관진 국방부장관도 이번 총기 난사 원인에 대해 “전역을 3개월 앞둔 병장이 사고자가 된 이면에는 집단따돌림 현상이 군에 존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임 병장의 유서에서도 “나 같은 상황이면 누구라도 힘들었을 것”,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죽는다”, “벌레를 밟으면 얼마나 아프겠나” 등의 내용이 담겨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관심병사 A→B 한 달 만에 GOP투입?
임 병장은 2013년 2월 자대배치를 받은 후 같은 해 4월 인성검사에서 A급 관심사병(특별관심 대상)으로 판정받아 근무부적격으로 분류됐다. 부대 측은 임 병장의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기 위해 부분대장 직책도 부여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2차 인성검사에서 임 병장은 B급 관심사병(중점관리 대상) 판정을 받고 한 달 뒤인 12월 GOP에 투입됐다. 지난 3월 자체 인성검사에서도 특이사항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군 관계자는 “임 병장의 성격을 밝게 하기 위해 부분대장직을 맡겼다”면서 “직책이 바뀌니 말도 많아지고 성격도 나아져서 근무에 투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올해 3월 인성검사에서도 별다른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고 GOP근무 중에도 특별한 징후가 드러내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군이 B급 병사로 전환된 지 한 달 만에 임 병장을 GOP에 투입한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 GOP는 남방 철책 이남에 위치해 있으며 우리나라 최전방에서 북한을 마주하고 근무하는 곳이다.
부대 특성상 GOP 근무자들은 총기와 실탄을 매일 보급 받는다. 그런 곳에 군 간부들의 관리가 필요한 사병을 들인 순간 총기 난사 사고는 예견됐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고성 군부대 전역자 강모(26)씨는 “GOP는 우리나라 최전방”이라며 “그런 곳에 관심병사를 투입하고 경계근무 투입 및 실탄을 지급했다는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인근부대 GOP에서 복무했던 권모(27)씨는 “관심병사들은 군대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면서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선이지 실탄을 지급하고 GOP에 올려 보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육군 측은 줄어드는 병력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관심병사를 GOP에 투입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자주국방네트워크 신인균 대표는 모 방송에서 “병역기간이 줄어들어서 예전에는 군에 갈 수 없는 사람도 지금은 오게 됐다”며 “관심병사들을 보내지 않으면 GOP가 운영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군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위험을 보이는 관심병사를 GOP에 계속적으로 투입한다면 이번 사고가 재발할 위험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군 병력 문제 해결책을 관심병사 투입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할 때다.
추적조 3500명 투입 검거까지 42시간 걸린 까닭
사건 발생 당일 오후 8시20분께 상황을 보고받은 사단은 25분께 상급 부대에 보고하고 28분 사단 내 위기조치반 소집 및 GOP 지역 병력 전원 투입을 지시했다. 이어 36분 임 병장의 도주를 막기 위해 남쪽 지점에 차단선을 설치했고 그곳을 중심으로 길목 곳곳에서 검문검색을 실시했다. 군 당국은 9개 대대급 병력 3500여 명을 투입해 임 병장 검거를 위한 작전을 펼쳤다.
그러나 임 병장은 18시간 후인 22일 오후 2시에 부대에서 10여k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 임 병장이 무장한 상태인 것을 고려했을 때 그 시간동안 민간인 피해가 일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군과 임 병장의 총격전에서 소대장 1명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군이 임 병장을 검거한 것은 발견한 지 하루가 지나서였다. 만약 임 병장이 자해시도를 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더 걸렸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사건 당일 임 병장이 장병들에게 총격을 가한 뒤 부대를 이탈할 때까지 대응사격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인해 군은 초기 대응이 부실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 군 관계자는 “GOP는 자대와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그리고 탄약고는 2중으로 잠겨 있다. 총기 난사 당시에는 탄약고로 달려가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또 위기조치반이 사건 발생 지역에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임 병장의 도주를 막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산속으로 도주한 임 병장을 단시간에 찾는 것은 어렵다. 도주 경로를 예상하고 차단하는 것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임 병장 발견부터 검거까지 하루가 걸린 이유에 대해서는 “생포가 목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군 내부에서 더 많은 사상자가 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군의 초기 대응 부실 논란은 쉽게 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짜 임 병장’, ‘메모비공개’ 국방부의 말 바꾸기?
자해시도 후 검거된 임 병장은 군용헬기를 타고 국군강릉병원으로 이송됐다. 이어 대기하던 군용앰뷸런스를 타고 112 경찰차량의 호위를 받으며 강릉아산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이 과정에서 강릉아산병원 응급실로 들어가는 임 병장의 모습이 언론에 공개됐다. 그러나 진짜 임 병장은 병원 지하 수하물주차장을 통해 병원 수술실로 옮겨졌으며 언론 앞에 공개된 임 병장은 ‘가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일각에서는 ‘임 병장을 공개할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왼쪽 가슴 위쪽에서 어깨 뒤쪽을 관통한 임 병장의 총상부위가 본인이 자살 시도를 하다가 입은 총상이라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다는 의혹도 일었다. 임 병장 스스로가 아닌 타인에 의한 총상일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가짜 임 병장 연출’이 논란을 빚자 국방부 관계자는 지난 24일 “환자 이송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것”이라며 “응급실 길목이 좁아 가짜 환자를 통해 연출하고 임 병장은 다른 통로로 옮겼다”고 해명했다. 이어 “병원 측에서 요청해 가짜 환자를 연출한 것이지 우리가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같은 국방부의 해명에 대해 아산병원 측은 “국방부의 발표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며 즉각 반발했다. 병원 측은 “당시 임 병장의 상태가 위급한 상황이었다”며 “병원 입장에서는 응급실로 직행해야지 수화물주차장 쪽으로 빼달라고 요청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또 “처지실에 도착해서 환자가 대역인 줄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국방부는 “병원 측이 아닌 병원 129이송팀이 실무적 차원에서 요청했다”고 말을 바꿨다.
국방부의 말 바꾸기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임 병장은 자해 시도 전 A4용지에 유서를 작성했다. 초기에 국방부는 임 병장의 유서를 공개한다는 방침이었지만 유가족의 반대로 인해 비공개한다고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는 지난 25일 “유족들이 (유서 공개를)반대하고 있어 내용도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희생자 유가족 측은 “유족들은 임 병장 유서 공개를 반대한 적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에 국방부는 “유족들은 원칙적으로 유서 공개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지만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공개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고 해명했다. 또다시 말 바꾸기를 시전한 것이다.
국방부의 연이은 말 바꾸기로 인해 지켜보는 국민들의 의혹감만 커지고 있다. 임 병장의 유서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궁금증도 더욱 커지고 있다. 국방부가 스스로 의혹의 불씨만 키운 셈이다.
사건이 발생한 지 1주일이 넘었지만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어린 자식들을 군에 맡기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부모들과, 2년이라는 청춘을 나라에 바치는 어린 장병들을 위해서라도 이번 사고의 원인을 밝혀내고 재발 방지를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jhooks@ilyoseoul.co.kr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