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조사결과 이씨 등은 K씨로부터 신뢰를 얻기 위해 자신들을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극동 담당관 신분이라고 속인 것으로 드러났다.이들은 “구권 화폐 형태의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구권 화폐를 쓸 수 없어 골프장 건설작업에 투자하려고 한다”는 그럴싸한 ‘거짓말’로 K씨를 현혹시켰다.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골프장을 건설한다는 말에 K씨가 솔깃해하자 이들은 때를 놓치지 않고 더욱 적극적으로 미끼를 던졌다. 투자를 할 경우 단기간에 고액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망설이는 K씨에게 그들은 “10억원을 투자하면 석달 후 17억원을 만들어주겠다”며 구체적인 액수까지 제안했다. 찰에 따르면 이들은 사전에 준비한 골프장 조감도까지 보여주며 K씨의 투자를 유도하는 한편 “당신이 유명한 골프선수이기 때문에 투자할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생색을 내는 뻔뻔함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만에 하나 K씨가 의심을 할 것에 대비, 더욱 철저한 그물망을 치기로 계획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속인 것으로도 모자라 누구나 들으면 솔깃할 만한 인물을 내세우기로 마음먹는다. 그들이 K씨를 속이기 위해 끌어들인 인물은 바로 전직 대통령의 아들인 A씨.처음부터 계획된 이들의 치밀한 사기수법에 프로골퍼 K씨는 속아넘어 갈 수밖에 없었다. 건을 담당한 서초경찰서 수사관은 “실제로는 아무 상관도 없는 전직 대통령의 아들을 끌어들인 것이 K씨가 이들을 믿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 같다”고 전했다. 전직 대통령 아들도 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이들 일당의 말에 의심을 풀고 투자를 결심한 K씨는 결국 2004년 1월 15일 강남의 모 호텔 커피숍에서 일당을 만나 거액의 돈을 건네주고 말았다.
K씨가 이들의 말에 속아 건넨 돈은 1억원짜리 당좌수표 10장으로 무려 10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이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은 K씨는 아무런 의심도 갖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K씨로부터 받은 거액의 돈을 챙겨 달아났다. 모든 것은 이들의 철저한 계획하에 이뤄진 ‘사기극’일 뿐이었다. “전직 대통령을 들먹임과 동시에 거짓으로 꾸며낸 신원을 내세워 K씨의 신뢰를 얻은 이들은 실제로는 전직 대통령과는 아무 연관도 없는 무직자에 불과했다”는 것이 수사관의 설명이다. 수사관은 “조사결과 범행을 저지른 두 사람은 내연관계로 밝혀졌다”며 “이들은 골프장 사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K씨에게 의도적으로 접근, 그를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전했다.
# 전직 대통령 가족 사칭 범죄 왜 늘고 있나
- 청와대 팔면 다 통한다?
유명 여성프로골퍼 K씨 사건처럼 최근들어 전직 대통령의 가족이나 현직 대통령 가족을 사칭한 사기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실제로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00년 이후 전·현직 대통령 측근이나 권력 실세, 그리고 대통령 가족을 사칭한 범죄는 수십건에 달한다. 물론 대부분의 사건은 대통령 일가와는 전혀 무관한 범죄들이라는 게 경찰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유형의 사건이 끊이지 않는 것은 ‘대통령 아들이 연관되어 있다’‘정권 실세가 관련있다’고 들먹일 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쉽게 넘어간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대통령 일가친적을 들먹일 때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사실확인이 어려워 그냥 믿게 된다. 올초에도 청와대 실세의 이름을 들먹이며 대기업에 접근한 뒤 ‘비자금을 모은다’는 명목으로 수십억원대의 사기극을 벌이려다 적발된 사건도 있었다. 수사관계자들은 “DJ정부 이후 새로운 권력층이 형성되면서 실세로 떠오른 사람들의 명성이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 때문에 권력층 사기극이 많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특히 일부 사건의 경우에는 직접적으로 전· 현직 대통령 일가족이 사건에 연관되어 있진 않았지만, 이름을 들먹일 만한 연줄이 전혀 없는 상황은 아닌 케이스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수향 thelotu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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